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범죄와의 전쟁
부제 '나쁜놈들 전성시대'라는 제목이 본 제목이어야 했다. 나쁜놈들 승승장구라고 해도 맞았을 것이다. 현실의 나쁜 놈들은 더 많을 거라는 생각에, 저렇게 부정한 돈으로 많이 배우고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했다. 영화 '부당거래'를 보고 났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나마 그 영화는 웃기기라도 했지, 이 영화는 무겁고 무겁고 답답했다. 최민식의 연기기 워낙 빼어나서 하정우가 밀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게는 그의 연기도 좋았다. 90년대의, 지금으로서는 다소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양복을 입었음에도 그의 수트빨은 역시 최고다.
★★★★☆
12. 워 호스
스필버그의 작품은 일단 관심이 가기도 하지만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다가 말이 주인공이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갔다.
일견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었다. 아주 잘생긴 말 '조이'의 행적을 따라 1차 세계대전의 비극과, 그 안에서 희생된 사람들, 혹은 따뜻한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벅찬 감동으로 원작 소설을 구매했다. 그리고 얼마 뒤 '조이'라는 책의 중고 등록 알림을 받았다. 뭐지? 하고 찾아 보니 '워 호스'의 이전 출간 제목이었다. 그러니까 영화 보기 전에 이미 이 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하하핫. 지금 책을 검색하다 보니 마이클 모퍼고 작가의 다른 책들도 꽤 많이 보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책보다는 영화가 훨씬 훌륭했다. 그래서 다른 작품은 당장 급하게 찾게 되지는 않겠다. 이 책을 사고 몇 주 지나서 읽었는데, 그 사이 책 속에 들어있던 영화 '워 호스' 예매권의 사용기한이 지나버렸다. 랩핑만 먼저 뜯어봤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 게다가 이 영화는 소셜 쿠폰이 폐점으로 취소되는 바람에 할인도 전혀 받지 못하고 본 영화였었지. 그래도 영화가 훌륭했으니 괜찮아.
전장을 뛰어넘는 기적의 말
★★★★★
13. 하울링
유하 감독은 감각적인 영상미를 보여주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장인의 반열까지는 아니어도 작품을 내놓으면 그게 무엇이든 한번씩 궁금하게 만드는 감독이었다. 게다가 송강호와 이나영이 주연이라고 하니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
연쇄 살인 사건이 터지고, 범인으로는 '늑대개'가 주목된다. 늑대개란 늑대 인간처럼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존재로 여겼던 나는, '늑대개'로 위장된 살해 사건이라고 여겼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여간 이 작품에 늑대개가 정말 나오기는 한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기는 했는데, 뭐랄까... 좀 욕심을 부린 느낌이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얘기를 너무 많이 집어넣은 느낌? 늑대개와 나름의 소통을 하는 대상이 그 많은 형사들 중 여자 형사인 은영이라는 것은 직관으로 이해는 되지만, 영화적으로는 개연성이 좀 떨어지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욕망에 동원된 늑대개가 안타까웠고, 생명은 중하지만 그럼에도 나쁜 놈은 심판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충돌했다. 왜 나쁜 놈은 운도 좋아서 목숨줄이 질긴 것인지... 쳇!
아무튼, 하울링은 영화 자체보다 내게 행운의 귀걸이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박복한 가운데 행운 하나
★★★☆
14. 아티스트
우리동네 독립영화관 만만세!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늘 외롭게 관람하던 극장에 모처럼 관객이 있었다. ^^
지극히 디지털스러운 21세기에 아주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대놓고 아날로그 영화를 만들어 보기 좋게 상까지 거머쥔, 아주 똑똑한 영화였다.
무성영화 전성기의 스타였던 조지는, 유성영화로의 전환기에 정착하지 못하고 옛 방식을 고집하다가 뒤쳐져버린, 옛 영광에 찌들어 사는 한물간 스타. 반면, 조지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페피는 유성영화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독보적인 스타로 떠오른다. 영광과 함께 가족도 깨졌던 조지는 페피와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는, 내용만 따지면 무척 뻔하고 단조로울 수 있건만, 영화는 흑백영화와 무성영화의 특징을 이용해서 관객을 신선하게 사로잡는다. 의도된 유치함이 의도된 세련됨을 넘어서는 느낌?
★★★★★
15. 디센던트
이 영화는 보고 싶었던 영화였지만 그날 보려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수영을 마치고 조조로 철의 여인을 보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대한극장으로 날랐다. 그런데 정시 시작하는 극장에서 15분이 지나도록 영화가 시작되지를 않았다. 또 사고가 났구만! 역시나 예상은 맞아떨어지고, 디지털 영사기의 고장으로 상영이 불가하단다. 1층에서 환불 받고 다른 영화 안내 받으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1층으로 불쾌한 마음으로 내려가니 매표소는 지하1층이고... 제기랄! 다시 한층을 내려가서 일단 환불을 받았다. 대한극장에서는 짜증나는 일들이 많았던 터라 더더더 기분이 언짢았다. 차타고 나왔는데 그냥 돌아가는 건 너무 손해인지라 다른 영화를 보기로 했다.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영화가 한시간을 기다려야 상영하는 디센던트였다. 보려던 영화였지만 이렇게 보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하여튼 그렇게 해서 보게 된 영화 디센던트는 다행히 아주 좋았다!
일만 알던 남편 맷킹은 보트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아내가 자신 몰래 외도를 했다는 것을, 딸아이를 통해서 알게 된다. 아내와 사이가 나빴던 딸의 방황이 사실은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둘째 딸은 지나치게 어렸고, 조상들이 물려준 땅의 매매건으로 친척들 사이에서 머리가 복잡했던 맷은 더 큰 고민들에 싸이게 된다. 무척 복잡하고 짜증나고 화나는 설정들이 맞물렸건만, 그 사건들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법은 무척 유머러스했다. 아내가 회생불가능하다는 의사의 판단 아래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아내를 알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작별인사를 시키는 장면이 인상 깊었고, 아내 상대남의 찌질함에 고소함도 약간 느꼈다. 영화 마지막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빠가 먹었던 숟가락으로 딸아이가 다시 이어 먹는 게 보였다. 서양인 눈에는 찌개 그릇에 같은 숟가락 넣는 우리네 문화가 미개하다고 느낄 거라고 익히 들어왔건만, 저들도 가족 사이에는 저렇게 먹는 것일까 싶어 신기했다. 언제나 멋진 '신사'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잘 발휘했는데, 아내에게 그가 남긴 인삿말도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당신은 나의 친구였고, 고통이었고, 기쁨이었어.
★★★★★
16. 맨온렛지
우울한 날이었다. 이틀 동안 기다리던 소식이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버렸고,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의 이야기는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잘 사는 것만 같았다. 원래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이 나를 위로하지는 않는 법. 서러움이 격해 수요 예배를 드리다가 내내 울었다. 이럴 때마다 눈치 없는 울 엄니는 내가 우는 것도 모르고 왜 이렇게 예배 시간 내내 코를 푸냐고 면박을 주신다. 아, 정말 감정 상해...
예배를 마치자마자 뛰쳐나왔다. 내가 아끼는 울 동네 영화관으로 향했다. 머릿 속의 생각을 멈춰줄 액션 영화가 필요했다. 그럴 때에 이 영화는 적격이었다. 억울하게 다이아몬드 절도범으로 몰린 주인공은 종신형을 받고 아버지의 장례식 때 교도소 밖으로 외출했다가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한달 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최대의 도박을 한다. 호텔 초고층에서 뛰어내릴 것처럼 시위를 하면서 경찰과 대치, 그 사이 플랜B를 작동시킨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스릴을 선사하는데, 미션임파서블 같은 블록버스터는 아니어도 예산 적게 쓰고 큰 재미를 준 알찬 영화였다. 보는 동안 나를 괴롭혔던 잡생각들을 말끔히 잊을 수 있었다. 물론,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되살아났지만.
두 시간 가까이 영화는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샘 워싱턴은 멧 데이먼처럼 어쩐지 신뢰가 가는 배우다. 참 듬직해!!
원래 시간이 있었으면 영화 시작 전 맥주 한 캔을 사서 영화를 보면서 마실 참이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그리하지 못했다. 해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골랐다. 세상에, 맥주 종류가 이렇게 많단 말이야??? 심사숙고해서 고른 맥주는 아사히 병맥주! 편의점에서 바로 뚜껑을 따고, 추운 겨울밤 돌아오는 길에 병째 들이켰다. 내가 맥주도 마실 줄 아는 여자라는 것을 모르는 엄마 몰래 마시는 맥주 맛이란 참 시원했다. 어쩐지 소심한 쾌감도 들면서...;;;;
다른 영화 예고편을 보다가 알게 된 건데 샘 워싱턴이 타이탄의 분노에 출연한다.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영화이건만, 내가 미친 척하고 보게 된다면 순전히 샘 워싱턴 덕분이다. 아,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한 에드 해리스! 더 록의 카리스마 군인! 참 오랜만에 본다. 노인이 되었건만 여전히 섹시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