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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가는 꽃 없다고 말하지 말라
김기현.안도현 엮음, 송필용 그림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4월
평점 :
제목과 표지에 반쯤 홀려서 구입한 책이다. 퇴계 이황이 매화를 노래한 시들을 퇴계학을 전공한 김기현 교수가 번역하여 해설을 달았다. 그리고 그걸 다시 안도현 시인이 좀 더 우리 입말에 가깝게 한번 더 번역...이라 하긴 어렵고, 다듬어서 시를 실었다. 그리고 송필용 화가가 매화 그림을 삽화로 곁들여 완성했다. 아마도 야심찬 기획이었겠지만, 뭔가 소모적인 기획이 아닌가, 읽고 나서 생각했다. 왜냐하면 김기현의 번역과 안도현의 다듬은 시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같은 시를 궁서체로 한 번 읽고 휴먼매직체로 한 번 더 읽는 느낌? 굳이 두번씩 읽어야할 만큼 이황의 매화시가 크게 매력적이지도 않다. 뭐 이건 취향 문제이겠지만.
원색을 쓴 것보다 파스텔에 가까운 매화 풍경이 더 고왔다. 그래도 인상적이어서 사진은 찍었다.
읽으면서 앗!하고 놀란 부분 한 가지. 195쪽에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사람들은 매화를 보면 매실주와 매실음료수와 매실장아찌만 생각한다. 매화가 꽃필 시절에 추위가 닥치면 매실의 수확이 줄어들 것만 걱정한다. 물질주의의 '추위'가 이토록 심하게 사람의 정신을 손상시키고 있다. 조화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내 안의 '순백한 꽃'을 아름답게 가꾸고 '천상의 향기'를 맑게 피울 수 있을까?
이런! 매실이 매화에서 나온 거였어? 글자만 따지면 매화의 열매가 맞겠지만, 그걸 같이 연결시켜 본 적이 없다. 매화 꽃과 매실은 너무 안 닮았잖아! 뭐, 은행잎과 은행도 물론 안 닮았지만!
매실주와 매실음료수는 같은 선상에서 연결할 수 있었는데, 사실 매실장아찌도 연결 못시켰다. 하물며 매화를!
'매화'는 늘 고매한 선비정신으로 치환되기 마련이어서 설탕 대용으로도 쓰일 수 있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벗이 된다고 생각지 못했다. 어쩐지 좀 가깝게 느껴지는 기분!
매화와 매실의 관계를 알았다는 게 이 책을 읽은 최대의 수확이다. 시는, 내 입맛엔 아니네. 너무 솔직하게 고백해서 미안하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랴. 이 책은 내게 번지수를 잘못 찾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