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역사, 곧 인류의 역사
서민의 기생충 열전 -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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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가득한 우리나라이건만, 기생충에 대해서 소개할 만한 대중서가 없다는 것이 저자를 안타깝게 했다.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직접 팔 걷어부치고 나섰다. 이름하여 서민의 기생충 열전! 역사에 이름을 남길 무수한 기생충들이 있겠지만, 그걸 모두 다룰 수는 없고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한 녀석들을 선택해서 소개했다. 녀석들의 생활사를 그림으로 설명하고, 위험도와 증상 등을 별점으로 표현했다. 가장 익숙한 회충이 사실은 별거 아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대중서를 표방하기도 했거니와 저자 자신이 워낙 유머 감각이 있는 분인지라 기생충에 감정이입되어 설명할 때마다 사소하게 빵빵 터졌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들 말이다.


막 나온 회충 알은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으므로 친구가 회충에 걸렸다고 해서 절교할 필요는 없다.-85쪽


어린아이들이 다 그렇듯 알을 깨고 나온 유충도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럴 때 엄마 회충이 얘야, 세상은 원래 그런 거란다라고 얘기해 준다면 훨씬 도움이 되겠지만, 어린 회충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엄마는 다른 사람의 뱃속에 있다. -86쪽


1970년대까지만 해도 50%를 넘던 회충 감염률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 1990년대에는 0.1%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한 사람 안에 수십 마리가 우글거리던 시절은 갔고, 지금은 잘해야 한 마리가 고작인 세상이 됐다. 어두컴컴한 사람의 몸 안에서 자기 친구는 언제쯤 올까 궁금해하며 고독을 삼키는 회충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아프다.-89쪽


편충은 영어로 ‘whipworm’이라고 부른다. ‘채찍 벌레라는 뜻인데, 두꺼운 뒷부분이 손잡이 역할을 하고 가느다란 앞부분이 채찍의 때리는 부분에 해당된다. 편충의 슬픈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채찍 부분이 충체의 앞부분인데 사람들은 여기를 꼬리라고 생각해 꼬리가 채찍처럼 된 벌레(Trichuris)’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느다란 앞 부분에 입도 있고 식도도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편충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는 걸 깨닫는다. 당황한 사람들은 뒤늦게 머리가 채찍처럼 된 벌레(Trichocephalus)’라고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 줬지만, 그전 이름에 익숙해진 학자들은 그냥 쓰던 대로 쓰자. 편충이 서운해 봤자 지가 어쩌겠어?”라며 기존 학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는 시에서 보듯 제대로 된 이름은 하물며 기생충에게도 중요한 법, 이 사건으로 인해 편충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94쪽


열대말라리아는 겨울철에 16~18도 이하로 떨어지면 전파가 안 되는데, 영하 10도 쯤은 우습게 넘기는 우리나라 겨울을 견뎌 낼 재간은 없다. 삼일열말라리아가 9개월이라는 매우 희한한 잠복기를 갖게 된 것도 사실은 우리나라의 겨울이 춥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 온난화가 될 경우, 그래서 우리나라가 확 더워져 버리면 열대말라리아가 유행할 수도 있을까? 이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계속 걱정하는 사안인데, 지구 온난화는 혹시 백인들의 피가 먹고 싶은 말라리아의 음모가 아닐까?-231쪽


재밌는 이야기만 전달해 준다면 대중서의 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기생충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역사도 잊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곧잘 발견된다는 미라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신선했다. 양반이든 상놈이든 모두 기생충과 함께 살았을 게 분명한데 부디 양반가 후손들이 미라로 발견된 조상들의 몸에서 발견된 기생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도리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할 귀한 자료를 주신 조상님들을 자랑스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생선회 문화에 대한 언급도 재밌었다. 일본을 더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회문화가 먼저 발전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문헌자료로 보건대 시작은 중국이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일본보다는 우리가 더 빨랐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08년도에 함께 동동주를 마셨던 두 편집자가 이 문제를 가지고 한참 논박을 했었다. 서로 문헌을 들이대면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데 그 전문성에 놀라서 기죽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유대인들이 돼지굽을 기피하는 것과 성서에 나오는 불뱀 이야기도 역시 눈길을 끌었다. 인문학과 역사와 자연과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반가운 정보였다. 회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들도 잘 지적해 주었는데 회 먹지 않는 나로서는 어쩐지 좀 더 안전해진 기분이 들어서 다소 위안이 되었달까. 하하핫!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은 무척 가볍게, 쉽게 서술되어 있다. 기생충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잠시 내려놓고, 때로 귀엽기까지 한, 그리고 어마어마한 위력을 갖고 있는 기생충들을 만나 보자. 이 책을 보고 난 뒤 기생충에 대한 흥미가 더 깊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정준호의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이 역시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무엇보다도 의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기생충의 문제는 나라별 빈부 격차와 무척 연관이 있는 문제이므로 당신의 인류애도 충분히 자극시킬 테니까.


덧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연도를 1493년으로 표기한 게 두번 나왔다. 1492년이 맞을 텐데 이상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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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2-06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싸인만 받아 놓고 부끄럽게도 아직도 이책 못읽고 있네요.

오늘 아침에 고객센터에 항의 글 남겼어요.
전 소설을 대부분 중고로 판매하는데 이렇게 표지가 찢어져서 왔으니 힝 그냥 보관해야할듯.

출근하는데 회사 입구에 유기견이 있네요. 겨울인데 털은 왜그리 박박 밀어 놨는지...
그나마 뜨신 옷은 입고 있긴 하던데 ...
뭐라도 먹이려고 쫒아 다녔는데 어찌나 짖어대고 도망가는지..
도대체 여길 어떻게 들어 왔는지 모르겠어요.
유기견 보호소에 연락해도 여기 못들어오는데 어쩐다....에혀...

마노아 2014-02-06 13:57   좋아요 0 | URL
저도 여름에 사두고 한겨울에 읽게 되었어요. 하하핫, 이런 일은 너무 많은지라...;;;;;

항의 잘 했어요. 한번도 아니라면서요. 중고책도 그리 오면 화가 날 텐데 새책이 망가져서 오다니, 나빠요.ㅜ.ㅜ

아까 유기견 사진 봤어요.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이 무슨...
옷까지 입힌 걸 보면 그동안은 사랑 받았을 것도 같은데, 그 개는 또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요.
인간은 모조리 미워 보일 거예요. 안타까워라..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