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리
아직도 생각할 게 많은 개구리 이야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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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 시리즈로 유명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손꼽을 만큼 적고, 그림도 아주 심플하다. 배경그림도 없고 그야말로 좀 더 통통한 졸라맨 정도로 보이는 캐릭터가 나오지만 길지도 않은 대사에는 곱씹을 내용들이 가득하다. 제목부터 이미 철학적이다. 다 읽고 나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하고 되묻게 되는 생각하는 만화다. '생각하는' 만화라고 뱉고 나니 '생각하는 개구리'가 떠오른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대답하며 다시 생각하는 그 개구리가 떠오른다. 역시,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였어!



미나코는 결혼 전에 은행 창구에서 일을 했다.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면서 전업 주부가 되었고 남편의 벌이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보인다. 딱히 부족하지 않고,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 남들이 보면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에 차오르는 허전함을 이기기 힘들다. 볕이 좋은 날은 이불 널어 말릴 생각부터 하게 된다. 주말에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남편이 있지만, 주말에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는 친구는 없다. 부르면 나갈 수 있지만 가족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알아서 연락하지 않는다. 주말엔 보기 힘든 사람으로 이미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도 괜찮다고 했고 남편도 동의했다. 하지만 단서가 붙는다. 집안일에 지장 안 주는 선에서! 친정 어머니도 남편과 가족에게 소홀하지 않는 선에서 구하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뚝딱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저런 조건들이 붙는다.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도 없을 것이고, 월급이 많지도 않을 것이며, 집안 일은 똑같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일은 왜 해야 하는 걸까? 하고 묻게 되는 것! 물론, 모두들 비슷하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면서 돈도 잘 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고마운 것이다. 이것저것 따질 새도 없이 일단 생활전선에 뛰어들기부터 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미나코도 알고 있다. 자신의 이 고민들이 사치스럽다는 것을. 그러나 사람은 아래만 보면서 살지 못한다. 경제적인 계산 만으로 살기에 사람은 무수한 욕망의 주인이 아니던가. 


미나코의 딸 리나는 어리다. 초등학교 저학년 쯤으로 보인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다. 어른들은 아이가 아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기 바라지만, 아이는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부모님이 대신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게 왜 실망스러운 건지 알지 못한다. 어른들, 특히 여자 어른들은 유난히 나이 먹기 싫어한다는 걸 아이는 의아하게 여긴다. 꽃이 시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대답도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꽃은 내년에도 피는 것을! 


이 아이도 자라서 어른이 되고, 젊음의 유한함을 아쉬워할 때가 분명히 올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럴 때에는 리나의 고모처럼 젊음은 짧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름의 생각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젊음이 짧아서 가치가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덜 서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완벽한 정답도, 오답도 아니라고 여긴다. 



아이는 주인 주자를 가지고 단어 만드는 숙제를 고민했었다. '주어'도 있고 '주인(가장이나 남편)'도 있다고 엄마가 힌트를 주었다. 아이는 주인이란 단어가 엄마가 아빠를 부를 때 쓰는 단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뜻을 모른다. 주인이란 말을 엄마는 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정도로 표현했다. 그렇지만 정말 그 뜻이 맞는 것일까 고민한다. 얼마 후 아이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냐는 작문 시간을 앞두고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누군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는 '주인'이 아니라 '주인공'을 택했다. 이 대답이 엄마의 머리를 크게 한방 치고 말았다. 


엄마는 어린 시절 자신이 되고 싶었던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엄마는 지금 이곳에 이렇게 존재하는데. 어린 리나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보다 더 똑똑하다. 어른보다 더 현명하다. 이 아이가 이렇게 자존감 있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계속 자랐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말이다. 


작품은 재밌게도 엄마가 바로 그 '남편(주인)'이란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리게 만드는 설정을 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지만, 누군가의 조연으로 전락하고 만 기분으로 살게 될 때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 조연도 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결국 주인공이다. 내가 있음으로 의미가 있는!


기분 좋은 책이다.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다. 좀 더 많은 글밥 속에서는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하다. 좋은 느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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