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숲, 조선왕릉 (한글판)
국립문화재연구소 엮음 / 눌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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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있는 왕릉 2기를 제외하고 서울 시내와 근교에 있는 왕릉 40기를 역사성과 문화재 관리의 행정적 편의에 따라 개별 능역을 포함한 왕릉군의 개념으로 나누면, 왕릉지구 18곳이 된다.
다시 서울 시내와 서울 동쪽, 서울 서쪽으로 나눌 수가 있다.
왕릉을 조성할 당시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반경 4km 밖 40km 안에 왕실의 능역을 두도록 정한 국법이 있었다.
영월에 조성된 단종의 능은 예외로 하자.

조선왕릉은 죽은 자가 머물며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성역이라는 개념 아래 성과 속, 신분이라는 유교적 이념상의 위계질서가 반영되도록 능역을 조성하였다.
능역은 크게 능침(성역)-제향(성역과 속세가 만나는 공간)-진입(속세)의 세 공간으로 나뉜다.
능역 그 자체가 자연 환경의 일부라 생각되도록 전통적인 풍수사상에 따른, 능역의 자연 친화적인 조영 방식은 같은 동양권인 중국과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다.

왕릉의 가장 핵심인 능침 공간은 오직 죽은 자를 위한 신성한 곳으로 산 자의 접근이 엄격히 제한되므로,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조성하여 다른 공간과 구별되게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침 공간은 제향 공간인 홍살문 등에서 보면 시선이 차단되어 완전히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반면, 홍살문에서 참도로 이어지는 정자각에서는 능침 공간이 열려 보이도록 처리되었다. 능침 공간의 성역성과 신비감이 드러나도록 건축적으로 처리한, 조선왕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이다.

제1대 태조 건원릉
태조 원비 신의왕후는 제릉(북한 개성), 계비 신덕왕후는 정릉(서울 성북구)에 각각 모셔졌다.

건원릉은 고려왕릉 중 가장 잘 정비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 제도를 따랐으나, 석물의 배치 등에 변화를 주고 봉분 주위로 곡장을 두르는 등 새로운 양식을 도입하여, 조선 능제의 표본이 되었다.

건원릉 봉분은 푸른 잔디가 아니라 억새를 사초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죽기 전 유독 고향을 그리워하였기에 태종이 고향인 함흥 땅에서 가져오도록 했다.
건원릉의 봉분은 조선왕릉 가운데 가장 높게 조성되었다.

제5대 문종 현릉
문종과 현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현릉은 두 개의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이 각각 자리한 동원이강릉이다.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다음 날, 24세 나이에 산후병으로 죽어 경기도 안산의 소릉에 묻혀 있다가 문종 사후 합장되면서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그러나 단종이 죽임을 당하면서 생모의 유해가 파헤쳐져 안산 바닷가에 방치되었다가 중종 때 복위되면서 다시 현릉으로 모셔졌다.

제14새 선조 목릉

선조,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이 일정한 거리를 둔 세 개의 언덕에 따로 모셔진 동원삼강릉으로, 유일한 형식이다.
'남우여좌'에 따라 제일 오른쪽이 선조, 가운데가 의인왕후, 왼쪽이 인목왕후 능이다.

살아서 금슬이 좋았더라면 모르지만, 살아서 내내 소 닭 보듯 한 부부라면, 죽어서 합장되거나 곁에 묻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과연 망자가 좋아할지 의문이다.

제 16대 인조왕비(장렬왕후) 휘릉

장렬왕후(1624~1688)는 원비 인렬왕후가 4남인 용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15세의 어린 나이로 44세인 인조와 가례를 올려 계비가 되었다.
인조 생전에는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인조 사후에는 15년에 걸친 두 차례의 예송 논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임금의 명이 길지 않은 왕실에서 인조, 효종, 현종, 숙종 대까지 4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 노릇을 했으나 개인적인 삶은 무척 외롭지 않았나 싶다.
눈보라 치는 왕릉의 모습이 장렬왕후의 마음을 대변하는 느낌이다.

제 18대 현종 숭릉

현종과 명성왕후의 쌍릉으로 조성된 숭릉이다. 홍살문 안쪽에서 정자각까지 곧게 뻗은 참도가 잘 드러나 있다.

참도는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박석을 깐 보도인데 높낮이가 다른 두 가닥으로 나뉜다. 높이가 한 단 높은 쪽이 신도이고, 낮은 쪽이 어도이다. 신도는 홍살문을 통과한 영혼이 들어오는 길이고, 어도는 왕 또는 제관이 영혼을 맞이하여 들어가는 길이다. 참도의 바닥이 거친 이유는 참도를 걸으면서 고개를 숙여 아래를 살핌으로써, 선왕의 영혼에 존경을 표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현종은 후궁도 없이 왕비 하나만 조강지처로 둔 임금이었다.
죽어서도 부부는 꼭 붙어 있다.
어쩐지 애처가보다는 공처가의 느낌이 강하다.
숙종은 아무래도 아버지보다 엄마 성격 닮았을 듯!

제21대 영조 원릉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원릉이다. 역시 쌍릉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릉 앞으로 흐르는 금천과 곡장의 꽃담 장식이다.
엷게 굽이쳐 흐르는 금천과 그 위에 쌓인 눈이 아름답고, 꽃담의 자연스런 문양도 아름답기만 하다.
절대로 오버하지 않는 절제된 미의식이 수준 높아 보인다.

제24대 헌종 경릉

헌종은 효명세자(추존 문조)의 맏아들로, 아버지 효명세자가 요절함에 따라 순조의 뒤를 이어 8세에 왕위에 올랐다.
효현왕후와 계비 효정왕후 두 왕비를 얻었으나 슬하에 자손이 없었고, 궁인 김씨에게서 딸을 하나 얻었는데 그마저 일찍이 죽었다.
경릉은 헌종과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세 능이 한 언덕에 나란히 있는 삼연릉으로,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한 형식이다. '남우여좌'의 형식에 따라 제일 오른쪽이 헌종의 능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왼쪽이 계비 효저오앙후의 능이다.
병풍석 없이 난간석을 터서 연결한 것은 한방을 쓰는 부부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26대 고종황제 홍릉

홍릉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홍릉과 순종황제 유릉은 다른 능과 달리 황제 능의 격으로 조영되어, 상설의 규모와 종류, 배치와 구조 등이 기존 왕릉과 다르다. 능을 조성함에 있어서는 명나라 황제 태조 효릉의 제도를 따랐다.

문,무석인외에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등 석물이 사열하듯 참도를 따라 홍살문까지 줄지어 서 있다.
여기서 등장한 사자도 기린이나 해태와 마찬가지로 상상의 동물이다.

제7대 세조 광릉

광릉은 조선왕조 최초의 동원이강릉 형식이다. 본래 세조 능이 단릉으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정희왕후가 승하한 뒤 능을 새로 만들면서 세조 능의 정자각을 중간 지점으로 옮겨 동원이강릉이 되었다. 능제를 간소히 하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광릉은 참도가 생략된 유일한 조선왕릉이기도 하다.
세조는 능 주변의 나무를 잘 가꾸라는 당부도 하였는데, 덕분에 광릉 일대의 숲은 조선왕조 내내 풀 한 포기도 뽑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잘 보호되어, 현재 동식물의 낙원이자 천연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왼쪽의 사진은 지세를 따라 자연스러운 높낮이를 갖는 곡장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오른쪽 사진은 위에서 보니 기다란 모양의 하트처럼도 보인다.

제6대 단종왕비(정순왕후) 사릉

사릉은 유난히 많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 소나무 숲은 문화재 지역으로 생태자원의 영속성과 유전적 보전을 위해 조선시대 왕궁과 능원에 필요한 나무를 기르는 묘 포장이다.

초록의 싱그러운 색과, 능을 감싸고 있는 안개 낀 여운이 이곳을 보다 영적인 공간으로 느끼게 만든다.

제6대 단종 장릉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영월에 위치해 있다.
영월의 하급 관리인 엄흥도가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이후 숙종 때인 1698년 복위되면서 왕릉으로 추봉되었다.
단종의 사연을 모른다 하여도 왕릉의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을씨년스럽고 쓸쓸하다.
측면과 반대편에서 보면 이 정도는 아닌데 유독 정면에서 보는 풍경이 서럽게 보인다.

제13대 명종 강릉

강릉은 한 언덕에 명종과 인순왕후의 봉분을 나란히 마련한 쌍릉이다. 열두 면의 병풍석과 열두 칸의 난간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을 터서 두 봉분을 서로 연결하고 있다.

눈오는 날과 마찬가지로 비오는 날의 왕릉 풍경도, 특유의 분위기에 걸맞아서 더 신령스러운 느낌을 만들어준다.
홀로 우산 하나 쓰고 저 안에 놓여 있다면 그 고요한 시간에 흠뻑 젖을 것만 같다.

제19대 숙종왕비 인경왕후 익릉

숙종 원비 인경왕후의 단릉인 익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가는 참도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붉은 칠을 한 홍살문은 신성한 장소임을 알림은 물론 부정을 막는 역할을 한다. 홍살문 중앙에는 홍살을 꼬아 삼지창을 만들고 태극으로 단청을 한다. 태극은 하늘, 땅, 사람을 의미한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대조가 눈에 띈다.

제11대 중종왕비(장경왕후) 희릉

희릉은 장경왕후 단릉이나, 중종 사후 동원이강릉 형식으로 중종과 함께 안장되어 정릉이라 불린 적이 있다. 중종 제2계비 문정왕후가 중종 능만을 현재 서울시 강남구 정릉으로 옮기면서 능호가 다시 희릉이 되었다.

정자각의 뒤로 나지막한 언덕이 보인다. 언덕 위에 장경왕후의 봉분이 있다.
가을날의 능도 무척 운치가 있다. 사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공간이다.
자연이 가득하고 사람 손은 최대한 덜 탔기에 그런 게 아닐까?

제11대 중종왕비(단경왕후) 온릉

중종왕비 단경왕후가 홀로 잠든 온릉이다. 중종을 왕위에 올려놓은 반정 세력에 의해 친정아버지인 신수근이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왕비 책봉 7일 만에 사가로 쫓겨났다. 1739년 영조 때 복위되면서 왕비 능으로 추봉되었기에 상설이 간소하다.
살아서도 신산스러웠지만 죽어서도 스산한 느낌. 초라한 것은 둘째 치고 참으로 외로워 보이는 봉분이다.

제9대 성종왕비(공혜왕후) 순릉

성종 원비 공혜왕후의 단릉인 순릉이다. 12세에 자을산군과 혼인하여 14세에 왕비로 책봉되나 19세에 왕비로 책봉되나 19세에 슬하에 자식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

한명회는 살아서 큰 권세를 누렸으나 왕비가 된 두 딸이 모두 명이 짧았다.
그것도 일종의 업보였을까? 글쎄다...

제22대 정조 건릉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이다.
도심 속에서 왕릉은 도시민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고 모처럼 눈을 정화시켜 주는 자연을 한껏 보여준다.
눈으로 보지만 낙엽 밟히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왕실에서는 국상을 당하면 장례를 담당하는 임시기구인 3도감을 설치하고, 3개월에서 5개월 정도의 국장 기간 동안 왕릉이 들어설 터를 가려 골랐다. 왕릉 터는 풍수지리를 기반으로 한양에서 10리 밖 100리 이내에서 정했으며, 해자나 화소(능 바깥에서 발생한 불길이 능 구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방화벽), 주변의 산이나 지형지물로써 경계를 삼았다.

조선왕릉은 유형문화재인 능에서 주기적, 지속적으로 무형의 문화재인 산릉제례를 치르고 있는 점에서 세계의 여느 왕릉과 뚜렷하게 차별된다.
태조 건원릉 산릉제례(기신제)는 매년 양력 6월 27일 태조 건원릉에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주최로 관계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봉행되고 있으며, 일반인도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
태조 건원릉 산릉제례 이외에도 '종묘제례'를 비롯하여 역대 왕과 왕비에게 제사 지내는 산릉제가 전국 50여 곳에서 매년 봉행되고 있다.

2007년 6월 27일에 있었던 태조 건원릉 산릉제례 모습이다.
준비부터 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장면까지를 담았다.
사진들이 훌륭하고, 다양한 각도와 사계절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어서 눈이 즐거운 책이다.
간략하게나마 이곳에 잠든 왕과 왕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어 나름의 역사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오타가 좀 있고, 조사가 많이 생략되어 있어 편집에서 좀 허술한 면이 보인다.
심지어 74쪽과 75쪽은 하얗게 비어 있다. 인쇄 오류지 싶다.
99쪽에는 경혜공주가 정순왕후의 묘를 집안 묘역에 모신 것처럼 기술했는데 경혜공주는 정순왕후보다 무려 50여 년 전에 죽었다.
134쪽에는 문정왕후를 문종왕후라고 기술했다.
233쪽에는 성종과 예종을 형제지간으로 기술했다. 둘은 삼촌 조카 사이다.

자잘한 것들을 뺀다면 책을 본 소감은 만족스럽다. 보고 싶었던 책인데 비싸서 선뜻 구입하지 못하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냉큼 빌려왔다. 무겁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이제 반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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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6-17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눌와에서 나왔네요.
이런 책은 도서관에 꼭 소장해야겠군요. 궁궐의 우리나무와 더불어~

마노아 2013-06-17 23:35   좋아요 0 | URL
도서관 책들은 겉표지가 없어서 눌와 책인 걸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리뷰 쓰면서 알았어요.
어쩐지 더 반갑더라구요. 눌와 책들은 소장했을 때 유독 '뽀대'가 나요.^^ㅎㅎㅎ

oren 2013-06-17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왕과 왕비의 무덤인들 후세인들의 심금을 건드리지 않는 게 없겠지만, 저는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과 정순왕후 사릉이 특히 애닯다는 생각이 드네요.

몇 년 전에 영월에서 단종의 무덤에 제향을 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oren/4108126),
산릉제례가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문화재인만큼 소중하게 간직되었으면 싶네요.
마노아님께서 빌린 책으로 여러 장의 사진까지 올려 주신 정성 덕분에 고맙게 잘 봤습니다.

마노아 2013-06-17 23:36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렇더라구요.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런가 봐요.
영월을 가보지 못했는데 관광으로도 훌륭해 보이지만 유적지로도 훌륭한 답사지가 될 것 같아요.
소개해주신 페이퍼 글 저도 읽어볼게요. 고유 문화가 아름답게 전승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