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곧 삶이야.
쉬이이잇!
제이슨 지음 / 새만화책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헤이, 웨잇...'을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 어릴 적 자신의 실수로 친구를 잃었던 아이가 한순간에 재채기 한번으로 어른으로 훅 성장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그 아이. 묵직한 그림과 절제된 대사의 제이슨 작품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대사가 전혀 없다. 그림으로만 이야기한다. 모두 열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가 유독 좋았다. 



퐁당 한 번으로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 그러나 사신은 매의 눈을 한채 이들을 지켜본다. 행복했던 순간이 지나가고 병석에 누운 아내. 



그 아내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서 사신과의 싸움도 불사한 남편이 있다. 



사신을 떨쳐내고 무사히 아내를 구출했건만, 아내는 병석에서 일어난 대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허망한 인생이다.

실제로 벼락을 맞고도 목숨을 건졌던 한 여인이, 벼락 사고 몇 시간 뒤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기록을 전에 본 적이 있다.

어릴 적에 본 어린이 명작동화에서는 머리 맡에 사신이 와 있는 걸 목격한 남자가 여자의 목숨을 살리려고 침대의 위치를 한순간에 확 바꿔버려서 여자는 살렸는데, 그 바람에 자신의 생명 촛불과 뒤바뀌어 목숨을 잃었던 내용도 떠오른다. 


내가 참 좋아하는 어느 만화가 분이 암으로 투병 중이시다. 젊은 탓이었을까. 전이가 되었고, 힘든 치료를 받고 계시는데, 홈페이지의 글을 보니 항암을 포기할 것처럼 보인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인간이 손댈 수 있는 범위 너머에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병해 주셨으면 한다. 이 작품을 보니 더 그분 생각이 간절해졌다.



해골로 표현된 죽음의 그림자. 이번엔 사신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봐도 되겠다.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그래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너무 편해져버린 탓일까. 사신은 직무유기를 해버린다. 술에 취해 잠들어 있던 날, 지켜보던 동반자는 죽을을 맞는다. 아찔했고 아뜩해졌지만, 사신은 곧 다른 사람을 만난다. 그의 새로운 동반자를... 사신이 직무유기를 하든, 열심히 지켜보든, 정해진 목숨의 유예기간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지만, 끝까지 외롭지 않게 두눈 뜨고 잘 지켜봤으면 좋겠다.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가 함께 있을게'가 떠오른다. 외로움에 사무신 사신이 나오는 그림책이다. 


나머지 여덟 편의 이야기에도 줄곧 그렇게 인생을 이야기한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 무료함에 무엇이라도 도전해 보지만 여전히 똑같은 일상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아이가 자라고 어느덧 성장해서 부모의 곁을 떠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인생을 이야기한다. 


글이 없어서 빨리 읽을 수 있지만, 그림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읽어야 하는,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그런 작품이다. 그 느림의 기다림이 즐거운 책이다. 쉬이이잇! 조용히, 내 인생의 소리를 들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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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4-01-1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도 글자 없는 그림책이나 만화책 읽는 것을 더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렇구요.
이 만화책 울림이 있네요.

마노아 2014-01-19 01: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글자가 없는 그림책들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어렵기도 해요. 그걸 아주 쉽게 표현해내는 데이비드 위스너가 참 좋아요. 이 작품도 좋았지만 전작인 '헤이 웨잇'은 더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