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감독 영화가 갈수록 편해지고 쉬워지는 느낌이다. 재밌기로 치면 '하하하'가 더 신났지만 이번 작품도 꽤 좋았다. 꿈의 꿈의 꿈이 반복되고 그 사이사이 진짜 현실 이야기가 겹치는데, 해원이가 꿈을 꾸는 건지, 꿈이 해원이를 꾸는 건지(응?) 아리송송하게 연출한 것도 재밌었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 작품 출연자 중 가장 미모의 배우였을 정은채.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엄마와는 오랜만에 만났고, 그래서 모녀 사이인데도 어색함이 흐른다. 촬영 당일에 쪽대본을 주고 사전에 대본을 주지 않는 홍상수 감독이니 자연스러울래야 자연스러울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오래 못 봤고, 앞으로도 오래 못 볼 엄마와 헤어진 해원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해원은 외로웠고, 그래서 곁에 누군가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불러낸 교수님은 해원의 불륜 상대. 둘은 술 한잔 하려다가 같은 과 학생들과 마주친다. 둘 사이가 들켰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교수 이선균과 그런 이선균 때문에 더 외롭고 힘든 해원이. 해원은 마음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어떤 바람을 가질 때마다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유명 감독의 사인도 받고, 갈팡질팡 어쩔줄 몰라하는 선균 대신 처음 보았는데도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며 함께 결혼할 여자를 찾는 또 다른 교수가 나온다. 이선균이 그래줬으면 하고 바랐던 마음이 그렇게 투영되었을 것이다.
홍감독은 촬영 직전에 전화해서 참여할 수 있는 배우들을 불러 쓴다고 했다. 장소 선택도 그랬을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찍기로 한 날 예상하지 못했던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그 안개 덕분에 마지막 부분은 해원의 꿈속 풍경이 더 그럴 듯하게 묘사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추가 효과다.
유준상과 예지원의 조합은 여전히 재밌었다. 두 사람이 하하하에서도 커플이었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캐릭터였는지는 시간이 흘러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튼 이쪽도 불륜 커플인데 이선균과 은채 커플과 달리 수년에 걸친 노하우(?) 혹은 연륜으로 불안불안하지는 않다. 혹시 조금은 불행할 수 있어도. 깃발이 흔들려서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말한 예지원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순간 감독은 시인으로 보였다. 또 사직동의 오래되고 작은 책방에서 내고 싶은 만큼의 돈을 내고 책을 가져가라고 했을 때 "그러면 내가 너무 드러나잖아요." 라고 말을 하는 해원의 대사도 좋았다. 매 순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모두 모아보면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총체가 될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의 총합이 나이듯이...
이 영화 볼 때 재밌는 일이 있었다. 대학로cgv 무비 꼴라쥬에서 보았는데 시작 전에 비비안 광고가 나왔다. 모델은 소지섭이었고 그가 "거기 D에 14번!"하고 부르는데 마침 내가 거기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던진 광고 문구지만 꼭 나한테 말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왈랑왈랑~
누구의 딸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해원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솔직했고, 자신의 감정에 진실했다. 도망가고 핑계대고 변명하는 남자보다 더 당당한 해원. 이름도 참 예쁘다.
★★★★
18. 링컨
아, 이 영화는 정말... 슬프다. 무려 150분에 달하는 영화를 본 이날, 난 시간이 그때 밖에 없었고 사실 무척 피곤했다. 그렇지만 영화가 너무 길어서 이날 밖에는 볼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피곤해도 보자~하고 극장에 입장했는데.... 입장만 하고 영화는 거의 보지 못했다. 150분 중 앞에 10분과 뒤에 20분을 빼고는 나머지 두시간을 내리 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말은 알지만 영화를 봤다고 하기는 무척 무리가 있는....;;;;
이 작품으로 또 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링컨은 키가 몹시 컸다고 해서 어떤 배우가 연기를 할지 궁금했었다. 연기할 때 혹시 위로 올라가서 했을까? 뭐 이런 상상을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이 배우 자체가 워낙 키가 크다. 187이던가. 사진만 봐도 그의 훤칠한 키가 확 드러난다. 수염 기른 마른 얼굴도 진짜 링컨을 연상케 한다. 캐스팅 잘 한 듯.
영화 마지막에 최종 투표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줄다리기를 무척 긴장감 있게 보여주었다. (내가 본 부분에서...;;;;) 토미 리 존스는 링컨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는데 투표를 위해서 연설하는 장면이 제법 인상 깊었고(너 같은 놈도 말할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의 소중함... 뭐 이런 느낌의 이야기), 또 마지막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는 장면은 반전처럼 느껴졌다. 확실히 연기 잘하는 관록의 배우들이다.
어쨌든, 난 이 영화를 봤지만 봤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평점은 생략하겠다. 뭐 전체 영화의 20% 정도밖에 보질 못했으니 할 말도 없다. 너무 길어서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또 졸지 않으란 보장도 없다.^^;;;
19. 웜바디스
좀비 영화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지만, 꽃미남 좀비가 나온다면 다시 생각해볼 의향이 있다.^^
니콜라스 홀트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나왔다고 해서 찾아보니까 비스트 역이라고 한다. 발가락이 손가락으로 되어 있던 그 친구 말하는 건가? 배역을 알려줘도 기억이 가물가물. 그때는 별로 인상에 깊게 남지 않았나 보다.
웜바디스는 너그러움이 필요한 영화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지나치게 말이 안 되어서 마치 순정만화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게 핵심이다. 그냥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이런 느낌으로 예전에 아주 재밌게 보았던 영화로 '어거스트 러쉬'가 있다.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지나치게 겹치는, 판타지 같은 영화였지만 보는 내내 행복했던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그 영화가 훨씬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의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말은 안 되지만 풋!하고 웃음이 나오고 장면장면 꽤 좋은 컷들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심장이 뛰고, 다시 사랑을 알게 되는 좀비라면, 다시 인간이 될 자격쯤 있는 것 아닐까. 비록 그 상대 여자가 자신의 남자 친구 뇌를 먹은 좀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영화는 무척 아날로그적 감성을 건드린다. 엘피 판을 틀어주면서 음악을 즐기는 좀비라니, 이거 완전 여심 자극용 아닌가. 제일 근사했던 장면은 도망치던 둘이 쫓기다가 수영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둘이 같이 손잡고 동시에 뛰어내린 게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안고 뒤로 떨어진 것이다. 물이 얼마나 깊을 지도 알 수 없고, 떨어지면서 어떤 위험이 또 있을지 알 수 없는 순간, 남자는 여자를 꼭 끌어안고 최대한 보호하면서 뛰었던 것이다. 그 부분에서 정말 심장이 쿵쿵!!
창백한 얼굴에 혈색이 돌고, 혈관 자국도 지운 R은 근사한 미소년으로 돌아왔다.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 자체로 그를 사랑해주는 그녀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름으로 R 괜찮지 않은가. 내 발음으로는 잘 안 굴러가지만...
앗, 지금 검색해 보니 여주인공 아빠로 나온 장군이 존 말코비치였다. 정말 몰라봤네. 세월에 장사 없다. 끙!
★★★
20. 파파로티
이야기의 진행과 결말까지도 무척 뻔할 거라 여겼고, 실제로도 정말 뻔한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 영화는 대체로 중간 이상은 늘 먹고 들어간다. 음악 자체가 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제훈은 군대 가기 전에 영화를 몇 편이나 찍은 것일까. 그가 군대 갔다는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
건달로 나올 때의 모습과 학생으로 나올 때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8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서른 채웠는데 여전히 교복이 잘 어울리는 앳된 얼굴이다.
그나저나 건달들은 왜 꼭 실크 소재 셔츠를 입을까나? 뭔가 이유가 있으려나???
한석규의 연기는 베를린보다 이쪽이 더 좋았다. 국정원 요원보다 시골 예고의 꼬장꼬장 선생님이 더 어울린다.
조진웅은 큰 비중이 아니었는데도 참 좋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분노의 윤리학'에서도 같이 나왔구나. ㅎㅎㅎ
강소라 연기는 좀 많이 부족했고, 오달수 연기는 늘 똑같지만 여전히 잘 어울린다.
작품에서 부른 '네순도르마'보다 '행복을 주는 사람'이 더 좋았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여러 알람 중 하나가 이 노래다. 마지막에 부르는 버전은 강요셉 혼자 부른 것이었는데, 한석규와 같이 부른 버전보다 역시 프로가 솔로로 부른 게 더 좋았다. 이제훈은 립싱크 하느라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목에 핏대 세워가며 불렀으니 말이다.
유튜브에서 강요셉 버전을 못 찾았는데 네이버 어느 블로그에 노래 올려진 것을 보았다. 퍼오기가 안 되어서 주소만 남긴다.
http://cafe.naver.com/bokmchurch/9644
몇 주 전에는 불후의 명곡 2 '해바라기' 편에서 알렉스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세련되게 편곡 그 노래도 꽤 좋았다. 그렇지만 나는 강요셉 버전이 갑!
이 영화를 시작으로 4월에도 연이어 음악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역시 음악은 늘 감동을 주는 아이콘이다. 음악 없는 세상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악기 연주하는 사람도 부럽지만 언제나 최고로 부러운 것은 역시 노래 잘하는 사람. 아, 어제 못 본 불후의 명곡 2 다시보기로 봐야겠다. kbs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
21. 장고-분노의 추적자
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라고 시작하는,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영화가 생각난다.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뭐 이런 구호를 외치는 주인공 장고가 주인공이었다. ㅎㅎㅎㅎ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분노의 추적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였다. 피 콸콸 장면에서 미학적 흥분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타란티노 감독은.
남북전쟁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현상금 사냥꾼으로 변신한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과 그에게 도움이 되면서 파트너가 된 장고(제이미 폭스)가 장고의 아내를 되찾아오기 위한 활약이 전체 내용이다.
전작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나쁜 독일인으로 나왔던 크리스토프 왈츠는 이 작품에서 좋은 독일인으로 나오는 게 재밌는 역설이다. 연기도 훌륭했다. 왈츠가 나오는 작품 중에서 별로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뭔가 뚝심있는 배우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악역으로 나온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정한 악역은 옆에 있는 사무엘 루이 잭슨에게 넘겨줘야 했다. 이래서 때리는 시엄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미운가 보다. 영화에서 제대로 분노 지수 올려주었다.
악역 오브 악역의 자리는 빼앗겼지만 여전히 근사한 배우 레오! 다음 달에는 위대한 개츠비로 날 만나러 와줄 것이다. 그 전에 소설부터 봐야 하는데....(사두고 못 읽은 무수한 책 중의 하나...;;;;)
이름이 뭐냐고 묻자 장고라며 스펠링 하나하나 불러주던 장면이다. 몰랐는데, 여기서 오른쪽에 나온 배우가 왕년의 장고였다고. 의도적인 연출인가 보다. 하하핫!
내 친구 중에 저기 장고 역의 제이미 폭스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있는데 영화 보는 내내 너무 닮아서 계속 깜딱깜딱 놀랐다.
이 영화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였지만, 거부감은커녕 시각적으로도 아주 아름답게 보였던 영화로 '렛미인'이 있었다. 리메이크작 말고 스웨덴 작 렛미인 말이다. 아마도 추구하는 성향이 다른 거겠지만, 타란티노의 피 철철 미학은 내게 어떤 짜릿함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의 작품에는 연기 잘하는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므로 티켓이 아까울 일은 없다.
★★★☆
22. 연애의 온도
헤어지고서 다시 시작한 연애를 여자 감독이 찍었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때마침 드림팩토리 회원 중 한분이 CGV 근무해서 시사회에 초대해 주셨다. 덕분에 언니와 함께 가서 재밌게 보고 옴. ㅎㅎㅎ
'굿바이 솔로' 때부터 연기 잘한다고 느꼈던 김민희는 '화차'에서 정점을 찍었고 이 영화에서도 무척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민기를 좋아하지만 연기만 보면 김민희 승!
영화는 시종일관 빵빵 터진다. 현실성은 무척 떨어지지만(아무리 정규직이어도 직장에서 저렇게 물의를 일으켰는데 저렇게 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 은행이 차티스트~ 은행이라면 더 설득력이 떨어짐!!)
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수시로 부딪혔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연인이 생길 기미가 보이자 안달복달 한다. 결국 다시 시작해보기로 하지만 처음에 헤어졌던 이유로 또 헤어지고 만다. 내가 여자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보기엔 이 영화에서는 남자가 좀 심했다. 본인이 상대방에게 미안할 짓을 했는데도 자신도 힘들다며 뻔뻔하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가. 충분히 화낼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다시 관계가 틀어질까 봐 꾹꾹 눌러 참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너만 참고 있다고 생각하지?" 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 쫘식이! 하고 꿀밤 한대 박아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싸우고 헤어지고 또 싸우고 헤어지지만 결국엔 끌리고 마는 건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악연이라고 해야 할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복수를 하고 또 그러면서도 집착하고, 알콩달콩 예쁘게 연애하는 장면들 모두가 좀 부러웠다. 그게 진심인 거다. 흑....
라미란 커플도 엄청 재밌었는데 말은 안 되지만 하여간 실컷 웃기는 했다.
★★★
23.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제주어로 '감자'를 지슬이라고 한다. 땅의 열매란 의미로 '지실'이 지슬로 굳어진 것.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며 화제를 모았고, 제주에서 먼저 개봉해서 서울로 올라온 영화다. 우리 역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통하는 '제주4.3'을 다루고 있다. 보기도 전에 뭔가 심호흡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섰는데, 영화는 뜻밖에도 밝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나라 배우들이 우리 말로 연기를 하지만 화면에는 자막이 깔려 있다. 제주 방언을 이해하지 못할 관객들을 위한 고려다. 무척이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제주가 육지 것들에게 갖고 있을 거리감이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8.15 해방 이후에도 우리 역사에 진정한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제주는 더 그랬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제주 주민들이 어느날 갑자기 폭도로 몰려버렸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들은 도주를 해야 했고 숨어 지내야 했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 주민들을 죽여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총을 들어야 했고, 아무 죄없는 사람도 쏴 죽일 수 있는 강심장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섬 전체 인구의 약 10% 가량에 해당하는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흘린 피보다 더 가혹한 것은 아직도 그들의 복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대통령이 직접 이 사건에 대해서 사과했지만, 그후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4월 3일은 국가 차원의 추모제가 열리고 위령제가 열려야 하는 그런 날이 되어야 마땅한데 대통령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참석하지 않았다. 뭐, 기대는 못 미쳤지만 예상은 했던 결과라고 해야 할까.
독특한 이름의 오멸 감독. 영화를 하나의 위령제, 혹은 굿판처럼 구성했다. 독특한 시도였다. 연기 한번 해보지 못한 제주 주민들을 출연진으로 삼은 것도 인상 깊다. 진짜 제주의 속살을 보여준 기분.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말하곤 하지만 영화 촬영 당시 정말 추웠다고 한다. 화면 밖에서 느끼기에도 스산하고 서럽게 추워 보였다. 다행히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상영되고 있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나의 영화에서 끝나지 않고 역사를 재정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는 제목이 이제는 끝나야 할 때이므로.
★★★★★
24. 지.아이.조2
지.아이.조 1편을 재밌게 보았다. 뵨사마가 출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봤겠지만, 그가 나와서 더 보고 싶었던 영화다. 1편에서 지아이조 요원들이 입고 달리던 슈퍼 수트가 이번 편에선 나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 장면이 제일 멋있었는데...
1편의 주인공이 2편에서 너무 금방 죽어버려서 당황했다. 혹시 3편에서 알고 보니 살아있더라~ 하며 돌아오려나?
영화는 무척 단순한 구조다. 개인적으로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나 본 시리즈가 더 재미 있지만 이 영화처럼 와이어 액션을 화려하게 선보이면서 닌자 칼싸움도 보여주고 제대로 부수는 영화도 나름 액션의 묘미가 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단체로 핵무기를 폐기하는 장면이 긴장감을 주었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한반도의 정세가 참으로 심난했으니까. 영화 속에서도 가장 늦게 핵무기를 폐기하는 나라가 북한으로 묘사되었다. 영화처럼 모두가 동시에 핵을 포기해 주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영화에서도 악당은 더 큰 무기를 혼자가 갖고 있을 생각에 런던을 완전 초토화시키면서 각국 정상들을 협박한다. 물론 그래픽 효과지만 땅이 뒤집어지고 건물들이 무너지며 그 위에 세워진 도시 문명이 순식간에 재가 되는 장면은 무척이나 살벌하고 아찔했다. 전쟁이라는 게 다시 터진다면 저런 화면은 영화가 아닌 우리의 눈앞에서 재생되리라.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고 화가 난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제 계속 대머리 아저씨로 나갈 생각인가? 머리카락 한올 없이도 충분히 멋있는 아저씨이긴 하지만. 영화의 진행상 3편은 당연히 나오게 되어 있다. 꼭 제일 중요한 악당은 마지막에 도망친다. 일부러 놔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
3월 2일에는 이승환의 돌발 콘서트 '왕년'에 다녀왔다.
흔히 팬들이 보내는 선물을 '조공'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 조공을 거부해 오던 이승환이 이번에는 협찬을 받았다. 본인 것이 아닌 같이 공연 보는 팬들을 위한 협찬들. 많은 팬들이 먹거리를 제공해 왔는데, 이날 먹은 찹쌀떡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 껍데기의 상호도 기억해 두었는데 두달 가까이 지나고 나니 홀랑 까먹었다. 전화해서 다녀오고 싶을 만큼 맛있었는데 아쉽아쉽....
난 돌콘을 갈 때면 노래 목록을 외어오곤 했다. 정기 공연은 곡수가 40곡 전후로 부르기 때문에 다 외워오기 힘들지만, 보통 돌발콘서트에 해당하는 돌콘은 20곡 안팎이기 때문에 외워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날 부른 노래는 이렇다.
오프닝 : 에릭 남(2곡)
1. 동지
2. 완벽한 추억
3.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인사. 가장 슬프다고 생각하는 노래 두곡
4. 남편
5. 마지막 인사(신혜양 앳된 얼굴)
6. 루머
7. warning
8. 개미혁명
9. 롹스타되기
10. 꽃
11. pray for me
12. 나는
13. 구식사랑
14. 참 쓰다
15. sorry(박시후 사건으로 노래 부를 때 몰입이 안 되었다고...;;;;)
16. 물어본다(준비해온 것들 사용하라고~휴폭 날림)
17. rewind
18. 소통의 오류
19. 그냥 그런 이야기
20. 퀴즈쇼
21. no pain, no gain
22. 붉은낙타
앵콜
23.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4. 단독전쟁
AR : 만추
오랜만에 제대로 달렸더니 삭신이 쑤셨지만 스트레스가 많이 완화된 느낌이었다. 돌아올 때에 무척 추웠지만 하나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건강한 하루를 보낸 느낌. 이 공연의 '앵콜' 공연이 4월에 있었지만 그것은 4월의 문화 생활에서 정리하도록 하자.
다시 일주일 뒤는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던 3월 9일이었다. 이날 큰 조카는 아빠와 함께 인라인을 타러 갔고, 둘째 조카랑 언니는 나와 함께 낙산 벽화마을에 갔다. 날이 어찌나 덥던지 반팔을 입어야 할 날씨여서 입고 갔던 트렌치 코트는 내내 들고 다녔고, 입고 있던 모직 치마와 스타킹도 버거웠다.
올라가는 입구에서 마주친 구조물.
쭉 뻗은 다리 위에 신사와 강아지가 서 있다. 요 구도가 참 마음에 든다. 나도 저기 끝에 올라가 보고 싶다.
예전에 갔던 벽화마을 들에 비해서는 감동이 덜했다. 아마 비슷비슷한 그림들에 익숙해진 까닭이고 날이 덥고 목이 타서 흥이 덜했는지도 모르겠다. 근처 카페에 사둔 소셜 쿠폰이 있어서 음료수를 먹었는데, 양이 너무 작아서 추가로 좀 더 시켜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음날로 있을 언니의 생일을 축하하며 미리 저녁도 먹어두었다. 모처러 햇볕을 잔뜩 쬐고 걷기도 많이 걸은 날이었다. 그리고 저런 날씨는 아직까지 다시 오지 않았다. 이제 내일 모레면 4월도 끝인데 정말 너무한다. 봄은 홀랑 건너 뛰고 바로 여름 직행일 것만 같다. 계절을 도둑맞은 기분이다.ㅜ.ㅜ
이튿날인 일요일에는 '기막힌 스캔들'이란 연극이 당첨됐다. 작년 연말에 결혼을 한 친구와 같이 보고 왔는데, 이렇게 재밌는 작품일 줄 미처 몰랐다. 서로 다른 상대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부부의 요절복통 하룻밤을 소재로 했는데 여기에 어쩌다가 끼어들게 된 '요리사' 배역이 정말정말 웃겼다. 좀처럼 재밌다 소리도 하지 않고, 작품 보고 나서 박수도 치지 않는 내 친구가 무려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이 친구를 아홉살 적부터 알고 지냈으니 수십 년 동안 처음 보는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그만큼 배꼽 빠지게 웃었다는 얘기다. 돈 주고 봐도 아깝지 않을 그런 연극이었다. 제목은 좀 흔하지만, 작품은 굿굿! 이 영화의 한 부분이 '로마 위드 러브'와 몹시 겹친다. 아주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걸 잘 소화해낸 합이 잘 맞는 배우들의 명연기에 브라보~!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인문카페 창비에서 '어깨동무 북토크' 행사를 다녀왔다. 혼자라도 다녀오길 잘했던 소중한 시간!
당시 다녀와서 쓴 후기다.
http://blog.aladin.co.kr/manoa/6302484
3월의 문화생활 정리를 빨리 하고 싶었는데 4월의 끄트머리에 와서야 페이퍼를 쓰게 되었다. 정신 없이 보낸 4월이다. 그 4월도 이제 굿바이를 하려고 한다. 아, 2013년이 벌써 1/3이나 지나가고 있다. 초조해지는 기분이다. 정신 차리자. 아직 2/3가 남았다.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