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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예민할 거야 ㅣ 사계절 웃는 코끼리 14
유은실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평점 :
화장실에서 힘주느라 잔뜩 인상을 찡그린 정이의 표정이 재밌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이다.
마찬가지로 정이가 주인공인 '나도 편식할 거야'를 미처 읽지 못했는데, 캐릭터가 겹치는 걸 보니 앞의 이야기도 내용이 짐작이 간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키도 잘 자라지 않고 몸도 마른 오빠에 비해서 튼튼하고 잘 먹고 신경도 무딘 편인 정이가 오빠에게 기울어 있는 관심을 가져오고 싶어서 예민하고 싶다고 말하려는 게 아닐까.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고모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오빠에게 침대를 사주겠다고 하자 정이는 속상하다.
머리만 닿으면 어디서든 잘 자는 정이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 마음이야 어디 그렇던가.
이래서 이층 침대가 필요한가 보다.
우리 조카들은 열두살에 여덟살이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사려고 하면 똑같은 걸 두개 사야 한다.
서로 다른 걸 두개 사면 싸움이 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배낭처럼 메고 쓸 수 있는 물총 가방을 두 개 샀다.
열두 살 짜리가 여덟 살과 똑같이 굴면서 놀려고 하고, 여덟 살은 지가 열두 살인 줄 착각하면서 이기려 드니 남매 간에 싸움이 잦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주인공 정이와 오빠 혁이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오빠는 좀 샌님 분위기인데 정이는 장부 같다.
이러다가 정이가 혁이 키를 훨씬 넘겨 버리면 혁이가 정이한테 맞을 지도...;;;;
회사가 망한 뒤 농부 학교에 들어가서 농사일을 직접 배운 아빠.
그리고 이제는 정말 농부가 되어 땅을 일구는 자랑스런 아빠다.
그 바람에 주말 부부가 되긴 했지만 두 분 사이는 좋아 보인다.
엄마는 우체국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듯.
시리즈가 더 나가면 엄마가 시골 우체국으로 전근을 가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정이네 식구가 모두 한 집에서 살 수 있겠지.
정이는 아빠를 완전히 빼다박았다. 얼굴 생김새도, 성격이나 여러 특성도 말이다.
여자 아이인 정이가 이리 생긴 아빠를 판박이로 한다는 것은 솔직히 마음이 아프지만,
씩씩한 우리 정이는 아빠 닮은 얼굴 덕분에 길도 잃지 않고 마을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다.
동네 할머니들도 한눈에 정이가 누구네 집 딸인지 알아보기 때문이다.
먹보 정이에게 먹고 싶은 걸 참는 건 심각한 고문이다.
작가님의 친구 중에는 자는 게 먹는 것보다 좋아서 잘 때 깨우는 걸 가장 싫어했다고 하는데, 우리 정이는 자기만 빼고 먹는 걸 가장 싫어한다. 그건 정말 서러운 일!
그런데 문제는 닭고기다!
한입 베어물면 군침이 자르르 흐르는 맛난 고기가 집에서 키우던 꼬붕이였다.
아, 잔인한 현실! 마음의 울림을 따르자니 뱃속의 부르짖음이 역정을 낸다.
기어이 눈물 콧물 쏟으며 닭고기를 먹는 정이.
하하하, 어른들 보기에 귀엽고 재밌지만 어린 정이 입장에서는 잔인한 먹이사슬 관계를 깨닫는 순간이다.
'꼬붕아 미안해. 너는 정말 맛있구나.'
나는 슬프다. 맛있어서 슬프다.
(이 부분은 마치 다락방님의 시를 보는 듯한 느낌!!!)
정이의 마음 속 표현이 시적이다. 웃어서 미안한데, 정말 재밌었단다.
책속 부록이다.
7,8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인데, 이맘 때의 아이들은 스티커에 열광하기 마련!
그림이 개성있고 거친 편인데, 똥 좋아하는 또래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아주 즐겁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게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유은실 작가님 책 중에서 대상 연령대가 가장 어린 책이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초등 고학년이나 청소년 대상 소설 쪽이 내게는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그래도 유아 어린이 용 책도 특유의 밝고 씩씩한 기운으로 잘 읽혔다. 여전히 반가운 작가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