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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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듯하다. 장르와 연령대를 모두 통틀어서.  



여기 오리가 한 마리 있다. 어느 날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느낌이 이상해서 알아차려버린 '죽음'이라는 존재. 

둘은 친구가 되었다. '죽음'이라는 자각만 하지 않는다면 꽤 멋진 친구였다. 오리에게도, 그리고 죽음에게도... 

친구가 된 둘은 함께 놀았다. 오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못으로 죽음을 이끌었고, 그 축축한 곳을 죽음은 좋아하지 않았다. 



추워하는 죽음의 몸을 자신의 날개로 덮어주는 오리. 

아무도 죽음에게 그런 호의를 베푼 적이 없었는데, 놀란듯 굳어버렸지만 사실은 감동먹어 버린 죽음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둘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오리가 좋아하는 연못에 갔듯이, 죽음이 좋아하는 나무 위에도 올라가 보고, 오리가 맞닥뜨릴 진짜 '죽음' 뒤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 부분, 몹시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같이 생각해봐야 할 명제들 말이다. 



그리고 맞닥뜨린 오리의 진짜 죽음. 축 처진 친구의 육신을 안아들어 물 위로 띄워보내는 죽음. 

오리가 가장 좋아했던 곳이라는 걸 기억했음일 것이다. 



죽음은 오랫동안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퍼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삶이라는 것을, 죽음은 알고 있었다.

여운이 길었다. 어른이 읽어도 좋을, 어쩌면 더 좋을 책이었다.  

물리적 죽음 이외의 다른 죽음도 생각해 본다. 유년 시절의 죽음, 청년 시절의 죽음... 그것들은 이별이지만 새로운 탄생이 될 수도 있다. 세밑에 다시 읽어서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이제 몇 시간 뒤면 한 살을 더 먹게 되는데, 2009년의 나와 작별을 고하고, 2010년의 나와 만날 때이다. 슬프지만 그것이 곧 삶이라는 걸, 나 역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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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자 없이 그림으로 읽어봅시다.
    from 그대가, 그대를 2014-01-17 17:31 
    '헤이, 웨잇...'을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 어릴 적 자신의 실수로 친구를 잃었던 아이가 한순간에 재채기 한번으로 어른으로 훅 성장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그 아이. 묵직한 그림과 절제된 대사의 제이슨 작품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대사가 전혀 없다. 그림으로만 이야기한다. 모두 열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가 유독 좋았다. 퐁당 한 번으로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 그러나 사신은 매의 눈을 한채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