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기 보고서 - 은지와 호찬이 1 사계절 저학년문고 53
심윤경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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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숙제할 때마다 아주 애를 먹고 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인지, 일기 한 편을 쓰려면 두 시간은 기본으로 잡아야 한다. 제목 한 줄 쓰고 한 20분 딴짓하고, 다음으로 날씨 쓰고 10분 딴짓하는 식이다. 그래서 숙제를 봐주는 언니는 조카와 으르렁거리기 일쑤! 숙제도 이러니 학과 공부는 더 심한 모양이다. 오늘 있을 시험 준비를 위해 전날 공부를 시켰는데 역시나 합이 맞지 않았다 한다. 아이의 입은 자꾸 삐죽삐죽 나오고, 엄마의 목소리는 높아지다가 공부를 덮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교통지도 때문에 아이보다 일찍 학교로 출발한 언니는, 아이가 혼자서 차려 입고 나온 옷이 유난히 얇아서 속이 상했다. 같이 교통 지도를 나온 다른 엄마도 애가 왜 이렇게 옷을 춥게 입었냐고 뭐라뭐라 하시니 또 속이 상한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가 전날 삐진 것으로 속이 안 풀렸는지 등교길 엄마를 보고도 홱 지나가버렸다고... 언니의 속에서 불이 화르륵 타올랐음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야단을 쳐야겠다고 다짐하는 언니에게 이 책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화해하기 보고서'가 필요해 보여. 

이 책의 주인공 은지는 엄마와 크게 싸우고 울며불며 떼를 쓰다가 내복 바람으로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이전에도 쫓겨난 경험이 있었는데, 말없이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버려서 한참 찾았던 기억이 있던 엄마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내복 바람으로 아이를 쫓아낸 것이다. 그런데 하필 같은 반 남학생이 집앞을 지나갔고, 내복 차림의 은지는 엄마에게 싹싹 빌며 집안으려 들여달라고 소리를 높였는데, 예의 바른 친구 이민우는 문 열러 나온 엄마에게 깍듯이 인사까지 하는 게 아닌가. 민우 엄마와 은지 엄마가 서로 얘기를 나눌 때에도 뒤돌아서 처참한 제 신세를 비관하고 있던 은지가 집에 들어가서도 울며 불며 떼를 썼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목청을 돋우다가 엄마가 내놓은 절충 방안은 '화해하기 보고서'를 쓰는 일이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되짚어가는 무척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하지만, 감정이 상했는데 처음부터 잘 써질 리 만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화해하기 보고서는 훈훈하게 마무리가 된다. 이렇게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대로만 흘러간다면 이 책이 별점 다섯 개를 거뜬히 받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름의 반전이 있다는 거!! 

게다가 이야기가 시리즈인 모양이다.  

 

등장인물이 잔뜩 소개되었는데 이 중에서는 은지와 민우만 등장해서 의아해 했다. 다시 보니 시리즈여서 그랬던 것이다. 호찬이와 지수, 그리고 규태의 활약까지 모두 나오고 이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잘 섞이려면 이 시리즈가 제법 길어질 것 같다.  

심윤경 작가님의 창작동화인데,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긴장감을 적절히 배분한 것이 무척 능수능란해 보였다. 은지와 엄마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었고, 차분하게 글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좀 더 냉정하게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록으로 '화해하기 보고서'도 같이 따라왔다. 단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해'로 가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기에, 화해하고 난 뒤의 기분이 어땠는지를 묻는 것이 특히 좋았다. 더불어 사진이나 그림을 덧붙일 수 있으니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보고서가 완성될 것이다. 

이런 공책을 훗날 다시 보게 된다면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화해하고 난 뒤의 기뻤던 마음은 또렷이 생각날 것 같다. 부모 사이는 물론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사이에도 좋은 '화해'의 도구가 될 것이다. 학교에서는 잘 활용하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멋진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까. 기획과 내용, 그림까지 삼박자가 예쁘고 재밌게 조화를 이룬 수작이다. 다음 시리즈도 꼭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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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1-27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 세권 모두 읽어보고 싶어요. 이 작가는 소설 뿐 아니라 어린이 책도 잘 쓰네요. 세권을 같이 한번에 출판한 것을 봐도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지만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해서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어요.

마노아 2011-11-27 13:40   좋아요 0 | URL
세 권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쓰고서 나눠 낸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소설가답게 호흡이 좀 더 길었을 텐데 아이들 읽기 편하게 구분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저도 조만간 남은 두 권도 읽어야겠어요.

2011-11-27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11-2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은지, 은근 매력있어요. 조카들 떼쓰면 혼내주지만, 주인공 강은지는 어쩐지 응원하고 싶다니깐요. ^^

마노아 2011-11-28 20:55   좋아요 0 | URL
은지의 떼씀은 어째 이유도 있고 설득력도 있더라니까요. 물론, 부모 입장이라면 열불이 날 거예요. ㅎㅎㅎ

2011-11-28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