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탠 전 + 간송 미술관
도착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 사계절 / 2008년 1월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그리는 4년여 시간 동안 숀탠이 가장 많이 들여다보고 영감을 얻었을 이민자들의 초상이 아닐까 싶다. 숀탠이 살고 있는 호주는 많은 이주민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 역시 중국계와 백인의 혼혈로 그런 이방인과 이주자의 삶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역사가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부모님께 바칩니다'라는 헌사부터가 벌써 뭉클하기만 하다.

한 남자가 짐을 싸고 있다. 많지 않은 짐꾸러미 중에서 가장 정성을 들인 것은 가족의 사진이다. 깨질까봐 포개어서 정성스럽게 포장한다. 동양의 어느 나라를 연상시키는 여인의 머리 모양이다. 그가 가야할 나라는 그 다른 생김새만큼 먼 곳일 것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할 만큼 지금 현실의 삶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낯선 곳에서의 삶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터! 그 두려움을 보여주듯 검은 괴물의 그림자가 짙게 드러난다.
작별의 순간, 울먹일 것 같은 아이에게 종이학으로 추억과 약속의 웃음을 선사하는 사려 깊은 아버지! 깊은 포옹으로 가족은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눈다.

배를 타고 오랜 시간을 항해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건너 마침내 도착한 낯선 곳!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도전의 땅이지만 모든 것이 녹록치는 않다.
입국 심사에서부터 사람을 기죽인다. 잔뜩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의 그늘진 표정들!

그러나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이 있다.
그 역시 이 사람처럼 언젠가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이렇게 길을 헤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누군가의 도움으로 사소한 어려움들을 극복해가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어주는 기쁨은 분명 되물림 될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므로...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모여 있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위해서 온 이들도 있을 것이고,
살던 곳의 학대로부터 도망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주자일 수도 있고 난민일 수도 있다.
글자 한자 없이도 저자 숀탠은 수많은 이민자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짐작 가능하게 저 작은 화면 속에 빼곡하게 담아냈다. 저 안의 사람들이 가졌을 마음의 크기들, 그 결들이 그림 너머 내게로 잘 전달된다.

전쟁과 학살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 어둡고 무섭고, 서럽다.
저 기억들을 묻고 새출발을 해낸 많은 사람들, 그들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이겨낸 이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고, 그 누적된 기억과 이야기가 또 다시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긴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얼어붙은 땅에서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난다.
그렇게 시간은 누군가에게 인내의 긴 터널을 지난 다음 새빛을 선사하고,
새 약속을, 새 희망을 꿈꾸게 한다.

홀로 떠나왔던 아버지는 편지를 보내며 그리움을 달래고 달래었을 것이다.
떠나온 곳에 남아있던 가족들도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보태며 다시 만날 날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재회가 이뤄진다.
함께 한 상에서 밥을 먹어야 식구, 그리고 가족!
가족은 다시금 함께 식사를 하며 웃음을 나누는 따뜻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어린 딸은 동전 한개를 받아들고 심부름을 가다가 낯선 이를 만난다.
이제 막 도착했을 이 이방인은 소녀에게 길을 묻는다.
소녀는 친절하게 길을 짚어준다.
아이의 아버지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길을 알려준 고마운 천사처럼!
그렇게 새 역사가 되풀이 되어 창조된다.
하나의 시작이며 하나의 끝이기도 한 '도착'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하나의 글자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울림을 주는 진정한 문학이다. 이 말없는 그림책에 경의를 표한다.

호주에서 이미 연극으로 올려진 바, 우리나라에도 연극 작품으로 무대가 올려진다.
엘지 아트센터, 5월 3일부터 6일까지다.
가족의 달 5월에, 부모님 생각이 간절한 그 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보인다.

과연 이 대사 없는 작품을, 이렇게 이국적이고 이색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배경을 어떻게 무대로 옮길지 무척 궁금하다.
어떤 방식이든 분명 독자와 관객을 감동시킬 거라고 기대한다.
언제나 마음을 깊게 울리는 숀탠이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2-04-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숀텐의 도착은 못 봤는데 '도착'이 그런 의미였군요. 중의적인~~~~

마노아 2012-04-02 10:16   좋아요 0 | URL
대단한 작가님이에요. 이렇게 글없는 그림책, 정말 좋아요.^^

희망찬샘 2012-04-0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가지고 있어요. 제겐 어려운 책이었어요. 이국적, 이색적, 몽환적~ 맞아요. 딱 그 분위기!!! 연극이라는 영역으로의 전환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노아 2012-04-07 12:18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워서 출판사 소개를 읽고 다시 봤어요. 그랬더니 조금 더 이해가 되더라구요.
알라딘에서 연극 초대권 응모하고 있던데 평일이어서 응모도 못했어요.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