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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야 ㅣ 웅진 우리그림책 21
강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3년 1월
하얀 눈이 내리는 깜깜한 밤, 혼자 자다 잠이 깬 아이는 엄마 아빠의 방으로 가려다가 그만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고 말았다.
아무리 크게 울어도 엄마 아빠는 깨지 않았고, 아이는 약이 올라 더 크게 울었다.
그때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만 울어. 네가 그렇게 울면 사람들이 우리가 우는 줄 알고 싫어한단 말이야."
세상에, 말을 걸어오는 이는 아기 고양이였다.
"네가 울면 이 근처에 고양이가 올 수 없잖아."
고양이는 어쩐지 영물같아서, 말을 한다고 해도 그닥 이상해 보이지를 않는다.
아무도 보는 이 없으면 어린 아이에게 말쯤은 걸어줄 것 같은 존재다.
아기 고양이는 자신이 집을 찾는 중인데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아이는 옷을 입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고양이를 따라 눈 쌓인 담장 위를 걸어가는 아이의 상기된 볼이 귀엽기만 하다.
대단한 모험을 향해 떠나는 힘찬 첫걸음처럼 보인다.
아이는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덩달아 높은 곳에 올라갔고, 고양이가 지붕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면 역시 그 뒤를 따라 뛰어다녔다. 어느새 엄지발가락이 아픈 것은 까맣게 잊게 되었다.
고양이는 놀다 보니까 너무 멀리 나와 버려서 집을 못 찾게 되었다고 했다.
집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아늑하다고 했다.
비를 피할 수 있었고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바닥이 있다고.
그야말로 안빈낙도를 연상시키는 집이 아닌가.
고양이다운 의연함이 보인다. 도도하고 당당한...
둘은 한참을 걸었다. 아이는 점점 힘들어졌고, 발가락도 다시 아픈 것만 같았다.
아이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 안 나냐고 재차 물었다.
고양이의 대답이 짠하다.
"엄마 아빠가 있었어."
결국 고양이는 엄마 아빠를 찾는 중이었다.
아늑했던 집은 엄마 아빠가 계셨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는 따뜻한 곳이었다.
좁은 골목에선 무섭게 생긴 커다란 개가 지나가는 둘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큰 개는 화가 난 것처럼 짖어댔고, 고양이는 겁에 질려 한달음에 도망쳤다.
더불어 도망치던 아이는 아까 그 개한테 고양이의 엄마 아빠를 본 적이 있는지 묻기로 했다.
고양이에 대해 개에게 묻는 아이가 개는 황당하기만 했다.
왜 고양이가 싫으냐는 질문에 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개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란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
아이다운 순진한 질문인데, 정말로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는 것은 어쩌면 선입견일까? 아니면 경험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막다른 골목에서는 아기 고양이가 무서워 벌벌 떠는 생쥐를 만났다.
생쥐는 고양이에 대해서 자신에게 묻는 것에 역시 황당해했다.
아이에겐 역시 의문투성이일 것이다. 그렇지만 고양이와 생쥐는 가까이하기엔 좀 먼 사이이지.
그리고 세번째로 마주친 것은 똑같은 고양이지만 무척 경계심이 강하고, 그래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검은 고양이였다.
모두들 아기 고양이의 부모를 보지 못했지만, 또 그들은 왜 서로 으르렁거리는지도 설명하지 못했다.
그냥 그래왔으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서가 대답의 전부였다.
당연하지 않은데도 당연히 발톱을 세우고 산 그런 관계가, 이곳에만 있을까.
아이와 고양이는 한참을 걸어갔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눈은 점점 많이 쌓였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고양이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고양이와 아이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리고 갈림길을 만났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은 구멍가게 앞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쉬었다.
구멍가게의 이름이 은총이다. 강풀 작가의 아기 태명으로 보인다.^^
쉬면서 고양이는 아이에게 아까 왜 울었냐고 물었다.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자기 방이 생겼고, 그래서 혼자서 자다가 깨보니 무서웠다고 했다.
안방을 가려다가 문지방에 엄지발가락을 찧었다고...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가는 짧은 길에서 그만 울었던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기 고양이가 더 의연하고 의젓해 보인다.
인간보다 훨씬 용감한 동물의 본능아닐까.
내가 혼자서 잠을 잔 것은 다 큰 어른이 되어서였지만, 나도 그날은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한밤중에 깨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자신이 울어도 깨지 않는 엄마 아빠가 야속했을 마음이 잘 그려진다.
눈위의 발자국은 점점 새로 내린 눈에 묻혀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더 버티다가는 아이마저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기 고양이는 결정을 내렸다.
아이에게 그만 돌아가라고 한 것이다. 자신은 좀 더 멀리 가보겠다고.
아이는 더 도와주고 싶었지만 고양이는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용기가 생긴 것은 아이 덕분이었다.
무서워하던 개와 고양이, 심지어 나를 무서워하는 쥐와도 얘기를 해본 경험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서 집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새로운 한발자국을 내딛을 준비를 갖춘 것이다.
둘의 우정이 극대화되는 장면을 클로즈업 한 그림이다.
어두운 게 아니라 보라빛으로 물든 하늘이 예쁘다.
아이와 고양이에게서 나오는 얕은 입김도 따뜻하게만 보인다.
아이를 혼자 보내자니 걱정이 되었던 고양이는 다시 왔던 길을 따라가줄까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젓한 고양이를 보며 용기를 얻은 아이는 자신도 혼자 가보겠다고 말한다.
고양이는 만약 집을 못 찾으면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 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상대가 있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둘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친구들.
왼쪽으로는 아이의 발자국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고양이의 발자국이 이어진다.
"안녕."
"안녕."
아이는 혼자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길 위의 발자국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고, 아니는 돌아가는 길이 헷갈렸다.
그렇지만 집을 잃을 걱정은 없다.
아까 지나치면서 만났던 친구들이 아이에게 길을 안내해 준 것이다.
잔뜩 털을 세우며 센 척했던 검은 고양이가, 오들오들 떨던 생쥐가, 그리고 으르렁거렸던 큰 개가 아이가 가는 길을 가리켜주었다.
아이는 다시 고양이를 만나면 자기네 집을 알려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끝까지 친구를 챙겨주는 마음이 곱기만 하다.
아까는 황당해했던 큰 개가 고양이가 먼저 말을 걸면 생각해 보겠다고 한발 뒤로 뺀다.
하하핫, 아이에게 그런 것처럼 고양이에게도 똑같이 말을 걸어주면 되는 거지.^^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을 넘다가 창문턱에 또 발가락을 찧고 말았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계신 안락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 무서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다.
아이는 한밤 사이 한뼘씩 성장했고 용감해졌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잠이 든 예쁜 아이.
아이의 편안한 잠과 부모님의 보호가 마음을 벅차오르게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참으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창밖에는 고양이 가족이 보인다. 엄마 아빠를 모두 찾았나보다.
흐뭇한 미소가 내 눈에도 흐뭇해 보인다.
다시 이들이 친구 사이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양이들을 키우며, 고양이 사진 찍어 트윗에 올리는 것을 낙으로 삼던 강풀 작가.
아기 아빠가 된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본명은 은총이 아니니 아마도 태명으로 보인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동화책을 남겨준 아버지라니,
아이에게 이보다 멋진 선물이 또 있을까.
책의 앞뒤 표지 안쪽 그림이다.
첫 그림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이고, 끝 끄림은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난 뒤의 장면이다.
눈이 가득 쌓이고 있던 밤 풍경이 해가 떠오르는 여명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색감 차이는 물론, 온도 차이까지 느껴지는 그림이다.
아직도 그림 못 그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강풀 작가지만 내 보기엔 참 좋은 그림이다.
본인만의 스타일을 잡았고, 섬세함과 정교함을 넘어서는 따뜻함이 무엇보다도 좋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번째 읽을 때 더 좋은 그림책이기도 하다.
안녕, 친구야.
독자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는 강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