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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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가 쌍용 자동차 문제에 직접 뛰어들게 된 것은 파업 이후 열 세번 째로 나온 죽음을 맞닥뜨리고 나서였다. 해고 노동자 임성준 씨의 부인은 남편에게 보고 싶다며 일찍 들어오라고 전화를 했다. 불안해진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도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베란다로 직행,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1년이 채 못 되어 남편도 돌연사하고 말았다. 졸지에 어린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시작된 이래 13번째 죽음이었다. 그리고 공지영 작가가 이 책을 탈고할 때에 그 숫자는 22명으로 늘어나 있고, 이 책을 읽은 내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 숫자는 다시 24명으로 늘어나 있다. 이렇게 참담한 숫자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누구라도 죽을 결심을 하면 유서라도 남기기 마련인데, 22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 하나같이 유서 없이 죽어버렸다. 한 노동자는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전화번호를 다 지우고 어머니 번호 하나만 남긴 채 세상을 버렸다. 그를 잡아줄 사람이 이 넓고 많은 사람 중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을 수습할 어머니 외에는...

 

참담한 2009년이었다. 1월 추운 겨울에는 용산에서 비극적인 진압과 죽음이 있었고, 뜨거운 여름에는 쌍용자동차 파업과 강제 진압으로 생지옥이 연출되었다. 영화 '두개의 문'에서 공지영 작가를 흠칫 놀라게 했던 그 부분을 떠올려 본다.

 

“무리한 컨테이너 투입으로 무고한 경찰을 한 사람 잃고, 농성하던 시민 다섯이나 죽게 한 그 참사 앞에서 정부는 여론과 시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였으므로 자칫 정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도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자 경찰은 쌍용자동차에 드러내놓고 컨테이너를 투입했다.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46쪽

 

'관용'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무책임한 방기였다. 불과 일년 전 광우병 사태 때에는 정말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분노했고, 정부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당장 광우병 걸린 소가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발병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테지만, 우리가 먹고 있는 이 식탁이 안전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급식과 군대의 식재료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자 국민들은 똘똘 뭉쳐서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용산에서 죄없는 시민들과 경찰 한명이 죽은 일에 대해서는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하나의 둑이 터지자 더 큰 난리가 벌어졌다. 비단 쌍용자동차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쫓기고 가정이 깨지고, 삶에 균열이 갔던가. 그것들이 모두 '남'의 이야기라고 믿고 싶을 테지만, 그건 '우리'의 이야기이고,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며칠 전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망언을 한 것으로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가 막말을 한 것도 맞고, 정말정말 죄값 좀 치르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그의 죄명은 명예 훼손이 아니라 쌍용자동차 강제 진압이 되었어야 했다. 징역 10월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인간의 탈을 쓰고 짐승만도 못한 행태를 보인 이 일은 표창감이 되었다.

 

2012.3.12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쌍용차 사태가 선정되었다. 전국 수사경찰관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주요사건 중 ‘베스트 10, 워스트 10’ 후보를 공모했는데 1,192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평택 쌍용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 해결’이 베스트 5위로 선정되었다. -204쪽

 

불과 일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얼마나 야만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애초에 쌍용자동차는 부실기업도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는 기업을 헐값에 매각해 버렸고, 매입한 상하이차는 기술만 빼먹은 채 먹튀해 버렸다. 법인회계들은 멀쩡한 회사를 망가질대로 망가진 회사로 평가해 버렸고, 그 평가서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함께 살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보여준 연대는 눈물겨웠다. 형편없이 줄어드는 임금에도 불구하고 교대를 늘려 일자리를 나누려고 하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기 위해서 고용안정기금을 만들려고 했고, 심지어 퇴직금을 담보로 개발자금도 만들려고 했다. 이 순박하고 착한 노동자들은 정말 회사가 어려운 줄 알고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 이렇게까지 양보하고 희생했지만, 회사는 이들을 내보낼 생각만 했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니까 이처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더라도 함께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회사는 일방적인 해고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해고하려는 2,646명은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했던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 즉 대형 회계법인의 작품이었다. “함께 살자!”는 노조의 외침에 “미안하지만 너희가 좀 죽어줘야겠어.” 라는 대답일까?
이때부터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치워야 할 비용으로 보는 자들에 의한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된다. 나는 22명이 자살한 원인을 이 순간부터 찾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혼돈과 경계,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한다는 비인간적 폭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기 때문이다. -87쪽

 

노조는 똘똘 뭉쳐서 회사를 지켜내려고 했다. 한여름 땡볕에 단전, 단수 상황에서도 도장공장의 도료가 굳지 않게 하려고 비상발전기의 전기를 그곳에 썼다. 단전으로 도료가 굳어버리면 공장 재가동 시기가 한달 가량 늦춰지고, 그렇게 되면 피해 손실액이 1,300억에 보수 설비 및 기타 재가동 비용도 100억 원이 든다고 했다. 돈 없다고 노동자를 쫓아내는 사측은 이런 돈쯤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뿐이던가. 한번 띄우는데 600만원이라는 헬기도 수시로 띄워서 체루액을 살포했고, 파업 농성자들의 수면을 방해하며 불안에 떨게 했다. 진압 과정에서 내부에서 불이 났는데도 불 끌 생각은 하지도 않고 여전히 폭력 진압만 염두에 두었다. 이 정도면 광기를 뛰어넘은 것이 아닐까. 정상적인 사고 수준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하며, 비윤리적인 일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있어왔는지...... 정말 이 사회에 '정의'란 있는 것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고와 농성, 강제진압 과정에서 이들이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전쟁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보험급여환수 통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쌍용차 파업노동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어 재취업도 힘들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삶이 무너졌다. 이들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간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이 사회가 그들을 죽으라고 등을 떠민 것이다. 그런 가정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을 어떤 얼굴로 바라보아야 할까? 자신들의 부모님을 '빨갱이'라고 명명하는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서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리해야 할까. 언론에서도 손가락질을 하고, 이웃 사람들의 눈초리도 무섭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일까. 어디로......

 

의자놀이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하던 그 놀이. 의자를 사람 수보다 하나 덜 놓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다가 노래가 멈추는 순간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 행동이 굼뜬 마지막 두 명은 엉덩이를 부딪치며 마지막 남은 의자를 차지하려 하고, 대개는 한 명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정말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야 하는 그 의자놀이.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이 거대한 노동자 군단에게 사람 수의 반만 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치 그런 놀이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를. -92쪽

 

나만은 아닐 것 같은가? 내 의자만은 끝까지 남아 있을 것 같은가?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실이고 진실로 판명되었다. 이미 스물 네명이 죽었다. 범위를 대한민국 전체로 넓히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무참하게 죽었고, 또 죽어가고 있는지......

 

정혜신 박사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 트라우마는 어떤 질병보다 많이 죽지만, 또 빠르게 개입하면 그만큼 많이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더 많은 '와락'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가 끝까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야 할 이유이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의 연대가, 우리가 지고 있는 이 부채의식을 조금은 덜어낼 마지막 보루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실소를 날린 게 한 번 있는데 난데없이 등장한 '맥쿼리 증권' 때문이었다. 세상에, 안 끼는 데가 없구나! 이제 이번 주말을 넘기면 대통령은 임기를 모두 마치고 사저로 돌아간다. 아, 근데 그 사저가 설마 내곡동은 아니겠지???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전두환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고, 용산과 쌍용자동차에 이토록 많은 사람을 죽게 한 대통령도 멀쩡히 임기를 마치고, 자살한 부인을 애도하는 정책부장을 향해 '오 필승 코리아!'를 밤새 틀었다는 야만적인 회사도 살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단지 역사의 심판만 받지 않기를 바란다. 물리적인 심판이 꼭 따라오기를 바란다. 최루액을 뿌리는 것은 향수 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 조현오 전 청장도 합당한 대가를 꼭 치렀으면 한다. 그렇게 정의가 조금이나마 실현될 수 있기를...

 

문득, 미국에서 유난히 슈퍼히어로가 많은 이유가 정의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롭고 힘도 센 슈퍼 히어로가 나타나서 악을 제거하고 응징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말이다. 외계 행성에서 온 슈퍼맨이나, 돈 많고 힘도 세고 솜씨도 좋은 배트맨이 우리에겐 없으니, 우리는 각자가 연대해서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되는 수밖에 없다. 기억하자. 잊지 말자. 함께 하자.

 

너희들은 참 좋겠구나   - 송경동

 

너희들은 좋겠구나

이제 518 광주에서처럼

총으로 곤봉으로 대검으로

때려죽이고 찔러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어가니

 

너희들은 좋겠구나

이젠 박창순처럼 YH 김경숙처럼 박종철처럼

굳이 끌고가 물먹여 죽여도

떠밀어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죽어가니

너희들은 참 좋겠구나

 

이젠 용산에서처럼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망루에 가둬두고

짓밟고 태워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피말라 죽어가니

너희는 정말 정말 좋겠구나

이런 만고강산

이런 태평천하

이런 브라보

시간만 가면 돈이 벌리는

이런 희한한 세상이

배터지게 입찢어지게

환장하게 좋겠구나

 

노동자들만 눈물바다구나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하며 눈물바다

평생을 생존권에 쫒겨다니며

평생을 길거리에서 싸워가며

급기야 저절로 목숨까지 반납하며 눈물바다

짜디짠 눈물 바다 뿐인 세상이 참 좋겠구나

 

이 더러운 세상을 어떻게 살란 말이냐

이 서러운 세상을 어떻게 살란 말이냐

더 이상 물량과 생산성에 쫒기지 않고

더 이상 구사대 경찰에 쫒기지 않고

더 이상 실업과 생활고에 쫒기지 않고

먼저 가서 자네는 참 좋겠네 라고 얘기해야 하나

차라리 먼저 가서 자네는 행복 하겠네 라고 말해야 하나

 

무한경쟁 무한생산 무한소비로

벼랑에 도달한 것은 자본인데

왜 등 떠밀려 묻혀야 하는 것은 착한 우리들 만인가?

 

돌려 말하지 마라

이것은 계획된 살인

이것은 준비된 학살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를 향한 자본의 테러다

 

우리는 더 이상 묻힐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야 하는 것은 너희다

이 참혹한 땅에 매몰되어야 하는 것은

이 스물 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 수백만 해고 노동자들과 비정규직들이 아니라

이 시대 가장 악독한 강도이며, 구제역인 자본과 권력 너희다

너희를 묻지 않고

우리는 스물두분의 참혹한 시신을 묻을 수 없다.

너희를 단죄하지 않고

우리는 어미 아비를 잃은 이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쳐다 볼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아픈 추도시를 쓸 수 없으며

더 이상 뼈아픈 추도사를 읊을 수 없다.

 

우리 일어서자

더 이상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엄마 아빠 제발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여보 제발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일어나 싸우자

일어나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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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3 0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3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3-02-2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조현오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그렇구나'라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야만의 시대가 맞긴 맞습니다만, 그 야만의 시대가 대다수 국민들의 동의로 이루어졌기에 더 씁쓸하네요.

마노아 2013-02-24 19:39   좋아요 0 | URL
그 국민들이 뽑은 새 대통령이 내일 취임하네요. 어휴... 승질납니다..ㅡ.ㅜ;;;

saint236 2013-02-2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현오에게 막강한 비선 라인이 있지 않았나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마노아 2013-02-24 19:40   좋아요 0 | URL
문화방송 김재철도 그런 걸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