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나의 뮤지컬 파트너와 함께 명성황후를 보러 갔다. 원래의 계획은 명성황후를 보고 예술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전시회를 하나 보는 거였다. 제나 할러웨이와 가우디전 중에서 먼저 끝나는 제나를 볼 생각이었는데 이틀 전에 마음이 바꼈다. 티몬에서 맨 오브 라만차 40% 할인하는 게 아닌가. 우린 둘다 류정한 배우를 아주 좋아하고 있었고, 언니는 집이 진주이기 때문에 라만차 보러 서울을 한번 더 오느니 하루에 두 탕 뛰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명성황후 보고 바쁘게 신도림으로 이동해서 라만차를 보는 게 우리의 계획!
뮤지컬 명성황후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 역사왜곡적 느낌이 강하다는 평을 들어왔고, 그녀가 비극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안쓰러움을 느낄 뿐, 역사적 평가는 엄연히 손을 들어줄 수 없으므로. 그래도 좋아하는 신영숙 배우가 주연을 맡아서 뭔가 우정의 느낌으로 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좌석은 B석. ㅎㅎㅎ
내 앞에는 모녀가 앉았는데 이 엄마가 자꾸 고개를 앞으로 빼는 것이다. 사실 4층은 고개 앞으로 내밀어도 무대가 보일 거리가 아니다. 우린 망원경 들고 갔으므로 멀어도 상관 없었지만 망원경 없이 4층은 그냥 노래만 들어야지 별 수 없다. 하여간 이 어머니가 자꾸 무대를 가리는 거다. 뮤지컬 공연장들이 하나같이 앞뒤 간격이 너무 좁아서 앞 사람이 등받이에서 머리를 떼는 순간 뒷사람은 시야를 가리게 된다. 시작할 때 내가 등받이에 붙여 앉아 달라고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자꾸 앞으로 숙여서 화면의 1/3을 가려주신다. 아흐 동동다리...
그러다가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딸내미랑 자리를 바꿔앉았다. 근데 이 딸내미는 보다가 자꾸 일어서 버려서..ㅜ.ㅜ
그리고 애가 자꾸 질문함. 사실 뮤지컬 보기엔 애가 좀 어렸다. 초등 1학년이나 됐을까 싶은 나이.
중간에 문자가 와서 답장까지 한다. '저희가 지금 서울에 있어요. 블라블라블라...'
그 환한 불빛에 좌우 상하에서 모두 아우성에 눈총을 주어도 끄떡도 않는다. 와, 최강 민폐모녀.
게다가 내 옆에 아저씨가 1막 시작부터 끝까지 부채질 파닥파닥... 좀 덥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쩜 그래..ㅜ.ㅜ
작품도 별로였지만 관람 환경도 최악이었다. 우린 2막은 우리 뒷줄 빈좌석 가서 앉았다. 보통 앞으로 땡겨 앉으면 바로 직원들이 응징 들어오는데 뒤로 가서 그런가? 별 말이 없었다. ㅎㅎㅎ
명성황후가 살해됐을 때 순종은 22세였다. 그런데 순종 역할 배우는 열살도 안 된 어린 아이를 데려다 놓았다. 이 작품은 올해로 20년 된 장수 작품이다. 지난 20년 간 고증 측에도 못 끼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수정하지 않고 뭐했을까? 너무 게으른 것 아닌가?
누군가의 후기를 보니 마지막 곡 '백성들이여 일어나라'가 이 작품의 전부라는 평을 썼던데 공감한다. ㅎㅎㅎ
신영숙 배우는 99년도에 이 작품에서 '손탁' 역할로 데뷔했다. 당시 명성황후 역할을 맡는 게 꿈이었다고 하는데 16년 만에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나는 신영숙 배우를 2002년 바람의 나라 때부터 봐왔는데 내 생각에 베스트는 모차르트 황금별과 레베카의 덴버스 부인이다. 더블 캐스팅 된 김소현과는 동갑인데 더 나이들어 보여서 살짝 안타깝다. 노래는 훨씬 잘하는 데 인지도가 그보다 낮은 것도 아쉽다.
다음 뮤지컬을 위해서 이동해야 하는 우리는 커튼콜을 보지 못한 채 바로 지하철 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신도림 역에서 바로 연결된 디큐브 아트센터로 이동. 푸드코트에서 밥 먹고 스벅에서 프라푸치노를 한잔씩 하기로 했는데,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가 지하2층에서 안 서고 바로 지하5층으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엘리베이터 이상하다고 투덜거린 우리는 다시 지하2층으로 올라갔는데, 문 열리고 보니 우리가 탔던 곳이 보였다. 응?
우리가 지하1층에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온 걸 깜박하고 지하1층으로 착각한 것이다. 아, 덤앤더머가 따로 없네...;;;;
두번째 뮤지컬은 맨 오브 라만차. 라만차를 2012년에 류정한 거로, 2014년에 조승우 걸로, 이번에 다시 류정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캐스팅은 류정한 돈키호테에 알돈자는 전미도, 산초는 김호영.
김호영 배우는 모처럼 걸맞는 분위기였다. 2007년 바람의 나라에서 전년도에 조정석이 너무나 잘했던 호동왕자를 말아먹는 바람에 내게는 아웃이었던 배우였다. 게다가 이석준의 뮤지컬 이야기쇼에서 연속으로 출연했는데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 역시나 애정전선에 들어오지 못했는데 까불까불하고 귀여운 산초에는 잘 맞았다. 역시 몸에 맞는 옷이 있는 법
사실 세번째 본 거니까, 내용도 다 알고 노래도 다 아는데, 새삼 감동일 것도 없건만 어이 없이 또 감동 먹고 말았다. 이룰 수 없는 꿈... 이 노래를 2012대선 정국에서 많이 들었다.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나서 더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노란 포스터가 또 누군가를 연상시키기도...
오늘은 2005년 초연 때의 류정한 라만차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우와, 십년 전 젊디 젊은 류돈키의 덜 잦아든 목소리가 눈에 띄었다. 확실히 지금이 더 노련한 목소리로 노련한 노래를 해내는구나. 귀족적인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커튼콜 기립박수까지 마치고 로비에서 사진도 다 찍고 거의 마지막에 우리가 내려왔는데, 엘리베이터가 지하1층에 안 서고 지하5층으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이 무슨 아까의 재탕!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세개였는데 두번째 탄 애도 지하1층으로는 안 간다. 세번째도 마찬가지. 겨우 지하3층까지 올라갔는데, 비상구 계단도 안 보인다. 결국 쉐라톤 호텔 쪽으로 건너가서 거기 엘리베이터로 지하철 역 방향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랑 궁합이 참 안 맞는 하루였다.ㅡ.ㅡ;;;
국내배우ost는 없고, 프로그램북은 품절, 폰케이스는 내폰이 최신형이 아니어서 맞는 게 없고, 아쉬운대로 냉장고자석 하나 사왔다. 디자인과 색깔이 참 예쁘다.
이 작품이 국내 무대에 오른지 십년이건만 국내배우들의 ost는 여전히 없다. 저작권 문제인가? 10년이 되도록 해결이 안 된?
수입 뮤지컬들은 오리지널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들어보면 우리나라 배우들이 부른 게 더 좋다고 느끼곤 한다. 오늘 여러 버전을 들어봤는데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온 배우들의 연기가 더 살아있는 것 같고 느낌도 더 좋다. 무엇보다도 '우리말'의 후광을 무엇으로 대체할까. 그런데 애석하게도 공연실황을 음반으로 만나기가 너무 힘들다. 제발 좀 만들어 달라달라달라!
오늘 뮤지컬지심에 푹 빠져서 예전 티켓북을 찾아보았다. 류배우님 공연을 열다섯 편 정도 본 것 같다. 생각보다 많진 않네. 초기에 갓스펠을 봤던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ㅠ.ㅠ 클로저 댄 에버는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정한 오빠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지저스를 했어도 참 좋았을 텐데... 소속사 없이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대형 뮤지컬에 주연을 꿰차는 것도 대단대단. 암튼 난 류지저스를 보고 싶다는 거지. 하지만 볼 수 없으니 은지저스한테 또 마음이 가는 거지... 은 지저스를 막공 때 한 번 더 봐도 되려나? 볼까? 그래도 될까? 좀 찔릴까? 아, 고민고민...
빵! ▼
펑!
(대신...)
이번 주의 주제색은 블루!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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