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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평점 :
나는 꼽사리다를 한참 들을 때 우석훈의 소설 출간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까 지난 대선 전이었나보다. 영화로도 제작이 될 것이고 어쩌고 저쩌고... 우석훈은 몹시 흥분되어 있었고 들떠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소설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우린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 정부 10년을 지냈지만, 그 10년 동안에도 참 허덕이며 살았다. 물론, 이때의 '우리'는 지금도 재산 숨기느라 분주한 그런 사람들을 말함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해도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선 '경제 민주화'가 화두였다. 본심이야 어떨지 몰라도 박근혜 후보 역시 표면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쳤다. 뭐, 믿지는 않았지만.
바로 그 경제 민주화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세글자를 꼽을 수 있다. 모.피.아. 이 책은 바로 그 모피아와 모피아의 권력을 찾아와 시민의 품으로 안겨주려고 하는 세력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른바 쩐의 전쟁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돈의 단위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오히려 실감이 덜 난다. 모피아의 대부 이현도는 시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을 흔든다. 첫번째 공격은 22조였다. 하핫, 이거 4대강 사업에 들어간 돈 아닌가. 1조라는 돈은 만 명의 사람에게 각각 1억원 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거기에 곱하기 22. 1억도 어마한데 1조를 넘는 단위가 계속 나온다. 대통령은 이 돈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경제권을 넘겨주고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다. 그 과정에서 모피아들은 야금야금 경제 부처를 장악하고 국무총리 자리를 차지하며 자기들의 기득권을 확장한다. 이런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국민들은 힘없고 무능한 대통령을 타박한다. 힘껏 밀어서 겨우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는데, 그후로도 나아지는 삶이 없으니 얼마나 힘이 빠지겠는가.
지난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루었다 해도 위와 같은 시나리오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하나마나한 정권 교체가 의미 없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껏 이렇게 배불려 온 모피아라는 실체가 두렵다. 눈에 보여서 대놓고 욕할 수 있는 재벌 그 이상이 아닌가 싶다.
이현도는 공격에 앞서 오지환이라는 한국은행 팀장을 청와대에 심었다. 오지환은 성실한 인물이었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현도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대통령이 최소한의 방어는 할 수 있게 똑똑한 인물 하나를 내준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은 오지환을 더더욱 신임하기 어려웠다. 적이 보낸 이 실력자가 진정 내 사람인지, 아니면 스파이인지 어찌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가 보여준 진심들이 결국은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설득력은 부족한.
작품에는 대단하다 싶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팬타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기녀 김수진, 돈세탁 전공 경제녀 허세연, 마지막으로 법률녀 남진경까지. 킬러들이 등장하고, 그 킬러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영화적 캐릭터들이다. 뭐랄까. 영화로 만들면 정말 그림은 잘 나오겠다 싶지만, 그 영화 역시 개연성이나 설득력은 좀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본업이 소설가인 작가가 아니다 보니 대사들도 좀 어색하다. 또 특유의 어려운 말 많이 쓰는 습관이 나와서 경제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불친절하다.
대통령은 권력을 상실하고 반쪽 권력자가 되었지만 절치부심했다. 다시 올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오지환을 비롯한 세력들이 방어진을 구축했고, 22조의 기금을 마련했다. 다시 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막어내야 할 밑천이었다. 또 대통령은 북한과 접촉해서 은근하게 통일을 준비했다. 그 대목에서 김정은과 리설주까지 나온다. 언론을 통해 접하던 이미지보다는 훨씬 살아있는 냄새가 나는 캐릭터로 말이다. 대한민국이 통일을 준비하니 미국이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다. 강정에 해군기지를 세우겠다고 하니 이번엔 중국이 버럭 성을 낸다. 이렇듯 이 책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등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들도 쏙쏙 끼어 있다. 심지어 마지막에 무한대 금액의 공격이 들어올 때는 방어하기 위한 작전 명이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나온 구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그 문구 말이다.
3부에 등장한 머니 전쟁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모피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대통령, 통일로 다가서려는 대통령에게 하야를 하지 않으면 무한대의 돈으로 공격하겠다고 이현도는 선포했다. 오지환을 비롯한 청와대 쪽 인물들은 밤을 지새우며 막아냈지만 준비한 돈을 다 털어냈을 때 환율은 2,200원이었다. 여기서 200원만 더 올라가면 대한민국이 파산이었다. 상대는 우체국 연기금마저 끌어다 썼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을 치는 공격이 나온 것이다. 정말 야비하고 더럽기가 한량 없다. 누구누구 닮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구나!
밤새 50조원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오지환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자신들이 지금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대통령이 어떤 입장에 있는지,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하루만 돈을 빌려달라고 호소했다. 공적자금과 연기금이 자국의 화폐를 공격하는 이 이상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자고, 국민의 마음이 담긴 돈이 투기자금을 이겨내는 걸 보여주자고 전 세계를 상대로 호소했다. 시민과 연대의 정신이 투기의 시대를 극복하고 신냉전으로 가는 걸 이겨내자고 읍소했다. 잘 쓰면 유용한 이 돈이 더 이상 무기가 되어 돌아오지 않게, 평화의 돈으로 만들자고 절규를 담아 부탁했다. 동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으로 확대되었고,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두른 띠의 앞에는 '원화를 지키자'라고 써 있고, 뒤쪽에는 '경제 민주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의 행렬에 시민들이 동참했고, 방송국들은 앞다투어 그 장면을 보도했다. IMF 때 돌반지 꺼내가며 나라의 위기에 십시일반으로 도움이 되었던 그 국민들이 또 다시 대통령을 돕기 시작했다. 꼬깃꼬깃 구겨진 만원자리 몇장에 주름진 손에 오래도록 걸쳐 있었던 금반지를 대통령의 주머니에 넣어줬다. 시민들은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이체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전 세계를 향해 확대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어도, 이 무시무시한 돈의 전쟁에서 검은 돈이 설치지 못하도록 힘을 보내려고 하는 연대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 것이다. 재밌었던 것은 중국 반응이었다. 무려 1조원 이나 되는 돈을 빌려준 인민 은행은 일본쪽 엔화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같이 보냈다. 하하핫, 나름 깨알 같은 재미랄까.
세계적 연대는 원산 부두 노동자 파업을 떠올리게 했다. 일제 강점기 원산에서 있었던 총파업. 그때 세계 노동자들이 연대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 중에는 식민본국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경을 넘는 뜨거운 연대였으며 참여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모습이 겹쳐졌다. 어찌 보면 무척 감상적인 접근이고 또 어찌 보면 작위적일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이 신파스런 장면들은 뜨거웠다. 마음이 돈을 이겼던 것이다. 잔돈이 목돈을 이겼고, 푼돈이 큰돈을 이겼다. 시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지켜냈다. 하야 선언을 할 뻔한 국회 앞에서 대통령은 승리를 선언했다. 머니 전쟁에서 시민들과 국제 연대의 힘으로 이겨냈고, 빌린 돈을 갚고도 무려 30조원이나 남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외환은행을 '원화은행'으로, 국민의 돈을 지키는 공공의 은행으로 전환하자고 말했다. 또 이번에 희생양이 된 산업은행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시민은행으로 전환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민을 위한 경제, 시민경제를 받치는 은행을 만들자고. 모두모두 반가운 소리였다. 이게 소설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작품에는 나름 로맨스도 나온다. 오지환과 무기녀 김수진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자연스럽지 않다. 단지 사십 대의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어떤 설득력을 가지겠는가. 아무튼 두 사람은 사랑을 했고 가정도 이뤘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북한에서 출생했다. 그 옛날 '신라방'이 있었던 것처럼 평양에는 '한국방'이라는 것이 생겼다. 당장 개성공단만 보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참으로 소원한 일이지만, 정말 언젠가는 한국방이라는 것이 평양에 생기고, 조선방이라는 것이 서울에도 생기며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협력할 때가 오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나 보는 것 말고, 현실 속에서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퇴직 공무원들의 로펌 취직을 10년 간 금한다는 법률안 제안이 책 속에 있었는데, 현실에서도 이런 것 이뤄졌으면 좋겠다. 모피아라는 곰팡이가 대한민국을 장악하며 악취를 풍기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야기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고, 이어지는 흐름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엔딩씬은 문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끼게 했다. 그래도 이야기 속에서 만나고 싶은 우리나라가 있었다. 만들고 싶은 우리 사회도 있었다. 그걸 보여준 것은 또 하나의 공이지 싶다. 돈과 마음의 전쟁! 과연 대적이 가능할까 싶은 그 대상과 당당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소설처럼, 영화처럼.
덧글) 오타가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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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내려하지 않거나 >>> 내려가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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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부에서 청와대는 뱅커들이나 기업들이 움직임을 잘 관찰하고 있었지만 >>> 기업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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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의 팔이 오지환이 어깨를 감쌌다. >>> 오지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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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어깨가 흔들리던 이현도의 눈에서 살짝 눈물이 흘렀다. >>> IMF 때 이야기니까 김 대통령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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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이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움직이는 돈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면 허세연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야말로 검의 돈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 검은 돈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