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 홀 - Rabbit Hol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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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카와 하위는 금슬도 좋았고 서로 살뜰히 사랑하는 아름다운 커플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네살 난 아들이 있었지요. 동네에서 가장 크다는 집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었고, 안정적인 일을 하는 남편과 요리 잘 하는 부인으로 부족함이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그들 가정에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들이 사고로 죽고 만 것입니다. 벌써 8개월 전의 일이지요. 아들을 잃고 난 지난 8개월의 시간은 두 부부에게 끔찍했습니다. 사고의 충격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지만 상처는 쉬이 회복되지 않았지요. 더구나 그렇게 어린 아들을 잃었는데 어찌 상처가 쉽게 아물겠습니까. 이웃의 부인은 저녁 식사에 초대하려고 하지만 베카는 좀처럼 응하지 않습니다. 함께 어울리며 웃고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런 마음의 여유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남편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모임에 나가자고 아내를 재촉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개비와 그녀의 남편은 벌써 8년째 이 모임에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얘기하지만, 바꿔말하면 8년이 지났어도 이런 모임이 필요할 만큼 힘들다는 얘기일 겁니다. 어느 부부는 하나님이 아이를 사랑하셔서 데려갔다고, 그 아이는 분명 천사가 되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런 말들이 베카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신이라는 그 위대한 자가 왜 하필 내 아이를 데려갔는지, 천사가 필요하면 직접 만들면 될 것을! 베카는 그런 식의 자기 위안이 위선이라고 여깁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식의 위안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에는 베카의 상처가 아직 너무 깊습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아이의 상실을 극복하려고 애를 씁니다. 아내는 아이가 만든 그림 장식을 냉장고에서 떼어 창고에 갖다 놓고, 아이의 죽음에 도화선이 된 키우던 개를 친정 어머니 집에 맡겨버립니다. 아이의 옷을 모두 세탁해서 갓 임신한 여동생에게 들이밀기도 하지만,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를 아이가 입기에는 너무 크지요. 게다가 죽은 아이의 옷이라고 생각하니 임신 중인 여동생은 달갑지가 않습니다. 결국 이 옷들은 모두 재활용 상자로 들어가 버립니다.

 

반면 남편 하위는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극복해내려고 애씁니다. 날마다 아들의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재생시키며 눈물을 짓고, 장모님께 맡겼던 개를 되찾아와서 함께 뛰놀았던 아이의 향기를 느껴보려고 합니다. 아내는 차안에 있는 카시트를 치우라고 하지만 남편은 그렇게라도 아이의 자취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둘째 아이를 가져보자고 제안하는 남편을 아내는 못견뎌 합니다. 나아가 집도 팔아버리고 이사하자고 합니다.

 

두 사람은 계속 부딪혔고 힘들어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애는 쓰지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밝히지 않은 채 다른 방법들을 시도합니다. 말할 수 없고, 말하기도 싫지만, 그럼에도 건너고 마는 그들만의 길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래빗 홀'은 토끼 구멍입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할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면 될 겁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한 '평행이론'이란 책에 관심이 갑니다. 이 드넓은 우주 저 너머에는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누군가가, 나와는 다른 삶을 살며 존재하고 있을까요? 지금 이렇게 불행하고 힘이 드는 부부와 또 다른 삶을 가진 자신이 우주 저 너머 어딘가에는 있을까요. 

 

 

영화 속에는 자식을 잃은 많은 부부가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베카의 어머니도 아들을, 베카의 오빠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오빠는 서른살에 헤로인 과용으로 죽었으니 베카가 자신의 아들의 죽음과 비교당하면 노여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런 아들 역시 소중한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엄마의 상처가 자신보다는 작을 거라고 여겨서는 곤란하지요. 아직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베카의 마음에 지나치게 여유가 없지만요.

 

자식을 잃은 부부는 헤어지는 잃이 많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사례가 나왔고, 책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한나의 선물'이란 책에서도 그런 예를 보았지요. '누구 때문에'라는 원망은 그래서 치명적입니다. 당신이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당신이 전화를 받다가 아이를 놓쳐서, 하필 그때 개가 뛰쳐나가서, 하필 그때 차가 들어서서... 많은 경우의 수가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이 중첩되어서 결국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괴롭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진정 이 아이와의 연이 거기까지였음을 수긍하는 일은 얼마나 서러운가요.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누구 때문이었다는 원망은 감정만 피폐하게 할 뿐 서로의 회복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힘없는 인간, 상처로 온 가슴이 무너져 내렸는데 그런 말들이 어디 머리에 들어올까요.

 

결국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처가 조금은 작아지기를, 그리움이 조금은 옅어지기를, 원망이 조금은 사그라들기를 말입니다.

 

 

언젠가는 지인들을 불러다 바베큐 파티를 열 수도 있고, 내 아이 또래의 아이들을 안아주며 예쁘게 미소지어줄 수도 있을 테지요. 그들이 떠나고 나면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었던 미소를 거두고, 다시 또 어둡고 쓸쓸한 얼굴로 되돌아갈지라도,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그런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지는 때가 반드시 올 겁니다. 그렇게 믿고 일어나야하지요.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영화는 무척 잔잔하지만 또 은근히 섬세했습니다. 그 섬세하고 예민한 연기를 니콜 키드먼은 몹시 잘 해냅니다. 만약 한국 영화였다면 염정아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옮겼는데, 연극에서는 웃음의 코드도 있었나 보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과잉 없이 슬픔을 올곧이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헤드윅으로 유명한 존 캐머런 밋첼은 극적인 연출 없이도 시간 순서의 적절한 배열을 통해서 영화의 기승전결을 잘 이끌어 냅니다.

 

주말 내내 뉴스를 뒤덮었던 대구 중학생의 자살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의 죽음이 기막혔고, 그 부모는 이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또 기가 막혔고, 가해 학생과 그 부모들은 진정으로 참회하고 있을지, 일말의 반성과 책임감을 느끼는지 분노가 일었습니다. 래빗 홀의 두 부부보다 더 가혹한 이별에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슬픔에 동참하고 있을지 갑갑합니다. 이런 갑갑한 한숨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또 가슴이 묵직해집니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부부가 나옵니다. 그들이 상처를 이겨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다 경건하고 종교적이었지요. 보다 인간적인 '래빗 홀'과 비교해서 보면 좋겠습니다.

 

아픔을 잊을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인 래빗 홀, 그것은 우주 저 끝에 있을지도 모르고, 당신 옆에 있는 당신의 가족이 되어줄 수도 있고, 그저 시간이 주는 치유의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련은 가혹하지만 분명 지나갈 겁니다.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꼭 올 것입니다. 그 끈을 놓치지는 마세요. 당신에겐 분명 그럴 힘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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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27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영화는 꼭 봐야할 것 같아요. 니콜 키드먼이니까~~~~

마노아 2011-12-27 10:39   좋아요 0 | URL
니콜 키드만 공동 제작이기도 해요. 작품에 푹 빠져 보였어요. 무비꼴라쥬 영화는 늘 실망시키지 않아요.

다락방 2011-12-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퓰리처상 수상 원작이군요. 저는 오히려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찾아봐야겠어요.

마노아 2011-12-27 10:39   좋아요 0 | URL
저는 연극이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원작 소설이 있겠군요. 찾아보니 외서로만 있네요. 어이쿠...

다락방 2011-12-27 12:38   좋아요 0 | URL
저도 외서로만 있어서 절망한채 돌아섰어요. -_-

마노아 2011-12-27 13:17   좋아요 0 | URL
이 쓸쓸한 그림자...크흑...-_-;;;;;

무스탕 2011-12-2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으로도 영화를 본 느낌이에요.
근데 직접 보면 영화의 무게에 눌려 차분히 못 볼것 같아요.
영화를 아직 안 봤어도 마노아님의 리뷰가 훨씬 좋아요.

마노아 2011-12-27 22:06   좋아요 0 | URL
생각만큼 버겁게 무겁지는 않아요. 배우들의 연기가 그런 면에선 어느 정도 절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액션영화들 아주 재밌게 보았는데 이렇게 잔잔한 영화도 참 좋아요.^^

2011-12-27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7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