1. 1월에 한약을 지었다. 손발이 너무 차서. 한의사는 맥을 한참 짚더니 나더러 몸이 허약하다고 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다. 일단 나는 보기에 몹시 건장한 여자 사람이니까.

근데 허약하단다. 내 수면시간은 일할 때는 대략 5시간에서 5시간 반 정도 되고, 쉴 때는 그보다 두세시간 더 늘어나는데도 더 자란다. 잠이 부족하다고. 혹시 내가 불만 꺼지면 조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아주 재미있게, 혹은 벼르다가 본 영화나 공연 감상 중에도 곧잘 졸곤 했다. 사실 나는 이게 십수년 전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까마득하게 오래 전에 새벽 늦게까지 소설 쓴다고 날밤 새던 때 말이다. 그때는 정말 잠을 아껴서 글을 쓰던 때라 평균 두어 시간 밖에 못 자고 낮에 이동할 때 자곤 했는데 그 습관이 남아서 불꺼지면 잠이 드나 했다. 그렇지만 잠을 많이 자고 난 뒤에도 불 꺼지면 피곤하고 졸리더라. 사실 오늘도 그랬다. 헤드윅 엄청 재밌었는데, 끄트머리에 살짝 졸....;;;;


암튼, 의사는 나더러 스트레스에 몹시 취약하다고 했다. 추위에도 약하고 더위에도 약하다고. 그래서 더위도 많이 타고 추위도 많이 탄다고. 종종 졸도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도 그런 이유냐고 물어봤다. 소화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장이 안 좋고, 장순환이 잘 안 될 때 자체적으로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걸 견뎌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는 거라고 했다. 설득력이 있었다. 


암튼, 스트레스를 피하라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들으며 약을 지어왔다. 하루 두봉씩 열심히 먹었는데 오늘 저녁은 깜박했네...;;;;


2. 개학을 하고나서부터 쌍커풀이 엉켰다. 원래 없던 자리에 크게 하나가 지면서 기존에 있던 쌍커풀이 약간 풀리면서 아주 불편한 눈모양이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좀 퀭하달까. 개학하고 이제 겨우 2주 차인데 뭐 이렇게 피곤한지...


3. 어제는 새벽에 배아파서 평소보다 일찍 깼다. 부랴부랴 화장실을 갔는데 힘을 줘도 뭐 나오는 건 없고 식은땀은 줄줄 흐르고, 지금 이 상태는 내 경험으로 보건대 졸도 직전 단계인데 어쩌나... 생각하다가 눈을 떴다. 아, 또 넘어갔구나. 다행히 화장실에 물기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이어폰을 끼고 들어갔었는데, 내가 놓친 부분을 돌려 들어보니 1분 남짓? 역시 내 짐작대로 금방 깨어나나보다. 


예전처럼 안경 끼고 있었다면 안경 깨지면서 다쳤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어디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넘어지면서 혀를 깨물었는지 혀가 좀 아팠지만 신경쓸 겨를 없이 출근했다. 바쁜 하루를 보냈고 저녁에는 회식까지 참여했다. 막판 컨디션이 별로긴 했지만 암튼 무사히 귀가. 그런데 머리감다가 앗!해버렸다. 머리가 아프다. 이마와 정수리 언저리가 욱신욱신. 만져보니 부풀어 있다. 넘어지면서 머리 박았구나. 화장실 타일은 멀쩡하나??


자고 일어나 보니 혓바닥에 멍들어 있다. 혀가 부풀어 있는 게 입 안에서 느껴진다. 아, 곤하구나....


보건샘은 섬유질 최강은 고구마라고 했다. 고구마 많이 먹으라고 강조하셔서 아까 고구마도 주문했다. 이제 아침은 고구마와 우유로!



4. 헤드윅은 2006년에 조정석을, 2007년에 송용진 것을 보았다. 다시 봐도 좋은 작품이고 언제나 핫한 배우들이 나오므로 늘 관심을 갖게 된다. 이번에는 조승우가 나와서 예매전쟁이 대단했다. 적극적으로 표를 구할 생각은 안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조승우 나오는 날은 모조리 매진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자리가 비어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가 취소한 표일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표를 예매했던 게 두달 전이던가??  암튼, 오늘이 헤드윅 보는 날!


5. 대학로에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하는데 웬 여학생이 '홍익대 아트센터' 어떻게 가냐고 묻는다. 나 지금 거기 가는 길이라고 하니 걸어갈 수 있냐고 묻는다. 두정거장이고 직진해서 오른쪽 방향으로 있다고 했다. 그런데 걸어갈 자신이 없었나? 나 따라서 버스 탔다. 그래서 나 내릴 때 같이 내리라고 했는데, 길치 본능이 어딜 가지 못하고 세정거장 가서 내려...;;;;;;


그나마 정거장에서 극장이 많이 멀지 않아서 다행. 이 친구는 자신이 길치라서 지금 두시간을 헤맸다고 한다. 저런! 길치가 길치에게 길을 물었어..;;;;;


대치동에서 왔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조승우가 많이 좋다고. 귀여웠다. 혼자 오면 가장 아쉬운 게 사진이어서 포토존에서 사진 찍어주겠다고 했다. 자기 폰은 2G라 곤란하다고 해서 내 폰으로 찍어줬다. 쭈삣쭈삣 포토존으로 못 들어가길래 한가운데 밀어넣어주고 연속 사진 찍어줬다. 본인 폰은 전송받으면 깨진다고 해서 학생 언니 번호로 사진 보내줬다. 그 아이 좌석은 1층이던데 명당 자리였다. 배우님이 1층 객석으로 한 세번쯤 내려갔던가? 이츠학 서문탁도 한번은 거기로 나갔고. 거의 십여 년만에 공연을 봤고, 전에는 소극장이라 모두 1층이어서 생각못했던 부분이다. 혹시라도 다시 보게 된다면 1층에서 보고 싶다. 


6. 헤드윅으로 분장한 조승우는 예뻤다. 서문탁은 이츠학 버전이 더 좋았다. 마지막에 섹시컨셉 여자 옷 입고 나왔을 때는 안습... 목소리는 정말 시원시원했는데 말이다. 


다섯 명의 배우 중에서 변요한은 드라마 때문인지 4월 말에나 합류한다. 아마 조승우 빠진 자리에 들어가는 것 같다. 조승우가 4월 말에 막공이니까. 




지금 내내 벅스에서 헤드윅 OST를 듣고 있는데 확실히 우리말 버전만큼 좋지가 않다. 국내 공연 십년이 넘는데도 OST가 나오질 않는구나. 너무 비싸게 구는 거 아님? 여러 버전으로 들어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존 카메론 미첼 버전이 제일 편하다. 


7. 육룡이 나르샤 열심히 보고 있다.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의 계보를 잇겠다는 어떤 야심이 보인다. 내용 상으로는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퀼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주 드문 시도다. 뿌나를 워낙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더 기대가 되었다. 이제 4회면 방송이 끝난다. 이 드라마 최고의 소득은 변요한이다. 미생에선 촐랑촐랑 가벼운 역이었는데 이 작품에선 제법 무게감이 있고 어둡기까지 해서 더 애틋한 캐릭터다. 문득 박은태가 떠올랐다. 배우들은 본인 성격은 엄청 수줍고 소심한데 배역에 따라 변신하는 경우가 더러 보인다. 어쩐지 변요한도 그러지 않을까... 그냥 내 짐작일 뿐이다. 


변요한이 맡은 이방지는 삼한 제일 고수다. 뿌나 때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무술 장면이 보기 좋았다. 이미 죽었지만 아주 사랑스러웠던 악당 캐릭터 길태미와 한판 가르고, 그가 갖고 있던 삼한제일검 칭호를 가져올 때, 또 어린 시절 비극적으로 헤어졌던 연희를 다시 만나서 두번 다시 보지 말자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게 인상 깊었다. 자주 두 눈을 질끈 감곤 하는데 사극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연기 내공에 감탄. 


이 작품에선 '무이이야'란 ost가 아주 좋다. 변요한이 부른 버전은 처량하고,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부른 락버전은 시원하다. 그리고 합창 버전도 있는데 위화도 회군과 같은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배경에 깔리는데 전율이 흐른다.


노래만 따로 들었을 때 변요한은 평범했다. 그렇지만 작품 속 장면과 함께 들으면 심금을 울린다. 무반주로 부른 청산에 살어리랏다도 그랬는데 이건 음원 다운이 안 된다. 아쉽!







하현우는 요새 복면가왕에서 활약이 대단하다. 처음 나왔을 때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막을 청소해주는 듯한 시원한 고음! 차지연 기록도 넘어서기를!



8. 뿌나는 확실히 퓨전사극이었는데 육룡이 나르샤는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중간쯤으로 보인다. 이성계 역할의 천호진은 확실히 정통사극 연기다. 정도전은 초기엔 개그도 좀 선보였는데 줄곧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어정쩡하다. 배우의 낭비랄까. 아무래도 이방원 역의 유아인이 더 빛날 수밖에 없고, 길태미의 박혁권이나 이방지의 변요한, 무휼 역의 윤균상 쪽으로 더 시선이 간다. 뿌나에서 제일 좋았던 캐릭터는 무휼의 조진웅이었는데, 이번에 윤균상이 젊은 무사 무휼을 잘 만들어내서 참 좋았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같은 영화 캐릭터는 참 별로였는데 허당이나 개그 쪽이 훨씬 낫다. 지금은 무게 잡는 역할도 제법 어울린다.


뿌나와의 연결고리를 잘 만들어주고 있는데, 이성계가 막내 아들을 세자로 삼게 된 과정을 꽤 설득력 있게,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준 게 재밌었다.


9. 그러고 보니 송중기가 다시 보였던 것도 뿌나 초반에 잠시 등장했던 젊은 세종 역할을 아주 멋지게 해냈기 때문이었다. "왕을 참칭하지 말라!"라고 아비 이방원을 압박하던 그 패기. 이어서 "무사 무휼!"하고 외치며 주군을 지켜내겠노라고 외치던 조진웅의 연기! 크... 정말 멋졌더랬지.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뿌나가 더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아무튼 2주 남은 육룡이 나르샤도 끝까지 응원한다.


한동안은 메일에 광고 제목으로 "~ 했다고 전해라."가 대세였는데 요새는 "~했지 말입니다."로 통일되었다.

방송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대박인가보다. 김은숙 작가야 워낙 대사발 죽여주니까. 

애국심 투철한 군인이 불편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저런 군인을 국민들이 원하고 있다고, 판타지로 보면 족하다. 


10. 그렇지만 요새 가장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시그널 같다. 오늘 방송 종영됐다. 마지막에 끝을 잘 모르게 마무리한 것은 시즌2를 예고한 것일까? 암튼 좋아하는 배우 조진웅, 김혜수, 이제훈 모두 좋았다. 조진웅이 "끝까지 갑니다"라고 힘주어 얘기할 때, 영화 "끝까지 간다"가 오버랩되면서 참 배려 돋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나 초딩 때 담임샘이 김혜수 닮았다고 몇 번 얘기해 주셨는데, 그후 오랫동안 혜수 언니가 참 좋다. 멋진 언니야!


이제훈의 시그널 초기 연기는 대사를 너무 또박또박 발음해서 부자연스러웠다. 프로파일러라는 설정 때문이었을까? 모니터링을 한 것인지 중반 이후부터는 대사가 자연스러웠다. 파수꾼에서 고등학생 역으로 처음 눈에 띄었는데, 아직도 고등학생 역할을 소화해낸다. 진정한 동안! 이제훈이 연기한 박해영의 캐릭터는 정말 눈물 없이는 못 볼 인생사였다. 그 어리던 아이가, 그 젊은 목숨들이... 껍데기 집에서 오무라이스 해주던 사장님 역할을 씬 스틸러로 잘 해내신 뮤지컬 배우 정영주 씨 방가방가! 늘 혼자였다고 여겼던 박해영이, 자신의 주변에서 어린 자신을 보살펴주던 이재한 형사의 흔적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참 찡했다. 과거에서 온 무전이 현재에 연결되어 과거를 바꾸고, 다시 미래를 바꾼다는 설정은 판타지지만, 거기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진정한 수작! 요새는 공중파보다 케이블 방송이 더 잘 만드는 듯. 


드라마는 일주일에 한편만 보거나 안 보는 게 원칙인데 최근엔 좀 무리했다. 릴렉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16-03-1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마노아님!!
덕분에 뮤지컬, 드라마도 알게 되고...시그널은 봤어요! 건강도 잘 챙기시고요...

마노아 2016-03-15 09:21   좋아요 0 | URL
네네, 순오기님! 반갑습니다.^^
뜸하긴 하지만 종종 문화생활 페이퍼를 올릴게요. 우리 같이 건강하게 새학기를 시작해요! ^^

수퍼남매맘 2016-03-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그널 왕팬이에요 .
학기초에 건겅관리 잘하세요.

마노아 2016-03-15 09:22   좋아요 0 | URL
학기초라 더 컨디션이 메롱인가봐요. 긴장 풀지 말고 건강 챙겨야겠어요! 불끈!!

무해한모리군 2016-03-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드윅은 여러번 보았는데도 조승우군 것은 한번도 기회가 안닿네요. 엄청 섹시할 것 같은데 ^^
부럽습니다.
저도 스트레스 받으면 위가 서는 병(?)인데 의사가 운동 식이 말고는 답이 없다고 하네요.
어느땐가 나이들어 우리 맛난거 먹으러 다닐날도 있지 않겠습니까? 건강합시다~
화이팅!

참, 전당포 읽어보았는데 재미있습니다. 얼른 다음권 읽어보고 싶어요~

마노아 2016-03-15 09:23   좋아요 0 | URL
예쁘더라구요. 특히 올림머리요! ㅋㅋㅋ
헤드윅은 봐도봐도 계속 좋네요. 예매대기 걸어놨는데 과연 제게 기회가 또 올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건강히 잘 살아봅시다. 맛난 것도 먹구요~ 건강이 최고예요.
다음권 저도 기다리고 있어요. 그전에 흑집사부터! (>_<)

L.SHIN 2016-03-1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드윅.. 오래전에 영화 원작을 참 재밌게 봤었죠.
저건 뮤지컬인가요?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화장이란 참 묘해요.. 누구라도 예쁘게 만들.. ;;
전 첫 번째 사람이랑 두 번째 사람이 제일 이쁜 것 같아요. (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웃음)

마노아 2016-03-16 14:31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 예전에 보았는데 뮤지컬을 먼저 본 터라 영화는 덜 역동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런데 이번에 뮤지컬을 보면서 원작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첫번째는 변요한, 두번째는 조승우예요. 저는 조승우 것을 보고 왔고 변요한 것을 보고 싶어 벼르는 중이랍니다.

그나저나 엘신님! 반가워요(덥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