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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tion - Illustrations & Making
천계영 지음 / 서울문화사 / 2002년 7월
품절
여태까지 본 일러스트집 중에 최강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저 두꺼운 표지를 보시라. 책이 엄청 튼튼하고 무겁다.
천계영 작가님 언플러그드 보이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시더니 그보다 더 쎈 작품 오디션을 마치고 불현듯 미국으로 날아가셨다. 더 공부하신다고...
그 와중에 메이킹 북을 내셨으니 그게 바로 이 책이다.
천재 소년 네 명을 찾아내어서 밴드를 구성하고 오디션에서 우승을 해서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찾으려는 송명자. 네 명의 소년 중 가장 카리스마 넘치고 가장 섹시하고 가장 차가운 인물은 단연코 국철이다. 지하철 1호선에서 따온 이름이라나. 매력 포인트는 미끄러운 다리 라인인데, 그것 때문에 오디션에서 점수가 더 나온 적도 있었다. 심사위원 점수에 관객 반응을 합산하는데 래용이가 국철 다리를 보여주는 바람에 여자 관객들의 비명 소리가 공연장을 진동시켰던 기억이 난다.
재밌게도 각 멤버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시켰다.
독자가 궁금해할 것들, 작가가 말해주고 싶은 것들, 그리고 캐릭터에게 어울릴 법한 질문과 답이 잘 어우러져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천계영 작가가 원래 디자인을 공부했을 것이다.
그래서 옷이나 실루엣 등이 장난아니게 근사하다.
하지만 언제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런 미적 감각에 뒤쳐지지 않는 발칙한 상상력들이다.
메이킹북답게 제작 과정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소개해줬다.
콘티 원본과 원고 원본이 보인다.
페이지 수가 아주 크게 씌어진 것도 독특하다.
악기 그리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일부러 낙원상가에서 제일 싼 기타를 사다가 어시에게 포즈 좀 잡아보라고 시켰다고 한다.
뒤에서 밴드 연주 모습을 잡은 저 씬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셨다고 한다.
내게도 열기가 느껴진다.
류미끼는 혼혈아다. 그리고 여자 뺨치는 미모를 갖고 있다.
거기에 대한 반감으로 학교 짱도 먹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데, 싸움 실력보다는 깡다구가 좋았던 거라고 이실직고했다.
오디션에서 가장 즐거웠던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변득출이었다.
외모는 변태스럽고 하는 짓도 엽기적이었지만, 그 바람에 제대로 코믹을 연출해 주었다.
특히나 그의 패션 센스는 천계영 작가가 재능과 호기심을 맘껏 펼쳐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가장 많은 혐오감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참으로 실험정신이 투철했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공작새의 날개를 본뜬 '네 꿈을 펼쳐라''
태양계의 행성을 목둘레에 둘러버린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돈다'와 '밤에 피는 장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 등등
매회 변득출이 얼마나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나올 지가 핵심 관건이었다.
설정 컷을 보니 무척 디테일하게 구상을 해두고 여러 경우의 수도 준비해 두었던데 작가님도 대단하시지만 어시의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도 짐작이 간다.
패션 잡지나 그밖의 여러 통로에서 영감을 얻는데 국철의 비키니는 브래지어가 어떤 무늬를 넣어도 가슴이 돌출되어 보이는 효과가 되어서 무척 애먹었다고 한다.
왕5삼의 백마는 나폴레옹의 말을 참고했고, 서양 복식 역사 책에서 본 그림 중 어울릴 만한 것을 발췌했다고 한다.
맨 아래 사진은 온갖 옷과 가방 신발, 악세사리 등등 참고 자료를 모아둔 것들이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천재 소년 황보래용. 오빠는 황보래용이란 노래도 있었더랬지.
저 오렌지 머리 너무 해보고 싶다.
이들이 오디션에서 이기며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상대 팀 혹은 가수의 설정들도 매우 이슈를 불러 일으켰는데 게 중에는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들도 꽤 있었다. 그걸 모른 독자들은 음반 가게에 가서 해당 가수 음반을 찾아달라고 아우성이었지...
작가님 집 주변 과일 가게에서 찍은 샷을 보고 그린 그림.
그리고 화실의 풍경이다.
만화가들이 왜들 그리 고양이를 이뻐하는지는 참으로 미스테리.
만화가들의 취향에는 고양이가 더 좋을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
그나저나 고양이들 참 잘 생겼다!
재활용밴드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경위와 네 명의 멤버 이름이 유독 촌스럽게 보이는 이유까지 설명해 주고 있다. 감정적으로 급히 지은 것이 아니라 나름의 심사숙고를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모아이 속의 래용이가 참 잘 어울린다. 나스카 문양도 고려했다는데 이쪽이 훨씬 낫다.
맨 아래 사진은 내가 갖고 있는 오디션 표지 공책.
수능 끝나고 쓴 소설들이 담겨 있다. 시작만 하고 완결은 되지 않은 세번째 소설..ㅎㅎ
만화계에서는 천계영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시대 구분이 된다고 말하는데, 동감한다. 그 이전 혹은 이후 작가님들이 대단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천계영 작가가 워낙 파격적이었다.
최근에 읽은 '하이힐을 신은 소녀'는 내 정서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완소 작가님이시다. 이제 못 본 것은 '예쁜 남자' 뿐인가? 책이 비싸서리... 완결 나면 볼까보다.^^
어쨌든 이 메이킹북은 소장 가지 20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