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월의 첫째날의 일이다. 갑자기 더워진 까닭에 스타킹을 신지 않고 맨발로 구두를 신었더랬다. 여과 없이 발등이 까졌고, 지갑을 뒤져서 밴드를 두 개 찾아냈다. 하지만 내 지갑 속 밴드는 뽀로로 밴드! 난 정장을 입었고, 차마 뽀로로 밴드를 붙일 수가 없어서 덧신을 사기로 했다.

난 당장 하나면 되는데 매장 사장님은 한개 3000원 짜리를 4켤레 만원에 주겠다며 강매를 하신다. 하나만 사겠다고 하니, 구멍 났을 때 메꿀 수가 없으니 최소 두개는 사야 한다며 두 켤레 5천원에 가져가라고 내 가방에 바로 넣어주셨다. 하여 두켤레 5천원에 사서 출근을 했는데, 직장에 도착해 보니 벌써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나 있다. 이분이 선견지명이 있으셔... 이렇게 바로 구멍날 것을 어찌 알았을까...;;; 그 다음 주에 한켤레 더 신어봤는데 역시나 출근해서 보니 벌써 발가락에 구멍이....ㅜ.ㅜ 구멍난 것 버리고 나머지들로 한켤레 만들어야겠다. 그래봤자 일회용이 될 가능성이 무척 높지만... 가격도 알라딘 게 훨씬 싸구만...;;;;

 

2. 어버이 날 전날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내가 오후 츨근인지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수원에 있는 언니도 집으로 올라왔다. 몸살로 고생 중인 엄마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감자탕을 사오고 케이크에 불도 붙이고 샐러드도 만들어서 꽤 근사한 밥상이었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곧 회의가 있으니 당장 오라고. 헐~! 이런 날들이 꽤 여러 차례 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회의 있다고 호들갑... 집에서 한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당황스럽다. 암튼 그래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밥도 못 뜨고 휭 달려나갔는데, 그 바람에 윗옷은 블라우스였지만 바지는 청바지. 퇴근 무렵 부장님이 청바지 입지 말라고 뭐라 하신다. 쳇, 다른 샘들은 찢어진 청바지 입고 온 것도 봤구만 나한테만 뭐라 하심. 흥!

 

3. 어버이날에는 학생분들이 집에서 자녀들이 기다린다고 일찍 끝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부장님은 수업 일찍 끝내주라고 슬쩍 말을 흘리셨는데, 나도 그럴 마음으로 백묵도 안 들고 교실에 갔건만, 전원 모두 집으로 튀시고 교실은 휭 비어 있었다는 이야기... 생색 좀 내려 했더니만...ㅎㅎㅎ

 

4. 수행평가 때문에 한참 바빴다. 상대평가인 고등학교와 달리 절대평가인 중학교 수행은 적극적으로 점수를 주기 위한 시간이었는데, 중1 수업에서는 B4 사이즈 세계지도에 몇몇 나라를 정해서 색칠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고령이지만 제도권 교육에서 가장 멀리 있으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지리적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어디 있는지 지리부도에서 찾아보자고 하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찾으시는 분들이었다. 해서 수행도 재밌게 해보자는 취지로 색칠공부를 세시간에 걸쳐서 했다. 헌데 그 수업을 모두 결석하신 한 분이 나중에 지도를 달라고 하셨다. 헌데 이날 이미 세번에 걸쳐서 지도를 자꾸 가져가신 분들 덕분에 종이가 다 떨어지고 없었다. 난 색칠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고치겠다는 분인 줄 알고 그대로 제출하라고 말씀드렸다. 이분은 감정이 상했고, 자리에 돌아가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걸로 나름의 시위를 하셨다. 한바퀴 돌다가 책상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어찌 된 것인가 알아보았더니 사정이 그랬던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종이가 없었던 거라면 내가 다시 복사해서 드렸을 텐데 이분은 기분 나빠서 수행평가 안 하겠다고 책상 위에 볼펜을 던져버렸다.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속상한 것은 알겠는데 이건 좀 예의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남자 샘이었어도 이랬을까 싶어 나도 마음이 불편해졌고 좀 더 여유있게 준비하지 못한 것도 속상하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이분도 그랬나보다. 다음날 교무실로 오셔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으신다. 친구분도 함께~ 난 백지도를 내주면서 어제 못받으신 분이 한분 더 계셨으니 그분도 드리라고 종이를 세장 내밀었다. 헌데 이분이 말씀하신다. 그게 자기라고. 아...;;;;;; 나의 안면인식장애! 전날 머리를 띵~하게 만드신 분인데 얼굴 홀랑 까먹어버렸다..;;;;;

 

암튼. 이날 수업에 들어갔는데 이분이 지나치게, 정말 오버해서 나에게 잘해주신다. 안 그래도 되시는데 전날 볼펜 던졌던 게 많이 신경 쓰이셨나보다. 문득 서글퍼졌다. 이 자리가 가진, 한줌도 되지 않는 그 알량한 권력(이런 표현 싫지만...)이라는 게 보였던 것이다. 사람이 주체할 수 없는 큰 권력을 가지면 얼마나 안하무인이 될까 무섭기도 했다.

 

5. 지난 주 목요일에는 창비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초대되었지만, 역시나 저녁 근무인 나는 갈수가 없었다. 언니더러 조카 데리고 가라고 권했는데 소심한 언니는 못 가겠다고 했다. 아쉽다....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받기로 했던 책을 우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고른 책은 이렇게 셋이다. 초정리 편지는 내가 아끼던 책이었는데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서 이참에 다시 구비했고, 올가의 편지는 표제작이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관심이 갔다. 엄마 사용법은 지난 달에 반응이 워낙 좋았더래서 궁금햄서 골랐다. 담당 직원과 통화하고 바로 다음날 책이 도착했다. 신기한 게, 출판사에서 직접 책을 쏘면 배송이 정말 빠르다. 하루에 몇 차례씩 배송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꽤 오후에 통화를 했는데 말이지....

 

6. 지난 주 토요일에는 친구와 벽화마을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홍제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여긴 내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살던 동네여서 잘 찾아갈 자신이 있었다. 물론 나는 벽화가 그려진 개미마을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당연히 가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잘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싸여, 이날 친구를 데리고 뱅뱅뱅... 돌았다. 밥 먹은 시간 한시간 반을 포함해서 도합 3시간에 걸쳐서 도착한 벽화 마을. 아, 한주도 빼먹지 않는 삽질의 유구한 역사를 어찌 해야 할지...;;;;

 

날씨가 아주 좋았고, 벽화 보는 재미도 아주 컸다. 무척 낡은 동네였는데, 벽화 때문에 주민들이 시끄러울까 봐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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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사진도 서로 찍어 주었는데, 친구의 수전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반은 흔들린 사진, 반은 눈감은 사진이라는 슬픈 이야기.... 그래도 선별해서 인화까지 마치고 앨범에 모두 꽂아 놓았다. ㅎㅎㅎ (아이모리 쿠폰 사용 만기 때문에 좀 서둘렀다. 이럴 때만 빨라...;;;;)

 

 

축대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그림은 사진으로 찍어본 다음에야 정체를 알아볼 수 있기도 했다. 왼쪽 하단의 색채는 무척 마음에 들어서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었는데, 어디서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알고 보니 화장실이었다..ㅜ.ㅜ

 

 

원색 계열을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을 때 잘 나온다는 걸 찍으면서 알게 되었다. 확실히 꽃 그림이 마음에 든다. 마지막의 꽃잎 그려진 벽에는 같은 무늬의 커튼까지 쳐져 있다. 집주인이 센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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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에 그림을 그린 사람들과 작업 내역이 나와 있다. 사진을 줄여 놓아서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사실 우리 둘이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북촌의 벽화 마을이었다. 1박2일에서 이승기가 천사 날개를 배경으로 사진 찍었던 곳인데, 방문객이 너무 많아서 주민들 항의로 벽화를 지웠다고 한다. 그 벽화는 왕십리 어딘가로 옮겨갔다고 들었는데 어딘지는 모르겠다. 나도 천사 날개 배경으로 사진 찍고 싶었는데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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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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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토요일에 많이 걸어서 피곤했지만, 일요일에는 이날까지 써야 하는 투탕카멘 전시회 티켓이 있었다. 친구를 불러서 교직원 할인 받아서 둘이 같이 전시회를 보았다. 사실 우리 둘다 이집트에서 투탕카멘 미이라를 보려고 했으니 표가 비싸서 못 보고 돌아온 아쉬움이 있었다. 거기서 약 3만원 정도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5천원에 감상했다. 도록을 1만원 주고 사긴 했지만 남는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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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플래쉬를 끈다면 사진 촬영이 가능했는데, 나의 후진 카메라는 어두운 곳에서는 촛점이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더 작게 줄였다. 티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ㅎㅎㅎ

 

전에 누군가 다녀와서 좀 별로였다는 후기를 본 것 같아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보는 즐거움이 컸다. 왕가의 계곡에서는 우리가 다녀왔던 곳 이야기를 하며 관람을 했는데, 2년 조금 지났을 뿐이건만 당시 열심히 보고 온 곳의 지명이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함께 좌절하곤 했다. 나는 물론이용 2년 반동안 살다가 온 친구도 잘 떠올리지 못했다. 아흐 동동다리...ㅜ.ㅜ

 

 

18세로 죽은 소년왕 투탕카멘. 그의 죽음이 타살인가 사고사인가에 대한 글이 흥미로웠다. 얼마나 보존이 잘 됐으면 수천 년이 지나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도 저렇게 잘 보일까...

 

황금이 번쩍 번쩍... 마지막 사진에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이날 처음으로 땡땡이 무늬 옷을 입었다. 민소매로 시원은 했는데, 어쩐지 아줌마 포스가 나는 차림새긴 했다....(살 붙었어..ㅜ.ㅜ) 

 

다양한 사냥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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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마치고 둘러본 기념품 가게다. 파피루스 그림을 이집트에서 사오고 싶었지만, 막판에 장염으로 고생한 나는 사러 갈수도 없었고, 사실 돈도 없었다. 그곳에서 샀으면 훨씬 저렴했을 텐데, 한국 버전은 꽤 비쌌다. 아까비...이번에도 눈으로만 감상할 수밖에.... 두번째가 옥합인데, 알타비스타? 뭐라고 불렀더라? 암튼, 여행지에서 친구가 울 엄니 드리라고 사준 그릇이기도 하다. 울집에도 있는데~ 하며 괜히 으쓱.... 이집트에서 가장 탐났던 물건은 체스판이었다. 장기 말들이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전통 신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무척 독특했더랬다. 사진 속 쟤들보다 훨씬 예뻤는데, 현지 가격으로도 꽤 비싸서 감히 살 수가 없었다. 여기서도 못 사기는 마찬가지. 내가 살 수 있었던 건 도록 한권 뿐이구나. 쿨럭!

 

8. 월요일에는 스승의 날 전날이라고, 학생 분들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셨다. 세상에, 몸둘 바를 몰라 했다. 그리고 정말 감동적이었다. 어린 학생들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배움에 대한 갈망과 갈증, 그리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대한 감사함이 사무치는 분들의 노래였다. 촌스럽게 울 뻔했다. 꾹 참았지만.

 

9. 화요일에는 스승의 날에는 세족식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를 준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는 말 못하겠다. 시험 기간이라 한참 바쁠 때였는데 시도 때도 없이 밑도 끝도 없는 회의가 열리고, 심지어 수업 시간을 제끼면서까지 진행되는 회의에 기암했다. 암튼, 그렇게 과시용 세족식은 기자들의 촬영 속에서 진행되었다.

 

 

 

 

가장 오른쪽 등판이 내 등짝이다. 모자라도 쓰게 해주지, 햇볕을 정면으로 받고 두시간동안 발닦아 주었더니 얼굴도 타고 팔뚝도 다 탔다. 눈이 너무 부셔서 잘 뜰 수도 없었다. 나중에는 수건 싸매고 발 닦았다. 아해들이 무좀이 많아서... 그 물이 얼굴에도 막 튀어서 서글퍼...;;;; 게다가 저기는 분교라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생전 처음 본 아해들... 그래도 발 닦아주면서 애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건 꽤 좋은 시간이었다. 장/감만 빼면 더 괜찮은 행사였을 텐데...ㅎㅎㅎ

 

10. 이날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내 오른쪽 자리에 앉는 샘이 내 나이를 서른 둘 정도로 보았다고 얘길 했다. 내 나이보다 어리게 봐주었으니 고마운 일이건만, 사람 마음이 욕심이 생겨서 서른 아래로 보이고 싶은 욕구에 앞머리를 잘랐다. 오래도록 머리를 올리고 살았기 때문에 앞머리가 홍해처럼 갈라진다. 해서 뼈다귀 한 시간 동안 말고 나왔다. 울 동네 미용실에선 이렇게 하면 만원이다. 절대로 칭찬을 하지 않는 울 둘째 언니가 얼굴 작아 보인다고 했다. 음하하핫! 기쁘다. 조만간 다시 사진 찍으러 가야겠다. 다음에는 헤매지 않도록 친구에게 전적으로 맡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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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5-1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기분 좋아지는 벽화 앞에 마노아님 너무 예뻐요.
1번부터 빵터졌어요.ㅎㅎ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마노아님^^

마노아 2012-05-20 20:45   좋아요 0 | URL
우헤헤헷, 늘 예쁘게 봐주시는 고운 프레이야님! 덕분에 즐건 주말 보냈어요. 감사해용! ^^

잘잘라 2012-05-1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화(특히 거북이 두 마리 축대 그림!)도 예쁘고 마노아님도 참말 이쁘요^^

마노아 2012-05-20 20:46   좋아요 0 | URL
저도 거북이 두 마리 그림 참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지역 벽화마을도 정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순오기 2012-05-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오랜만이어요~~~~~~ ^^

우리, 여름에는 서울서 만나고 가을에는 광주에서 만나요!

마노아 2012-05-20 20:4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가워요! 어젯밤 꿈에 순오기님 강림했어요.6^^
여름에는 서울, 가을에는 광주! 콜이에요.(>_<)

2012-05-22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2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2-05-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행사를 다 하셨군요.
그런데 분교도 있군요. 게다가 학생들 복장이 심상치 않은걸요. 꿈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니, 우리 교장샘 18번 대사 아닙니까!

마노아 2012-05-26 15:02   좋아요 0 | URL
사진 속 학생들은 조리과 학생이거든요. 실은 저도 처음 본 복장이었답니다. 꿈이 들어간 문장은 아름답건만, 그 문장을 말하는 사람도 아름다워야 할 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