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 분단된 나라의 슬픔, 비무장지대 이야기 평화그림책 2
이억배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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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소재로 전쟁을 내세우게 되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평화그림책 시리즈 첫 번째 책에서는 위안부 할머니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삼았다. 비무장지대가 상징하는 분단과 전쟁의 아픔은 '봄'이라고 하는 긴 겨울을 지나서 도착하는 따뜻한 계절과 대비되어 더더욱 평화를 상징하게 된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들판에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점박이물범 가족도 발해만에서 백령도까지 헤엄쳐 온다.
백령도 앞바다에서는 남과 북이 맞서고 있지만 물범 가족은 자유롭게 오고 간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군인들은 허물어진 진지를 다시 쌓고 녹슨 철조망을 수리한다.
그리고 북쪽에 고향을 두고 온 할아버지는 전망대에 올라가 북녘 하늘을 바라보신다.  

 

비무장지대에 여름이 오면 임진강 가에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정다운 가족을 이룬다.
수달 형제는 자맥질로 불볕더위를 식히고 고라니 남매는 왜개연잎으로 배를 불린다.
군인들은 줄지어 행군을 하고 고단한 훈련을 받고,
북쪽 고향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전망대에 올라가 북녘 땅을 멍하니 바라보신다.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먹구름이 가리워 보이지 않는 북쪽 땅을 아득히 바라보신다. 

 

비무장지대에 가을이 오면 북태평양에 살던 연어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자기가 태어난 강어귀에 도착한다.
고진동 계곡의 단풍은 곱게 물들고 아기 산양은 엄마 산양을 따라서 산비탈을 겅중겅중 뛰어오른다.
군인들은 탱크로 출동을 하고 전투기로 폭격 훈련을 받고,
할아버지는 또 다시 전망대에 올라가 텅 빈 북녘 하늘을 바라보신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맑고 높은 청명한 하늘도 쓸쓸함 그 자체로 보이실 것이다.
닿을 수 없다는 아득함에 가슴 속이 텅 빈 것처럼 외로울 것이다. 

 

비무장지대에 겨울이 오면 산에도 들에도 남과 북을 가르는 철조망에도 하얀 눈꽃이 피어난다.
철원 평야 너른 들판에는 북쪽 나라에서 날아온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오늘도 전망대에 올라가 눈 덮인 북녘 땅을 멍하니 바라보신다.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아가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바라고 또 바라실 것이다.
또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고, 긴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지 고민하실 할아버지...
그리하여 새 해에 내가 살아 고향 땅 밟아볼 수 있을지 걱정하실 할아버지...
막막하고 먹먹하여 아득히 하얀 눈밭 바라보며 얼마나 마음 가득 슬퍼하실지...... 

 

다시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할아버지는 이젠 더 이상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지 않으시다.
할아버지는 굳게 닫힌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 양지 바른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으시다.
그곳 고향 땅의 체취를 느끼고 싶으시다.
고향 땅을 가족에게 소개하고 싶고, 고향 땅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싶으시다.
갈 수 없는 땅이 아닌, 기꺼이 갈 수 있는 땅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
할아버지의 봄이 비무장지대의 봄과 만나 고향의 봄과 어우러질 수 있기를 소망하고 계시다.
그 소망은 할아버지만의 것이 아니다.   

이산가족의 규모는 천 만 명을 아우르고, 그 중에서 가족을 만나본 사람은 1만 명 수준이다.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자신이 탈락한 것을 알고는 절망에 빠진 나머지 자살을 택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떠오른다.
책의 앞 표지에는 전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가 철조망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봄이 오고 난 뒤의 뒷 표지에는 그 철조망이 사라진 채 하나된 땅으로 그려져 있다.
간절한 바람이 곧 현실이 되기를, 그 현실을 더 빨리 당기기 위해서 모두가 함께 바라기를,
그 날을 만들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기를 소망한다.

책은 염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서 비무장지대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혹은 감상적으로 묘사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에 담겨 있는 간절한 기원을 지나치고 싶지 않다. 때문에 보통 때라면 포토리뷰를 썼을 것을 일반 리뷰로 옮긴다. 별점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곳곳에 진정한 봄이 오기를 소망하면서... 그것이 지구촌의 평화인 것도 잊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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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6-0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시리즈 좋아요~~~ 진정한 봄은 언제나 맞이하게 될지...

마노아 2011-06-08 10:44   좋아요 0 | URL
새로 나온 평화시리즈도 눈독 들이고 있어요. 사계절이 시리즈 기획에 참 강해요.

양철나무꾼 2011-06-0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 그래요.
아무래도 위의 그림보단 이 그림이 좀 편안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냉철한 현식인식이라는 말 새길게요~^^

마노아 2011-06-08 22:17   좋아요 0 | URL
위의 책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마음이 더 불편해지지요.
이제 리뷰를 쓸 '온양이'의 그림은 두 그림의 중간 느낌 정도예요.
이 정도가 제게는 제일 괜찮은 것 같아요.

수퍼남매맘 2011-06-1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억배 님도 좋아하는 그림작가 중의 한 분이세요.
이담 님과는 그림풍이 완전 다르지요.
하나하나 딸로 볼 때는 몰랐는데 같이 보니 약간 만화풍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두 분다 개성이 강해서 어떤 게 낫다고 섣불리는 말 못하겠어요.
분단의 현실과는 이담 님의 그림풍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네요.
한편으론 이억배 님은 비무장지대에 진정한 봄이 오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더 화사하게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해요.

마노아 2011-06-12 22:06   좋아요 0 | URL
전에는 해학적이다 느꼈는데 이담 작가님 그림과 연이어서 보니까 저도 만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오늘 배현주 작가님 그림책을 보았더니 이쪽은 더 심하게 만화 분위기더라구요.
하핫, 재밌는 일이에요.^^
오늘 읽은 '산골 총각'은 또 이담 님 분위기와 비슷하고요.
모두 제각각의 개성이 있어요.
그래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님인 김동성 작가님이에요.
좋은 작가님들이 많아서 참 좋아요. 이분들은 그림책에 봄이 되어주시는 분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