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따먹기 법칙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4학년 1학년 국어교과서 국어 4-1(가) 수록도서 작은도서관 33
유순희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3월
구판절판


지우개 따먹기라고 해서 내가 처음에 생각한 게임은 지우개의 모서리를 눌러서 상대방 지우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떠올렸다.(이 방법의 게임도 뒤에 나오긴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지우개 따먹기는 알까기와 똑같았다. 손가락을 튕겨서 상대방 지우개를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방바닥이 아닌 책상이라면 알까기보다 지우개 따먹기가 훨씬 낫겠다 싶었다. ^^

상보는 지우개 따먹기 대장이다. 그런 상보에게 도전하는 준혁이는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친구다. 그렇지만 지우개 따먹기만은 상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우개에 집중하는 저 눈빛을 보시라.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한 판 싸움!

상보의 지우개 상자에는 친구들에게서 이겨서 얻은 지우개가 한가득이다.
엄마가 안 계시고 형제도 없는 상보는 아빠가 회사에서 늦게 귀가하시면 무척 심심해했다. 그러다가 지우개를 갖고 놀기 시작한 것인데 알고 보니 아빠도 어릴 적에 지우개 따먹기 대장이었던 것!
아빠는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시고 고물상을 차리셨다. 상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아빠와 상보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이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을 만들었다. 무려 열 가지에 이르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은 단순히 지우개를 따먹는 데에만 쓰이는 것이 친구와의 관계, 자신과의 다짐 등등 인생의 법칙으로도 작용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상보와 준혁이, 그리고 홍미의 이야기도 더 들어보자.

홍미의 엄마는 조향사다. 고객이 원하는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 고객이 왜 그 향기를 찾고 있는지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엄마. 그런 엄마와 함께 사는 홍미라면 남의 속내를 좀 더 잘 읽어내는 착한 아이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짝꿍 바꾸는 날. 홍미는 사실 준혁이와 나란히 앉고 싶었다.
공부, 음악, 미술, 체육 못하는 게 없고 얼굴도 잘생긴 준혁이다. 머리카락은 황금색으로 염색했다고 나오는데 왼쪽 그림에서는 황금빛으로 보이지는 않는 게 다소 아쉽다.
줄 선 대로 앉게 되어 있어서 준혁이와 나란히 앉을 뻔 했지만, 눈이 나쁜 미란이가 그 자리에 앉고 홍미는 지저분한 상보와 짝이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냄새에 민감한 아이가 상보의 퀴퀴한 냄새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빨에 낀 저 미역 가락은 아빠 생신이라고 직접 미역국을 끓인 자랑스러운 흔적이다. 비록 치약이 떨어져서 양치질을 며칠 째 못하고 있지만....;;;

그 후로도 준혁이는 상보에게 재도전에 재도전을 감행했다. 때로 억지를 쓰고, 어쩌다 이기면 상보의 지우개를 험하게 다뤄 그동안 상한 자존심을 달래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보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을 들먹이며 페어 플레이를 외쳤다. 친구들은 모르는 아빠와 상보만의 법칙이니 잘 먹혀들지는 않지만 말이다.

뒷산으로 야생화 공부하기로 한 날, 모두들 도시락을 지참했지만 상보는 빈 손이었다. 선생님께 도시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친구들이 갖다 놓은 것들이 있어 선생님은 친구에게 양보할 것을 권했다. 상보가 빈 가방으로 온 것을 아는 홍미는 상보를 찾아 나선다. 들판 위쪽 너럭 바위에 앉아서도 돌멩이로 지우개 따먹기 연습을 하는 상보. 홍미는 이참에 연습이란 걸 해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겨보기도 한다. 사소한 거지만 홍미에게는 기쁜 일.

상보가 외롭거나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자상한 아빠가 도시락을 갖고 오셨다. 비록 똥을 제거하지 않은 멸치가 들어간 김밥이지만, 아빠의 사랑이 가득 든 도시락이었다.
상보의 외관은 외롭고 초라해 보이기도 하건만, 씩씩하고 당당한 이유는 이런 아빠의 보살핌 덕분일 것이다.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것까지 더 열심히 챙겨주시는 좋은 아버지다.

준혁이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다. 홍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직접 향수를 만들었다. 준혁이를 생각하며 근사한 이름도 지었다. '황금 왕자!'
하지만 준혁이의 상태는 결코 황금 왕자가 아니다. 거만하고 욕심 많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친구를 깔보고, 정성이 깃든 선물의 가치를 아직 알아보지 못한다. 착한 인성의 준혁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련과 보다 많은 감동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직접 만든 향수라니,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비누도 (딱 한 번)만들어 보았고 빵도 만들어 보았는데 문득 향수에 발동이 걸릴락 말락~

홍미가 상보의 집을 찾아갔다가 상보의 다락방에서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를 색깔로 치환해서 그림으로 상상해 보는 홍미의 발상에 따라 바깥 풍경을 색으로 표현했다. 그것이 바로 노을지는 붉은 풍경이다. 붉지만 다양한 색이 녹아 있는 따뜻한 정경이다.
아아, 그런데 비탈길에서 저리 자전거를 타다니 너무 무섭다.
외발 달린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보면 아찔한데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책에서는 이야기의 진행상 지우개 따먹기 법칙이 순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5-2-4-6-1-7-8-3-9-10의 순서로 소개되었는데, 원래 정해놓은 법칙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1. 꼭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것
2. 가벼운 지우개를 사용할 것
3. 지우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미리 겁먹지 말 것
4.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켜라
5. 납작한 지우개는 피한다
6. 지우개 따먹기는 둘이 해야 한다
7. 한 가지만 생각하지 말 것
8. 집중하기
9. 지우개 크기는 비슷해야 한다
10.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 상대는 나의 친구이다

저 법칙에서 '지우개'를 지우고 읽어본다면 인생에 대한 조언으로도 충분히 들린다. 특히 마지막 법칙이 가장 멋있다. 승부욕이 앞서고 욕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질 때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 더 중요한 건 내가 얻을 포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100여 쪽에 이르는 짧은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아이들의 다툼과 화해, 고민과 성장이 잘 녹아 있다. 캐릭터가 뚜렷하고 저마다의 장점이 분명한 아이들이다. 즐겁게 책을 읽고, 덤으로 지우개 따먹기 게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오랜만에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03-31 0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우개 따먹기의 10가지 법칙은 인생의 법칙이기도 하지요~~~ 꽤 깊이가 느껴지는 동화예요.

2011-03-31 0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3-31 10:40   좋아요 0 | URL
짧은 이야기에 메시지가 제법 많아서 인상적이었어요.
잊고 있다가 생각나서 부랴부랴 리뷰를 썼지요.^^

후애(厚愛) 2011-03-31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에 딱지 따 먹기와 구슬 따먹기 했었어요. ㅋㅋㅋ

마노아 2011-03-31 10:41   좋아요 0 | URL
딱지는 동그랗게 생긴 녀석을 많이 했고 구슬 따먹기는 거의 못해봤어요.
참 재밌어 보였는데 그게 아쉬워요.^^

양철나무꾼 2011-04-0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순오기님 서재에서도 봤는데...
전 잠자리의 장례행렬보다는 이런 류의 그림이좋아요~^^

마노아 2011-04-01 00:51   좋아요 0 | URL
편안한 그림체죠? 저는 잠자리쪽 그림이 더 좋긴 해요.
그런데 저 작가의 다른 책들은 저런 분위기의 책이 아닌가봐요.
미리보기로 봤더니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없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작가는 김동성 씨예요.^^

꿈꾸는섬 2011-04-0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순오기님 서재에서 봐서 그런가 친근하네요.ㅎㅎ

마노아 2011-04-02 01:23   좋아요 0 | URL
리뷰는 제가 먼저 올렸는데 두 분이 연달아서 거기서부터 보고 오셨군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