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민자'는 우리 동네 내가 아끼는 극장에서 보았다. 그 극장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카를로스는 불법 이민자다. 정원사로 일하면서 아들의 공부를 뒷바라지 해주며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고 꿈꾸는 그런 아버지이다. 십대 중반의 아들은 갱두목을 삼촌으로 둔 여자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서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말썽만 피우기 일쑤다. 여동생이 힘겹게 모은 돈을 보태어서 트럭을 장만한 카를로스. 그러나 자신에게 선의를 보였던 사내에게 트럭을 도둑 맞고, 그 트럭을 되찾아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더 힘겨운 일들이 이들 부자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트럭도 도난 당하고, 불법체류자로 잡혀서 강제 추방까지 당하지만, 이 사연 많은 이야기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 겨운 부정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비록 힘겹게 살지언정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을 가슴에 새긴다.
영화를 보면서 이 책 '눈물 나무'가 생각났다. 선의가 악의로 되돌아오는 고리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이유가 되는 서글픈 현실이 안타까웠다.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이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들. 그래도 영화가 주는 희망 한자락이 있어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일어설 수 있어서 기뻤다. 절절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런 배역, 우리나라에서도 소화할 수 있는 많은 배우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판으로 하나 만들어져도 좋겠다. 이 작품 역시 이탈리아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실업, 빈곤 등의 현실을 그린 1948년작 '자전거 도둑'의 리메이크니까.
★★★★★
31. 말하는 건축가는 애석하게도 앞에 5분 가량을 놓치고 영화를 보았다. 건축가 고 정기용 씨의 마지막 삶의 여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사랑을 말하고 사회를 말하고 시간을 말하는 건축가가 생의 마지막 단1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정을 담아 자신의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 사람이 종속되지 않고 자연을 억누르지도 않는 그의 건축 작업은 그의 인생을 솔직하게 담아내었다. 그가 만든 기적의 도서관처럼, 기적과도 같고 선물과도 같은 인생 여정이었다. 일민 미술관에서 있었던 전시회를 보지 못한 게 꽤 아쉽다.
★★★★★
32. 코리아는 가정의 달 5월에 엄마와 함께 보기 아주 적합한 영화였다. 조카네 식구들은 어벤져스를 보러 가고 엄마와 나는 코리아를 골랐다. 영화 시작하기 2주 전쯤이었나...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현정화' 선수의 인터뷰를 들었다. 그때 그 기록이 영화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헤어지면 전화를 할 수도 없고, 편지를 나눌 수도 없는 남과 북의 선수가 맞닥뜨린 이별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영화는 어느 정도 예상한 만큼의 감동을 주었고, 또 예상했던 정도의 식상함도 보여주었다. 스포츠 영화와 음악 영화는 어느 정도의 감동을 보장하곤 했지만, 국내 스포츠 영화는 '국가대표'를 제외하고는 리얼함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진짜 운동을 하고 경기를 하는 느낌 말이다. 우생순과 코리아가 비슷하게 아쉽다. 배두나의 연기도 좋았지만 제일 눈에 들어온 것은 유순복 역을 맡은 배우 한예리이다. 그녀의 긴장감과 절박함이 전율이 되어 전달되었다. 남북 문제를 소재로 다루면 서러움과 감동이 중첩되곤 하는데, 영화 코리아보다 역시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더 킹 투하츠'가 백만 배는 더 재밌고 더 뜨거웠다. 연기 잘한다고는 여겼지만 아주 잘한다고는 여기지 않았던 그녀의 연기가 드라마에서 더 빛났다고 생각한다.
★★★★
33.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류승용 덕분에 살렸다고 본다. 그가 보여준 카사노바 연기는 진지한 코믹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분은 '활'에서도 만주어를 아주 격정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각종 다양한 언어들을 맛깔스럽게 표현해 주었다.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오버해 주는 '끼'와 감각은 대체 어떻게 갈고 닦은 것인지... 임수정은 대사가 엄청 빨랐는데 NG가 많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초반엔 이선균에 감정이입이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니 그의 대사처럼 그녀의 외로움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물론, 외롭다고 모두 저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작품에서 이선균의 연기는 좀 아쉬웠다. 화차에서나 이 작품에서나, 연기의 차이를 못 느끼겠다. 목소리가 변화 폭이 많지 않은 편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
34. '돈의 맛'은 '하녀'의 후속편 같은 구성을 잡았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하녀'를 시청하는 장면이 나오고, 극중 김효진은 하녀의 어린 딸 '나미'와 이름도 같고, 어릴 적 자기 앞에서 자살한 가정부 이야기를 한다. 노골적인 자기 패러디라고 할까. 돈의 맛은 감상자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렸다. 나로서는 어느 정도 포기하는 마음으로 본 탓에 특별히 실망할 것도 없고 특별히 좋았던 것도 없었다. 윤여정의 연기는 늘 인상 깊었고, 김강우의 근육은 일부러 만든 티가 너무 나서 좀 부담스러웠고, 김효진은 연기가 많이 모자랐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김민희는 화차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김효진도 좀 분발하기를! 그래도 맥시 드레스?(이름이 맞나 모르겠다.)를 기막히게 소화한 늘씬한 각선미에는 감탄! 돈의 맛이란 욕망과 치욕의 줄다리기인 것일까. 지나치게 부족한 것도, 지나치게 많은 것도 문제인 것일까. 지나치게 많아본 적이 없어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아주 많은 돈도 적절히 잘 쓰는 이들도 분명 있을 거라고 본다. 그래야 좀 위로가 되지....
★★★☆
35. 볼 생각이 없었는데 볼 게 이거 밖에 없어서 본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기대를 전혀 않고 보았음에도 무척 실망스러웠다. 백설공주의 판타지 버전인데, 그렇게 판타지스럽지도 않고, 남길 메시지도 없었으니 말이다.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력이 좀 아까운 작품이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보여준 연기와 아주 똑같아서 좀 실망! 세상을 구할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스노우 화이트가 절대 악 왕비에 대항할 수 있는 조건이나 능력이라는 게, 선왕의 딸이라는 것, 그리고 빼어난 미모를 가졌다는 것 말고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녀가 적당히 보여준 용기나 온정 쯤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여러모로 아쉬움.
★★☆
5월은 영화보다 뮤지컬이나 전시회 혹은 콘서트 등 다른 문화생활이 더 많았던 달이었다. 그 각각의 내용들은 무척 만족스러웠지만 사이사이 삽질과 불쾌했던 기억들도 공존해 버렸다. 제일 화가 났던 게 블루 스퀘어에서 있었던 목걸이 귀걸이 사건이었는데 한 달 넘게 지나고 나니 이제는 그 기분도 희석되어버렸다. 지난 한주가 아주 고단했는데, 이 기억과 찝찝한 심정도 시간 지나면 분명 해독이 될 테지.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숨쉬겠다. 영화 감상은 잠시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영혼을 쉬게 해주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