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무]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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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무 ㅣ 양철북 청소년문학 1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평점 :
서평 도서를 받아들고는 깜딱 놀랐다. 책 표지가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내가 받아본 어떤 중고도서보다도 끔찍했다. 헌데, 자세히 보니 지저분한 컨셉을 디자인으로 잡은 것이었다. 지금도 언뜻 보면 꼭 피가 묻은 듯한 느낌이어서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민자들의 눈물과 기구한 사연을 듣고 자라는 눈물나무. 그리하여 물이 없어도 자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나무. 그러니, 그 눈물 나무의 눈물이란 다름 아닌 '피눈물'에 해당될 것이다. 책의 황량한 디자인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일종의 액자식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루카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에필로그에서 다시 첫 부분의 이야기하는 루카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시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어리둥절해 있었다.
멕시코인인 루카의 가족들은 할머니와 삼촌을 빼고는 모두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누나와 작은 형은 무사히 엘에이에 도착해서 이모 가족과 살고 있고, 아버지와 큰 형의 생사는 알지 못한다. 멕시코에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었던 루카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지만 그 와중에 목숨을 잃거나 전과자가 되는 사람이 숱하게 많고 되돌려지는 사람도 무수히 많다. 루카 역시 그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루카가 국경을 넘어 엘에이의 가족을 만나는 과정까지는 긴장감이 덜했다. 국경 안내인으로 일하는 큰형을 만났고, 그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극적인 사연도 알아냈지만 아이의 고민과 서러움은 독자에게 애달프게 울리지 않았다. 으레 신파가 나올 거라고 짐작했던 내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불법체류자로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굶주림의 공포와는 또 다른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영어를 공부해야 했고, 장래를 꾸려나가기 위해선 학교도 마쳐야 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인종차별과 싸워야 했고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늘 갖고 있어야 했다. 학교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모의 아들 카를로스는 의대생인데 자신이 갖고 있는 시민권이 함께 살고 있는 이모 가족들로 인해서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그가 단지 운이 좋아서 미국에서 태어났을 뿐이고 가족의 안전을 함께 걱정해 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카를로스에게는 그런 이야기들이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새로운 이민법은 불법 체류자=범죄자로 분류했고, 미국 내에서, 또 엘에이 안에서 노동의 중추를 맡고 있는 라틴계 이주민들이 대거 단결하여 파업으로 투쟁한다. 실제로 그 법률이 통과되어 지금 시행중인지, 이들의 단체 행동에 주춤하여 폐기되었는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들은 얼마든지 있고도 남을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답답해진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도 해외 노동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성장했다. 우리도 아메리칸 드림을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건만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또 얼마나 매서운 이중잣대를 보였던가. 또 굶주리고 있는 북한 땅을 떠나서 중국으로, 또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하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위험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다고 날마다 켜드는 저 촛불들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배고파봐야 남 배고픈 것이 눈에 밟히고, 자신이 서러워봐야 남의 힘든 사정도 눈에 들어온다. 집이 세채나 있는 내 친구는 영화보고 돌아가는 길에 촛불집회로 노선이 차단된 버스가 오지 않아 짜증이 났다고 했고, 사람 많은 곳 싫으니 정치적 성향은 둘째치고 그런 자리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의 자유고 또 너의 입장이지만,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것은 좀 미안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걸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부유하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그 아이에게 연대의 필요성을 말하고 설득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었지만, 나는 무엇으로 우리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해야 할지 공집합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아닌 사람도 많다. 이 책 안에서도 부자촌에 살면서 든든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 베로니카는 오히려 주눅들어 있는 루카보다 더 앞장서서 불법 이주자들의 권익을 위해 애를 쓴다. 자신이 안전한 노선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장된 삶을 사는 사람이 모두 그녀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건 충분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고 또 칭찬해 마땅한 일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해야 하는 겸손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전과 최소한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부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미덕이 모두에게 요구된다. 또 우리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이 우리와 함께 공생하는 것이 우리가 던져주는 '동정'과 '관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깨달음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주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 장애인, 그밖의 모든 억압받고 설움당하는 우리의 다른 이름들에게.
초반에 몰입이 조금 힘들었지만 뒷심이 강한 책이었다. 쉬엄쉬엄 천천히 읽을 생각이었는데 읽다보니 결국 다 읽고 말았다. 길지 않은 분량이기도 했고 안타까운 전개가 내용을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눈물과 애절한 이야기로 자라는 나무가 아닌, 사람들의 건강한 웃음과 행복한 사연들로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그 나무를 꿈꿔본다. 결국 그 나무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연대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