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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 10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4년 1월
평점 :
설희 10권이 나왔을 때, 드디어 내가 인터넷 연재분으로 본 것 다음을 보게 될 줄 알았다. 팝툰 연재 시절부터 단행본으로 구입했는데, 팝툰 잡지가 폐간되고 나서 다음 연재할 때 인터넷으로 보았고, 그후 한동안은 그 연재분이 단행본으로 나오는 걸 지켜보았다. 가장 중요한 내용, 즉 설희의 비밀이 드러난 지점까지 무료 연재였고, 이후 유료로 전환되면서 단행본 나오길 목빠져라 기다렸다. 일년 더 기다린 것 같은데 속상하게도 이번 단행본도 딱 내가 본 부분까지다. 그 후 진행 상황을 모른다. 아흐 동동다리....;;;;
뭐, 여태 기다렸는데 더 못 기다릴까. 11권을 다시 목메어 기다려야지.ㅡ.ㅜ
설희 10권의 내용은 10권 분량 중에서 가장 속시원하기도 하고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매번 최악으로만 치닫는 현실에 끌려다니기 바빴던 세라가 설희를 만나면서부터는 조금씩 변해 갔다. 좀 더 주체적인 모습을 보였고, 조금 더 제 감정에 솔직해졌고, 자신에게 다가온 행운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제일 바랐던 모습은 세라를 호구로 여기는 아영이에게 한방 먹여주는 거였다. 이번에 드디어 해냈다.
그렇다고 머리끄댕이 잡고 싸운 것도 아니고, 뺨을 날려준 것도 아니지만, 밟는다고 밟히는 상대가 아니란 걸 제 목소리로 드러냈다는 게 중요하다. 그 잘난 여시 아영이도 금세 꼬리를 내린다. 자기한테 유리한 패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 아이도 외롭고 못난 성정 탓이라는 걸 알지만 본인이 자초했으니 가련하게 여기진 않으련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기가 어딘지 바로 생각나지 않는 설희의 모습이다. 그럴 수 있겠다. 무려 400년 이상을 살아왔는데, 100년 남짓 사는 인간들의 하루와, 400년을 살고도 앞으로 400년 더 살지도 모를 설희의 하루가 같을 수 없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상대는 전생에 자신의 남편이었고, 환생해서 현남친으로 있는 사람이다. 애증이 교차하는 상대이기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걸 세이는 모르니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면 되지만, 긴 시간의 터널 속에서 외로이 갇힌 설희의 입장은 얼마나 복잡할까.
뱀파이어든 외계인이든...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어 사는 불멸의 존재라면, 그런 존재가 적어도 둘은 되어야 할 것 같다. 나홀로 그렇게 외로이 외로이 오래 살라고 하면, 그것도 참 못할 짓이지 싶다. 호기심도 생기고 탐이 나기도 하지만, 적어도 파트너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나의 지구를 지켜줘'가 떠오른다. 우리 집에 나혼자만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도 끔찍한데, 우리 동네, 우리나라도 아니고, '행성' 하나에 자기 혼자만 살아남아서 십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사람의 절망과 외로움이라니....
각설하고, 다시 설희로 돌아가 보자.
아라시는 지독히 우울하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고 있고, 끝없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세라는 아깝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 유난히 가슴 떨려하고, 그 긴장감마저도 기뻐하는 세라를 보고 있노라면 두 사람의 시간이 좀 더 허락되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김밥 말던 중이어서 장갑 끼고 있던 세라에게 앞치마를 둘러주는 모습이다. 일상생활에서 등장할 수 있는 디테일한 설정이다. 게다가 로맨틱해! 상대가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근사하다. 일본어로 나올 곡이지만, 한국에서는 세라가 입힌 가사로 불러주겠다는 달콤한 약속. 그야말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노래가 탄생하는 것 아닌가. 캬아, 멋지다!
드라마 별그대와의 공방전이 없었다면 이 사진은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날짜로 인터넷 검색창에 집어넣으면 설희와 별그대가 함께 뜬다. 이 장면을 보니 인터넷 연재 당시 섬뜩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때도 end of part라는 대목이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지금 이 시간이면 별그대 마지막회 방송이 끝나고 한참 후기가 쏟아질 때겠지. 아직 마지막회는 보지 못했다. 어쩐지 설희 신간을 먼저 읽고 보고 싶었는데, 그 신간이 내가 이미 본 거라서 구간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왠지 그게 순서일 것 같아서 말이다.
법정까지 가게 생긴 이후로 어느 사이트에서 한참 시끄러웠다. 자칭 만화 쫌! 읽어봤다면서 강경옥 작가를 듣보잡 취급하는 애를 보며 우스웠다. 정말 강경옥 작가를 모른다면 넌 만화 좀 본 사람이 아닌 거란다.ㅎㅎㅎ
학창시절에 좋아하던 작가들이 많았다. 신일숙샘, 이미라샘은 지금 무엇하고 계실까? 신일숙 작가님의 책은 애장판으로 복간이라도 되고 있지만 이미라 샘은...ㅜ.ㅜ
그래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해 주시는 황미나 샘과 강경옥 샘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황미나 샘은 보톡스로 영화 감독 데뷔도 하신다고....(이건 좀 우려스럽지만... 더 파이브 어째...;;;;)
자신의 색깔을 흔들리지 않고 유지하시고, 독특한 세계관을 계속 확장해 나가는 강경옥 샘께 파이팅을 외쳐 본다. 그런 의미에서 11권은 좀 빨리 나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