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 박문사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한다. 


제목이 주는 섬뜩함이 있었다. 안중근이 죽인 이토히로부미가 안중근을 쏘았다? 호감이 갈 법하다. 

이 책은 굉장히 짧은 역사소설이다. 폰트도 아주 커서 15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토는 죽었고, 안중근도 사형 당했다. 그는 나라 잃은 조국에 큰 획을 그으며 영웅의 이름으로 잠들었지만 남겨진 가족의 생은 분명 서러웠을 것이다. 안중근의 어머니는 아들 못지 않게 담대하시고 큰 배포를 가지셨지만, 안중근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도 그럴 수 있었을까? 큰 아들은 일곱살 어린 나이에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어버렸다. 낯선 사람이 준 과자였다. 배고팠던 아이가 허겁지겁 삼켰을 과자에 발라져 있던 독. 끔찍하다. 그러니 그 어미가, 남은 아들과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둘째 아들 준생의 힘겨운 성장과정을 극화시켜서 독자에게 보여주었다. 심지어 임시정부가 습격을 당할 때 안중근의 유가족을 챙기지 못해서 김구 선생이 진노한 이야기도 소개되었다. 어쩌면 준생은 버림 받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민족의 영웅이고 조국의 영웅이지만, 그에게는 처자식을 버린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가 모진 세월을 견디면서 아버지에게 원망의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가 이토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하며 전국을 순회한 일을 용납할 수는 없다. 그의 행위는 아버지를 배신한 것뿐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행위였다. 한 사람이 견디기에는 가혹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장준하 선생님의 아들 장호권 씨의 인터뷰를 보면 민족의 큰 발자국을 남긴 거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비애가 잘 느껴졌다. 가족은 돌보지 못하고 조국과 민족만 생각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비명에 가시고 남겨진 가족도 테러를 당하며 험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서 원망이 드는 것과 별개로 인간 장준하를 존경했다. 아버지가 남긴 족적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며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안준생도 그래야 했다.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당장 입에 풀칠하며 살기도 어려울 때에 보통의 결심과 각오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역시... 이건 아니었다. 호부 아래 견자가 나온 꼴이니... 아버지는 물론 그에게도, 또 나라 전체에도 비극적인 행보였다. 


이 책은 안준생의 입장을 많이 옹호하는 느낌으로 쓰여졌다. 역사 소설이라고 이미 밝혔지만, 안준생의 입장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것은 아닌지, 다소 위험하다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이게 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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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3-10-08 23:09   좋아요 0 | URL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고 30년 뒤의 일이었어요.
제가 어제 몰아서 급하게 쓰다 보니 너무 생략을 많이 했네요.
집에 가서 조금 더 보충해서 써야겠어요.
안준생은 안중근의 아들이에요. ㅜㅜ

2013-10-08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3-10-08 23:09   좋아요 0 | URL
앞에는 준생이라 쓰고 뒤에는 중생이라 썼네요. 오타예요. 수정했어요.^^;;;;

아무개 2013-10-0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중생이 실제로 사과한거 였어요? 헐...저는 소설속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네요.
이래서 어설픈 정보가 더 나쁘다는 ㅜ..ㅜ

잘지내시죠?
날씨가 쌀쌀해지니 여기저기 감기 바이러스들이 난리난리입니다.
감기조심~~ ^^

마노아 2013-10-07 13:21   좋아요 0 | URL
부끄러우니까 사실은 잘 언급이 안 되죠.
뭐, 윤봉길의 손녀도 지금 새누리당에 가 있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최필립 정수장학회 전 이사장의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죠. 하하핫...ㅜㅜ

어제는 태풍이 오려는지 바람이 엄청 거셌는데 오늘은 바람이 별로 안 부네요.
추울 줄 알았는데 은근 덥구요. 이런 날씨가 감기 걸리기 정말 좋죠.
우리 건강 유의하고 완연한 가을날에 만나요. 낙엽 좀 밟아 봅시다.^^

transient-guest 2013-10-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 한 분들이 해방 후에 자식들은 독립운동 시키지 말자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기억도 희미한 아버지보다는 당장의 밥이 더 급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더구나 이런(?)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매우 교묘하게 당위성을 조작하니까요.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입니다. 친일청산은 커녕 정치, 사회, 경제, 언론, 등등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다양하고 많은 분야에서 상위자리를 차지한 것은 친일 매국노와 그 후손들이잖아요. 속상하네요.

마노아 2013-10-08 15:1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은요, 다시 우리나라가 식민지배와 같은 국난을 당하면 두팔 걷어부치고 독립운동할 수 있을 것인가 묻게 되어요. 이 꼬라지를 보면 말이지요. 한숨 나와요... 정말 속상하네요.ㅜ.ㅜ

maestroX 2013-10-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아들이 독살당할 때 나이가 7세 였다면 안준생씨는 다 어렸겠죠. 당시 힘없는 사람이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너무 호되게 나무라지 마시길... 당신이라도 별 수 없었을겁니다^^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것도 안증근 의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마노아 2013-10-12 22:37   좋아요 0 | URL
7세보다 더 어렸을 나이의 안중생 씨를 얘기하는 게 아니니까요.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었다-로 마무리 짓기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죽하면 안준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가 호부견자일까요. 안중근이란 빛을 얘기하면서 안준생이라는 그림자도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쉬쉬하는 게 더 욕되게 하는 것 아닐까요.

maestroX 2013-10-1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은 부모에게서부터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자라난 환경도 그 이상 중요합니다. '호부견자'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아버지와 아들을 대조하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결국 안준생씨를 만든 안중근 의사나 그를 돌보지 못한 우리 사회의 과거 모습을 탓하는 것이 됩니다. 당시 손가락질을 받는 반 고아를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마노아 2013-10-13 10:33   좋아요 0 | URL
저는 안준생 씨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끝까지 헌신해 놓고 해방된 조국에서 오히려 억압 받고 탄압받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가족들이 가난에 시달리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살게 된 우리의 현실이 더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역사가 기막히다고 쓴 겁니다. 2년 쯤 전에 한국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가 사망을 했는데 암투병 중에 돌아가셔서 장례비 포함 1000만원의 부채가 있었다고 해요. 조의금으로 500을 갚고 500이 남아서 정부에 탄원서를 올렸다고 하네요. 이명박 대통령께서 친히 '10만원'을 조의금으로 냈다고 합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 거죠...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