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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몹시 낭만적인 제목이다. 일본의 어느 정리의 달인은 해당 물건을 보고 설레지 않으면 과감히 이별하라고 하던데, 여전히 내 마음을 왈랑거리게 하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멋대로 짐작했었다. 예상은 바로 깨졌고 마스다 미리에 대한 실망지수만 누적되는 중이다. 끙!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걸 사서 어쩌려고?
머리에 반짝거리는 머리핀을 꽂아서, 그래서 뭐하게?
...
그러나 나는 이제 곧 중년이랄까, 이미 중년의 범주에 한 발을 들이밀고 있다. 머리에 무슨 장식을 하든 남성들의 연애대상에서 멀어져 가는 몸. 설레는 사랑의 예감을 가슴에 담고, 귀여운 머리핀을 고르는 처녀 마음을 내려놓을 시기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그저 내 즐거움을 위해 머리핀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핀을 사는 게 뭐가 즐겁다는 거야?
하는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42쪽
이 부분을 쓸 때 마스다 미리는 서른 아홉이었다. 아무리 유치한 걸 해도 이쁜 나이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근데 이건 얼마든지 상대적이다. 이제 열한살이 된 다현양도 큼지막한 핀을 꽂으면 이제 어릴 때처럼 안 예쁘다. 이제 좀 더 차분한 디자인이 어울릴 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서른 아홉의 작가도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다른 디자인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이 양반이 실망하는 포인트는 나이보다 '남자'에 있는 것 같다. 내 즐거움을 위해 머리핀을 고르는 게 뭐 어때서! 이상은, 이틀 전 나를 위한 머리핀을 하나 고르고 내 기억보다 600원이 더 나온 것 같은데 카드 영수증을 안 받아온 게 실수였다고 방금 생각한 사람의 입장이다.
조금씩 몸에 걸치는 것들의 선택 범위가 좁아져 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민소매 옷도 지금 입으면 어깨에 기합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뭐랄까, 탐욕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아마 민소매와의 이별도 그리 멀지 않은 날이 아닐까. 무릎이 보이는 스커트와도 슬슬 결별할 때일지 모른다. -44쪽
어깨 뽕도 아니고 민소매 옷이 기합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고라?? 게다가 '탐욕'까지? 이봐요 마작가님! 너무 오버하십니다.
올해는 남자들한테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이제 내년이면 마흔, 점점 더 그런 질문을 받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여자끼리 모여도
“요즘 연예인 누구 좋아해?”
이런 화제를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별로 내 친구가 지금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어졌다. 어느 샌가 끝났다. -49쪽
일본에선 남자들이 저런 화제를 많이 올리는 건가? 남학생들의 경우 어느 연령대가 되면 더이상 연예인 얘기 하지 않는 때가 있다. 관심사가 쉽게, 빨리 변한다. 저건 일본의 특징인지 마스다 미리 작가의 개인 스타일인지 모르겠다. 욘사마 열풍이 한참 불 때 중년 여인들의 애정이 얼마나 크게 넘쳤던가. 한류 열풍을 생각해도 나이 좀 먹어도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설령 관심가는 연예인 없으면 얘기 안 하면 되지 걱정도 참 많다.
이제 반짇고리를 챙겨서 다녀봐야 소용이 없다. 그런 것은 어차피 어린 아가씨들이 이성의 마음을 끌기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심술궂게 생각하는 것은 ‘동경’만 하다 말았던 청춘의 결과물이다. -52쪽
반짇고리가 실용성이 아니라 이성의 마음을 끌기 위한 도구였다고라? 1969년생인데 1949년생 같은 느낌!
이십 대가 돼서야 남자 친구 자전거에 함께 타보긴 했지만, 그건 이미 때늦은 ‘청춘’이다. 꺅꺅 즐거워하며 남자 친구의 자전거를 같이 탄들, 남들이 보기엔 ‘순수함’을 어필하여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 그 자체.... 어차피 이십 대, 삼십 대의 순수함에는 누런 얼룩이 묻어 있다. -58쪽
이십 대가 때늦은 청춘입니까? 이십 대, 삼십 대는 순수할 수 없습니까? 이 정도면 병 아닙니까??
나는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주지 못한 채 어른이 돼버렸다. 그래서 수제 초콜릿을 선물한 청춘이 있는 동 세대 사람들에게 언제까지고 패배감을 느낀다. 설령 그 사람이 지금의 나보다 늙어 보이거나 나보다 더 아줌마 같다고 해도... -66쪽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주는 로망은 이해할 수 있다. 근데 그거 못해본 사람은 해본 사람에게 패배감까지 느껴야 하는가. 참, 딱하다.
어른이 되어 수영장으로 데이트를 하러 간 적은 있지만, 자동차로 시작해서 자동차로 끝나는 데이트에서는 상큼한 청춘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97쪽
수영복과 샤워용품, 갈아입을 옷과, 혹은 간식까지, 나올 때는 젖어서 무거워진 가방까지! 그 모든 걸 차 없이 진행하자니 그냥 다른 데 가서 데이트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보통은 수영복 몸매나 수영복 디자인을 더 고민할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맛있어 보이는 사과구이를 전부 그에게 바치는 인생은 싫다.
맛있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둘이 반씩 나누어 먹는 게 좋다. 때에 따라서는 혼자 몰래 먹을 수도 있다.
그를 놔두고 여자들끼리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것도 즐겁다. 갈 때마다,
“다녀와도 돼?”하고 물어야 하는 인생이라면 정말 싫다.
젊을 때는 요리로 남자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길 잘했구나 생각한다. -109쪽
진심임? 앞에서 내내 징징댔던 맥락과 통하지 않는다.
연습 중에 빈혈로 쓰러지려면 역시 눈부시게 활약하는 아이가 아니고서야.... -116쪽
어릴 때야 빈혈로 픽 쓰러지는 아이에게서 낭만을 찾을 수 있겠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니 혀를 차게 된다. 더구나 눈부시게 활약하는 아이가 쓰러져야 그림이 된다고까지. 하아.... 답 없네요.
내 생각에는 스스로 청춘을 쫓아내는 것 같다.
요건 공감이 간다. 정말 참석하기 싫고 축의금도 아까운 그런 결혼식 말고, 축하해주고 싶은 친한 지인의 결혼식에 한껏 멋내고 참석할 때의 설렘 같은 것. 확실히 2014년을 끝으로 친구들 결혼 소식은 못 듣고 있다. 이제 돌잔치나 둘째 돌잔치 같은 연락만 온다. ㅠ.ㅠ
근데 일본에서는 신랑 신부에게 인사하러 손님이 가나 보다. 우린 식사하고 있으면 신랑 신부가 테이블 돌면서 인사를 하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인데, 정말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이 살짝 들었음 ㅎㅎㅎ
저런 걸 '공주님 안기'라고 하는구나. 웬만큼 가볍지 않으면 남자 허리 나가지 않을까? '미남이시네요'란 드라마에서 장근석이 쓰러진 박신혜를 저렇게 안고 차에 태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정말 안습이었다. 지금처럼 젖살 빠지기 전 신혜 양은 여전히 예뼜지만 공주님 안기는 다소 무리. 비쩍 마른 장근석이 막 휘청였던 기억이 난다. 천둥의 신 토르같은 근육남이 아닌 이상 웬만해선 힘든 설정이지 싶다.
어려보이는 것도 탈인감? 괜찮다는 것도 싫으면 뭐라고 해??
마스다 미리는 '주말엔 숲으로'가 최고였다. 그밖의 여러 작품을 읽었는데 다 고만고만하다. 특히나 이 작품의 경우 이런 걸 책으로 내는 건 종이 낭비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나도 소심한 편이라 생각하고 남의 시선 당연히 신경 쓰일 때 많지만 이 작가님은 중증인 듯. 읽으면서 갑갑해서 혼났다.
내 멋대로 제목에 감정이입하자면 여전히 나를 두근거리게 하고 설레게 하는 것들은 참 많다. 너무 많아서 다 쓸 수가 없네.
집에 아직 비닐도 안 뜯은 마스다 미리 작품이 많은데 미간이 절로 찌그러지고 있다. 부디 '주말엔 숲으로' 때의 애정으로 다시 회복될 작품들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