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앞에서 움직이면 그림이 반응을 보이며 꽃잎도 떨어지고 바람에 너울거린다. 한 번 해보고서 무척 신기했지만, 나와 함께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아줄 이는 내곁에 없고....;;;;
사물함에 가방을 넣어두고서 입장을 했는데, 안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진품관만 빼면 맘껏 촬영하라고... 결국 도슨트를 다 들은 다음에 양해를 구해서 카메라 가지고 재입장했다. 그렇게 해서 담아온 사진들이다.
입장을 하자마자 나오는 방은 '비움의 방'이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고 작품 속으로 푸욱 빠지라는 의미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씨의 작품이다. 세 개의 그림이 4분여 시간 동안 음악에 따라 저렇게 바뀐다. 눈이 쌓이고, 그림이 바뀌고 생각에 잠긴 선비가 고개를 들리고, 음악이 연주된다. 아주 근사하다.
사용된 그림은 이렇다.
김홍도 '송하선인취생도'
강희안 '고사관수도'
어몽룡 '월매도'
방을 나와서부터 도슨트가 시작되었다.
중국과 조선, 유럽과, 일본을 동시대로 놓고 비교해 주는 연표다. 일본이 먼저 나오고 유럽이 그 밑으로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았는데, 조선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일본을 대표하는 작품이 없다며 유럽을 먼저 내세웠다는 안내하는 학생의 답변이 있었다.(한바퀴 돌고 사진 찍을 때 내가 질문했다. ㅎㅎㅎ)
90도로 돌아서면 조선 후기가 나오는데 앞서 텅텅 비어 있던 일본의 문화발전이 빼곡할 만큼 한눈에 보인다. 동양 삼국 중 가장 먼저 문을 열었던 효과가 있었으리라.
쭈욱 보는데 1895년에 있었던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을 '1896년'으로 표기해 놓았다. 해서 그 이야기를 하니 여러 번 지적 당한 눈치를 보인다. 그렇게 지적당하면서 수정 스티커도 안 붙여놓다니....-_-;;;;;
연표 앞에는 문방사우가 전시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문화재급 한지가, 중앙에는 벼루와 먹이, 벽에는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커다란 진다리붓이 매달려 있다. 저 종이는 청송한지인데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이상룡 선생님의 작품으로 날씨 등을 고려해서 일년에 딱 한 번 제조한다고 한다. 호오!!
중국의 한지는 얇아서 먹이 번짐 효과를 내기가 좋았고, 우리의 한지는 두꺼워서 붓의 삐침을 표현하기 좋았다고 한다. 농도를 비교하면 이런 느낌일까?
두꺼울 뿐아니라 질기기도 한 조선의 종이는 빨앗어 재사용도 가능했다. 물론, 비싼 덕분이지만...
남포 벼루와 해주 손석호 먹. 가까이서 냄새를 맡으면 먹에서 나무 냄새가 난다. 현재 생산되는 곳이 점차 줄어들어 전국에 단 세 곳 뿐이라고....ㅜ.ㅜ
다음에 들어간 방에는 산수화, 영모화조화, 초상화, 풍속화, 기록화, 사군자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불화와 민화는 공간의 부족으로 함께 걸리지 못했다.) 마치 병풍을 쳘쳐놓은 모양새로. 재밌는 것은 이 그림들이 모두 움직인다는 것이다.
산수화에선 폭포수가 쏟아지며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고, 영묘화조화에는 새와 동물들이 오고 간다. 초상화의 눈동자가 지나가는 나비를 따라 움직이고, 무동은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춘다. 잔치가 한참 벌어지고 있는 기록화 안에 느닷없이 닭이 지나가고 사군자 안의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인다.
심지어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타고 쓰윽 지나가기도 하고,
그림 가득 비가 내리면서 그림들이 젖어들어가기도 한다.
다시 방을 이동해 보자. 이번엔 경사진 언덕을 올라야 한다. '부감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부감법이란 옛 화가들이 우리의 산과 강을 그릴 때 마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리는 기법이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날며 저 아래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드는가? 저 금강산을 두 발로 밟아봐야 하는데...
정선이 그린 백천교다. 난간 중앙에서 찍으면 전체 화면을 담을 수가 없어서 측면에서 찍었다.
그림을 감상하고 다시 부감법을 보여주기 위해서 경사면을 둔 방을 내려오면 미로처럼 코너를 돈다.
이번 방에서는 '제발'을 볼 수 있다. '제발'이란 그림에 쓰여 있는 글을 의미한다.
정약용의 매조병제도
김홍도의 죽리탄금도
같은 그림인데 표현을 조금씩 달리 하였다. 한자 원문, 혹은 한글 번역, 혹은 그림의 강조에 변화가 있다.
김홍도의 '송하선인취생도'다. 생황을 불고 있는 신선의 모습에서 어쩐지 취화선의 최민식이 떠오른다. 그림의 윗부분 나무 모양은 꼭 용틀임하는 모양새다. 용의 해라서 더 그리 보이는 걸까?
그 다음 방에선 재미난 인장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옛 그림에는 제발과 함께 붉은 도장(인장)이 찍혀 있다. 글씨가 하얗게 나온 것은 화가의 이름인 '성명인', 글씨가 붉게 나온 것은 화가의 호인 '아호인', 화가가 좋아하는 짧은 글귀나 좌우명 등이 새겨진 것은 '유인'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의 서예가인 홍석구의 인장이다.
첫번째는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는데, '수구여병'이라고 이름한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라는 소리다.
두번째 역시 좋은 글귀를 새긴 인장으로 '제일강산'이라는 이름이다.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란 뜻.
세번째는 '죽안청주'. 대나무 책상에 앉아 밝은 등불을 켜고 책을 보다라는 의미이다. 셋 모두 돌에 새긴 인장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인장들이다.
다음 방으로 이동하면 그림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움직이는 사진을 두 장 찍었다. 숨은 그림 찾기하는 기분이다. 망치가 땅땅 내려칠 때마다 치이익 달궈진 쇠붙이에서 나는 소리가 하나의 음악처럼 울린다.
죽리탄금도에선 대나무 숲 사이로 스며드는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달도 이동한다. 1분 30초 동안 신선의 귀로 감상해볼 수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벌레가 움직이고 나비가 날아든다. 여류화가인지라 인장도 없고 서명도 없다. 나중에 후손이 '사임당'이란 글씨를 써넣기는 했다. ㅡ.ㅜ 중국에서부터 먼저 유명해진 사임당은 산수화도 잘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작 그림은 남겨지지 않았다. 애석해라...
김홍도의 '점심'이다. 고된 노동 와중에 한 걸음 쉬어가는 소중한 시간. 얼큰하게 취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젖도 물린다. 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누군가는 그릇을 두들기며 가락을 뽑아낸다. 얼쑤~
이 다음에는 진본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방으로 이동한다. 여기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특히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조명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림 위에 불빛도 없고, 대신 직원(알바 학생)이 플래쉬를 들고 와서 손을 번쩍 들고 잠깐씩 비쳐준다. 팔 아프겠다...
다시 또 이동해 보자. 이번 주제는 '경합'이다. 비슷한 소재로 그림을 그린 이들이 많다 보니 주제별로 묶어서 전시했다. 그림의 비교를 위해서 그림의 크기는 조절했다고 적혀 있다.
김홍도의 황묘농접도와 변상벽의 묘작도
변상벽의 어미닭과 병아리/ 장승업의 계도(근데 왜 '계도'로 검색한 그림과 다르지? 같은 제목의 그림을 몇 장 그렸나???)
김두량의 흑구도와 이암의 모견도
신윤복의 계변가화 김홍도의 빨래터
신윤복 그림의 저 남자가 들고 있는 활이 꽤 크다. 정말로 저렇게 컸을까아?? 대놓고 쳐다보는 저이보다, 김홍도 그림의 숨어서 보는 이의 응큼함이 그림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ㅎㅎ
김홍도의 '그림 감상'이다. 대체 김홍도가 그려보지 않은 그림의 종류는 뭐가 있을까? 참 다양한 그림들을 그렸다.
남계우의 '오로독화도'
심사정의 '군현도'
사실 이번 전시회는 우리 옛그림의 멋과,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공이 반씩 들어갔다. 그의 작업이 옛 그림들을 살아 움직인은 현실감으로 우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꺾어지는 복도에 걸려있었던지라 사진에 담기 어려워 측면에서 다시 찍었다. 그 찰나의 순간 그림이 또 변했다.
숨은그림찾기 잘 되고 계시나요??
이제 다시 모퉁이를 돌면 가장 걸작이 나온다. 김홍도의 그림 세 장이 걸려 있고, 그 그림들이 연주를 한다. 그리하여 난데없이 '난타' 공연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일 왼쪽 그림이 '대장간', 가운데에 '무동', 오른쪽 끝이 '점심'이다. 각각의 그림속 인물들이 제 할일을 하면서 소리를 내고, 그것이 어우러져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그림 속에 무동이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은 춤을 추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3분 20초 동안 18세기 조선판 오케스트라에 귀가 아주 황홀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이번엔 3D로 작업한 초충도가 기다리고 있다.
저리 흐릿하게 보여도 안경을 쓰고 본 내 눈에는 아주 입체적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옆의 초등학생들은 이게 무슨 3D냐고 마구 무시했지만, 모르는 소리! 아주 우아하고 곱기만 했다.^^
이렇게 감상을 끝내고 나오면 기다리는 것은 기념품 가게. 하하핫, 초충도가 그려진 주니어 시계가 참으로 갖고 싶었달까. 그 옆의 초충도 손수건이랑.. ㅎㅎㅎ
난 엽서랑 연필만 사가지고 나왔다.
울 조카도 보면 참 좋겠다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는데, 조선천재화가 티켓을 주는 이벤트가 있지 뭔가!
2월 29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전시티켓이 선착순 50개라고 한다. 자 서두르세요!!
(전시회 자체는 3월 4일까지입니다.)
공짜 티켓 있으면 한 번 더 보고 싶다. 돈 내고 또 가긴 그렇고..ㅎㅎㅎ
현재 예술의 전당에선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을 하고 있다. 모르고 갔는데 한가람 미술관 2층에서 하고 있더라. 아, 이 안에는 황금으로 된 유물들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지 않을까. 어른 티켓이 12,000원인데 당일 본 다른 티켓을 제시하면 2천원 깎아주는 모양이었다. 이 전시회를 보면 매그넘을 2천원 깎아주는 거던가? 암튼 한가람 미술관이었다.
다시 또 소셜을 기웃거리며 스키타이전 할인은 하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리라. 아니 된다면 생각의 나무 책이라도 구입하리....라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건 '잉카 문명'과 '마야 문명'이었구나. 내가 갖고 있는 건 '이집트'와 '이슬람'인데 이 시리즈도 다 모으면 장관일 것 같다. 갑자기 책욕심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