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서도 역사로서도 서러운 이름,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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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누구라도 영화 제목을 보면 弓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자막을 보니 活로 뜬다. 이중적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영화의 시작은 인조반정에서 출발한다. 한 때는 촉망받던 무인 집안이었지만 광해군을 따랐다는 이유로 이제는 역적의 집안이 되어 남이와 자인은 쫓기는 몸이 된다. 아버지는 절친이 있는 개성으로 두 아이를 보내고 칼을 받는다. 신궁이었던 아버지의 활은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맡겨진다. 아버지의 최후를 기억하는 남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난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는 자인. 두 아이는 그렇게 서럽게 성장하며 13년이 흐른다. 그러니까 1623년에서 1636년으로 건너뛴다. 인조반정에서 병자호란으로 가는 셈이다.
어린 남이 역을 맡은 배우는 이다윗이다. 고지전에서 청아한 목소리로 전선야곡을 불렀던 그 아이가 이젠 슬픔을 집어삼킨 서늘한 눈매의 남이로 분했다. 박해일 역시 쌍커풀이 없는 눈이어서 두 사람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았다. 캐스팅 잘 골랐다.
남이와 자인이를 키워준 분은 아버지의 절친이지만, 그의 부인인 안방 마님은 이들 남매가 버거웠을 것이다. 차마 내칠 수는 없지만 역모로 몰린 집안의 아이이니 바깥으로 소문이라도 나간다면 안 그래도 권력과 멀어진 집안이 더더욱 기울어갈 거라고 여길 것이다.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서군(김무열)이 자인을 연모하고 있으니 복장이 터질 일이다. 그리고 그걸 잘 아는 남이 역시 사랑하는 자인이를 서군에게 보낼 수가 없다. 아버지는 충분히 어렸던 남이에게, 이젠 자인이에게 네가 아버지라고 했다. 남이에게 자인이는 사랑하는 동생이면서 딸자식과 마찬가지인 존재다. 세상에 의지할 수 있고, 또 세상에 지켜야 하는 유일한 피붙이였던 것이다.
외유내강형의 자인 역할은 문채원이 맡았다. 사극과 인연이 많은 그녀다. 꽤 예쁘장하지만 인형같은 미모가 아니라 좀 더 생기 있는 미모랄까. 아직까지는 연기가 좀 아쉽지만, 스크린과 브라운관 안에서의 그녀는 충분히 빛난다. 이 작품에서는 활도 쓰고 칼도 쓰는데 활 쏘는 자세가 무척 근사했다. 시위를 놓았을 때 오른손이 등 뒤쪽에서 펴져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 자세는 박해일(남이)에게서도 나왔는데 둘 다 그 자세를 배웠을 것이다.
여차여차 과정을 거쳐 서군과 자인이의 혼인날! 얄궂게도 하필 그날 청군이 몰려온다. 혼인식이 진행되는 동안 홀로 산에 올라가 활을 쏘려던 남이는 몰려오는 청군을 보고 도망치다가 그들의 표적에 걸려 하마터면 죽을 뻔한다. 그의 신묘한 활솜씨에 놈들의 압박을 벗어났지만 절벽으로 떨어져 죽을 위기를 겪는다. 혼인 잔치는 아수라장이 되고 신부와 신랑이 모두 포롤 잡혀간다. 싸우다가 돌아가신 시아버지와, 못마땅해했지만 정작 며느리가 위기에 처하자 발 벗고 나섰던 시어머님도 돌아가셨다. 뒤늦게 집에 도착한 남이는 자신이 선물한 꽃신 한짝만 남았을 뿐이다. 이때부터 남이의 동생 찾기 여정이 시작된다.
표적의 목을 꿰뚫고, 나올 수 없는 방향에서 휘어지는 화살을 쏘는 남이의 실력은 신궁 그 이상이었다. 영화가 내내 흥미진진했던 것은 활을 통해 내보이는 강렬한 액션에서 오는 쾌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흡사 '원티드'에서 휘어지는 총알을 보는 듯했지만, 그보다 더 짜릿했달까. 특히 시위를 떠난 활이 바람과 공기를 가르며 목표물에 명중할 때 들려오는 음향 효과가 대단했다. 이런 영화는 기술적 뒷받침이 되어주어야만 진정으로 완성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동생을 잡아간 부대를 찾기 위해 홀로 청군을 상대로 싸우는 남이. 자신의 활은 살리기 위한 활이지 죽이기 위한 활이 아니라는 대사가 처음 나왔을 때는 적절하지 않은 멋부리기에 좀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여태 죽인 놈들은 다 뭔가! 일부러 병사를 살려주었다고 보기에는 당시 남이의 입장이 너무 위험했으니 진정 살검이 아닌 활검의 마음이었다고 봐야 할 텐데, 얼핏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켄신이 떠올랐다. 남이가 자신의 활을 살리기 위한 활로 쓴 것은 사실이다. 그의 사랑하는 동생을 구하고, 동족을 구하고, 또 의로운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장면에서 죽음의 활을 거둔 것을 보면 말이다.
영화에서 큰 매력을 담당한 또 다른 이는 류승룡이 맡은 쥬신타다. 만주어를 모르니 완벽하게 소화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바지만, 그의 입을 빌어 나오는 만주어는 진정 그를 만주의 사내로 보이게 만들었다. 단순히 외국어를 잘 소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억양과 톤, 그리고 무게감까지 더해서 그를 용사 중의 용사로 변신시켰던 것이다. 늘 기대하지만,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주는 특별한 배우다. 그의 이름도 '주연' 칸에 나오는 것도 무척 기뻤다.
오른쪽 사진은 쥬신타가 모시고 온 왕자 도르곤이다. 왜 하필 이름을 도르곤으로 했을까? 도르곤, 혹은 다이곤이라 불리는 인물은 누르하치의 열네 번째 아들이자 청 태종의 동생이다. 훗날 볼모가 된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를 대동하고 베이징 남정 길에 올라 중원에 입성하는 것을 목격시키는 실력자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찌질한 인간은 아니었다. 도르곤 왕자 역을 맡은 배우는 추노로 얼굴을 익혔는데, 그때 배신자의 인상이 강렬해서 잘 생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악역으로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 이미지를 벗어내는 변신이 그에겐 숙제가 될 것이다.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 진행은 비교적 단순하다. 이런 영화에서 결국엔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지는 대체로 짐작 가능하지 않던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설들력 있게, 그리고 절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감독은 영민하게 잘 보여준 듯하다. 남이가 지키려던 게 누이이자 딸같은 자인이가 아니라 연모의 대상이었다면 오히려 그 느낌은 덜 다가왔을 듯하다.
여주인공을 청순가련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문채원의 얼굴은 청순 그 자체이지만, 그 안에서 강한 액션도 소화할 수 있는 내공을 지닌 인물로 표현한 게 좋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박해일의 캐스팅과도 상통한다. 두 배우 모두 얼굴이 선하고 유해 보이지 않던가. 박해일의 강점은 그런 얼굴을 지녔지만 눈빛이 살아 있어서 때로 연쇄 살인범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이렇게 활의 전쟁을 벌이는 신궁이자 천궁으로도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인재에 가까웠다. 일어나지 않아도 좋을 전쟁을 유발시킨 비루한 임금 인조는, 그 후로도 오래 살아남아 제 자식과 손주까지 다 잡아먹었지만, 제 백성을 살려 돌아올 노력 따위는 그닥 기울이지 않았다. 수십만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고향에서 핍박을 받았다. 참으로 비참했던 역사였다. 그런데 그게 수백 년 전 과거의 일뿐이겠냐고 되묻게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과연 하고 있는지......
영화와 함께 김인숙 작가의 '소현'을 추천한다. 아주 아름답고 슬픈 소설이다. 만화 바람의 검심도 같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애니로 보아도 좋겠다.)
이미 보았으니 스토리의 전후를 다 알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 더 보고 싶은 영화다. 나 역시 두려움을 직시하고, 바람을 극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