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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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는 언덕 위의 히바리가오카. 그 중 가장 선망의 대상 축에 속하는 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외과의사인 남편을 언제나 조용해 보이던 아내 준코가 살해했다는 것이다. 둘째 아들 신지는 그날밤 행방불명이 되었고 세상은 이 날의 사건으로 온통 떠들썩하다. 이 날을 정점으로 사나흘 간격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을 각각의 등장인물의 눈과 입을 통해서 계속해서 재구성되고 재현된다.  

먼저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의 맞은 편에 위치한 엔도 가족의 이야기를 하자. 히바리가오카에서 가장 자그마한 집. 인테리어 일을 하는 남편 게이스케와 언덕 아래 이웃 동네 슈퍼에서 파트 타임 일을 하고 있는 엄마 마유미, 그리고 원하던 사립 중학교를 가지 못한 뒤 컴플렉스에 싸여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히스테리를 부려 동네 시끄럽게 만드는 딸 아야카가 한 가족이다. 엄마 마유미는 예쁜 집을 지어 사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 그래서 히바리가오카에 집을 짓게 된 것에 무척 행복해했다. 비록 33년 치의 대출 할부금이 남아 있지만. 그 집에 어울리는 벽지와 바닥을 고르고, 그 집의 품격에 맞게 딸아이도 가까운 명문 사립고에 가길 바랐다. 하지만 딸 아야카는 입시에 실패한 후 철저히 패배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이게 모두 엄마 탓이라고 여기고 엄마에게 막말을 해대며 집안의 집기도 부수기 일쑤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빠 게이스케는 방관자로 일관한다. 

이웃집에는 히바리가오카의 터줏대감을 자임하는 고지마 사토코가 있다. 아들 내외는 외국에 나가 있는데 돌아오면 같이 살 수 있게 주방도 두 군데로 만드는 리폼 작업도 해놓았지만 아들 내외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 온 동네 일에 참견을 하고 히바리가오카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을 참아내지 못하며,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에 대한 심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착각하고 있는 할머니다.  

사건의 중심인 다카하시 가족 이야기도 해보자. 외과 의사와 사별한 첫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요시유키는 의사인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머리가 좋았고 다만 인물은 별로라고 한다.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 히나코와 막내 신지가 태어났는데 둘 다 엄마를 닮아 인물이 좋았지만,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 히나코와 달리 신지는 엄청난 노력으로 가까스로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주보는 집의 엔도 가에서는 명문 사립 중학교를 다니는 신지를 늘 부러워했지만, 신지와 그의 엄마는 성적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부자 동네에 살고, 외과의사 아버지를 두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문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는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오죽하면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까.  

인터넷은 악플로 도배가 되었고, 히나코의 담임 선생님은 학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형식적으로만 의논하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위로 문자 한 통 없이 뒤에서 수근거리고 있고, 히바리가오카의 반상회에서는 이 집 벽에 온갖 비방문을 붙여댔다. 심지어 자칭 터줏대감 고지마 사토코는 신지의 방 창문에 돌을 던져 유리를 깨는 만행까지 저지르며 당당해한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들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것처럼 몹시 불안해 보였다. 부자 동네의 가장 작은 집으로 이사 오고 앞집 아이와 늘 비교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박해하는 아야카가 엄마와 아빠에게 보이는 행동은 도가 지나쳐서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때려주고 싶을 정도의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 아야카의 속내로 들어가 보면 더 비겁하고 못된 학교 급우들이 나오고, 엄마의 꿈의 전당인 이 집과 동네가 위치한 언덕이 주는 스트레스가 말도 못한다. 사람들은 사립학교에 몹시 집착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을 높여주고, 그것이 곧 좋은 직장과 좋은 혼처까지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교육 열풍 따라잡기 분위기랄까.  

형과 누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에 자괴감을 안고 있는 신지조차도 맞은편 집 아야카와 자기를 두고 입시 화이팅을 외치자 어디다가 비교를 하냐고 생각하며 우습게 여긴다. 고지마 사토코는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학생의 면전에서 별볼일 없는 학교의 학생일 거라고 지레 짐작을 해버린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성적으로 아이의 등급을 매기고 있었고, 아이들 역시도 거기에 편승해 자신의 등급을 자체 평가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고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누구도 행복하지 못했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사건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사건이 있던 날,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지내고 있던 장남 요시유키의 여자 친구는 그가 동생들 걱정을 하자 자기 걱정을 먼저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떼를 쓴다. 이런 정신 나간 여자를 보았나! 요시유키 역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의학부 수업을 핑계로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으로 갈 때도 신칸센을 타지 않고 일부러 밤늦게 도착하는 버스를 타버린다. 딸 히나코는 사건의 진범이 엄마가 아니라 차라리 동생이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다. 인간이야 모두들 이기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아빠가 죽었고, 엄마가 그 범인인 이런 존속 살인 사건에 이들이 보여준 행태는 하나같이 비상식적이었다. 이 집만 그런 게 아니다. 엔도 가도 그랬다. 아야카의 히스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고, 끝내 엄마 마유미는 폭발해 버린다. 자칫하다간 딸을 잡을 뻔했는데 가까스로 멈추긴 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참견꾼에 수다쟁이인 고지마 사토코는 싸움 재발 방지 차원이라며 이 집 거실에 주둔한 채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아, 이쯤 되면 읽다가 도리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워낙에 일본 사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민폐 끼치지 않아야 하고, 남의 시선을 굉장히 신경 쓴다고는 들었지만, 가식을 넘어 위선적인 모습들을 마주하고 보니 마음이 갑갑해져왔다. 그리고 더 불안한 것은, 이런 일본 사회의 모습을 우리나라가 엄청 닮아가고 있거나 이미 흡사해져 갔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조차도 살고 있는 아파트의 평수에 따라 친구를 가르고 있고, 초등 저학년인 아이들이 성적순으로 친구를 골라 사귀는 모습이 흔해져 버렸다. 벌써부터 어린 아이들이 학급 친구를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만 생각하고 그 경쟁자를 꺾기 위해서 집단 따돌림도 불사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마주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조카의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야행관람차에서 등장하는 사건들도 처음엔 작은 것에 불과했다. 작은 스트레스와 히스테리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연쇄작용으로 불을 붙여버렸고, 사람이 죽는 일에까지 미쳐버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두가 조금씩 부채질을 하였고, 그 재는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알게 모르게 말이다.  

단순히 여기서 끝냈다면 작품은 인상만 찌푸리게 하고 불쾌한 기분만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다행스럽게도 숨통을 트여주고 작품을 마무리한다. 모두에게 이기적이고 못된 심성이 있기도 하지만, 그 모두에게도 착한 심성이 다행히 간직되고 있다. 다만 그들은 겁이 많고, 소심하고, 혹은 무지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웃과 친구와 그리고 가족의 허물을, 슬픔을 달래주고 덮어주고 위로해주는 심성도, 그들 안에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각자의 방법으로! 

작가의 전작인 '고백'이나 '속죄'보다는 사건의 규모가 작기는 했지만 오히려 우리의 삶 속에서 보다 자주 마주치는 불씨에 대한 이야기여서 감정이입이 더 잘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랬기에 더 걱정이 된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스스로로 인해서 행복해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내고, 또 과장된 욕망을 맞추기 위해서 타인의 인생을 강요하는 중대한 실수들을 저지른다. 그 모습들은 결국 우리의 모습들이 아니던가.  

히바리가오카에는 곧 일본에서 제일 큰 규모의 야행관람차가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밤하늘에 우뚝 솟은 관람차. 천천히 느리게 회전하는 관람차 안에서는 언덕 위의 히바리가오카와 언덕 아래의 마을들이 똑같이 작게 보일 것이다. 위에 있을 때에는 모두 아래에 있고, 아래 쪽에서 볼 때는 모두 위쪽으로 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나누고 스스로를 가둬버린 계급을 깨버리지 않는다면 이렇게 병든 사회에서 휘청거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방법이 없을 것이다.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보통 경각심을 가질 일이 아니다.  

이 소설은 미나토 가나에와 만나는 네번째 작품이었다. 특유의 속도감 있는 필체는 여전하고 사건의 몰입도도 크다. 다만 등장인물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벌써 네 번재 접하다 보니 다소 질리는 감은 있다. 그걸 트레이드 마크로 쓰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좀 변화를 주었으면 한다. 역자 후기를 보니 '왕복서간'이라는 신작이 일본에선 이미 발표했나 보다. 국내에도 곧 나오지 싶다. 스타일의 변화는 원하지만 아무튼 다음 작품도 꼭 읽어볼 생각이다.   

덧글) 25쪽에 '히바리가오카 로 향하는'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 같다. 아래 각주로 '종달새 언덕'이라는 뜻이 나오는데 그걸 표시하기 위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다만 표시하는 걸 잊고 한 칸만 띄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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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0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3-1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 작가의 작품이겠군요..............
재미있고 붙들자마자 끝까지 읽어야겠지만, 한없이 맘은 불편할거 같은 이 느낌. ^^

읽을까 말까 한참 고민되는, 읽으면 읽길 잘 했어 싶은 그런 작가였습니다, 기억에.

마노아 2011-03-10 12:07   좋아요 0 | URL
마지막에 미소지어지는 어느 부분이 없었더라면 이 작가의 최악의 작품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만회해주고 마무리를 지어주었어요. 처음 읽었던 고백이 가장 흡인력 있고 결말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후로도 계속 관심이 가요.^^

카스피 2011-03-1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노아님 리뷰를 보니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불끈 솟아오는데요^^

마노아 2011-03-11 12:02   좋아요 0 | URL
미나토 가나에 책이 늘 본전은 챙기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