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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평점 :
여자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남자의 등과 팔도 보인다. 흑백사진의 검은색 옷이어서 눈에 잘 안 보였던 것이다. 표지의 의도를 생각해볼 때 이 장면은 헤어지기 전 마지막 포옹이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다소 간절함이 부족해 보이지만...
이 책에 흥미를 보이게 된 것은 제목의 '이별' 때문이 아니라 부제의 '책 읽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적혀 있다.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이별을 왜 재음미해야하는지,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왜 책 읽기인지는 나중에 생각해보더라도 아무튼 이 책에서는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소개해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장 이별을 겪은 사람은 이런 글자가 눈에 들어올까 싶지만 이별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나같은 독자가 좀 더 이 책을 재밌게 볼 것 같았다.
책은 친절하게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설명해 준다. 목차를 보면 이별의 전조와 실연의 정황을 말해주는 책들, 다음 단계인 부정과 슬픔의 정황을 말해 주고, 그동안 사랑에 대처했던 우리의 자세들을 헤집어 본다. 다음에 해야할 일은 분노하고 애도할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을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여기까지 얘기하는 동안 언급된 서른 권이 넘는 책들과 몇몇 영화와 드라마 등이 있다. 못 읽은 것들이 더 많지만, 읽은 것들도 종종 끼어 있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재음미하며 추억하기에 좋았다.
앞서 이 책은 이별 당사자보다 그저 책테라피에 더 호기심이 기울어진 내게 적합한 책이라고 얘기했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일으키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이별이라는 감정의 파동을 너무 오래 전에 겪은 나로서는 간접경험이나 상상 그 이상으로 몰입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내 사랑이 너무 가볍거나 내 상처는 지나치게 얕아서가 아니라, 불행히도 양방향으로 같이 사랑한 기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청춘 속 사랑은 나의 짝사랑이거나, 그의 나를 향한 짝사랑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숫자로 세면 많지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읽으면서 나는 꽤 많이 속상했다. 사람이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불같은 사랑도 해보고 폭풍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도 말려보고 그런 것들을 겪고 이겨내고 비로소 성장해가고 그래야 하는데, 내 인생의 폭풍우 같고 불같은 순간들의 핵심에는 남녀간의 사랑은 그닥, 없었던 것이다.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닌데도 그런 기억만 갖고 있어서 나는 나의 이별을 무엇으로 슬퍼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애도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그러니 떠난 그를 향해서, 혹은 떠나온 나를 향해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지내온 내 삶의 궤적에 대한 애도만이 도도히 흐를 뿐.
실연의 상징이기도 했던 급작스런 헤어컷, 혹은 머리스타일의 변신. 갑작스레 머리 모양을 바꿔본 적은 있지만 그것이 사랑 때문에, 혹은 실연 때문이었던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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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이라기보다는, 별 일도 없는데 자신이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날이다.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집에 편안히 있으면서도 어쩐지 사회관계의 패자가 된 것 같은 열패감에 젖기도 한다.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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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런 문장은 꽤 그럴 듯하다고 동의하지만 나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의 크리스마스는 늘 공연장에서 '환장 정신'으로 뭉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유독 '외로운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을 가졌던 것까지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내가 오늘 몹시 즐겁게, 아주 행복하게 멋진 공연을 즐겼다는 사실을 자랑할 누군가가, 혹은 같이 누려줄 사람이, 그도 아니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기다리는 그런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짙어진다는 것도 인정하겠다. 모두에게 보편적인 이별이 어디 있을까. 조금씩은 저마다의 경험에서 겹치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 작은 것만으로도 그 보편적 감정을 우리는 이해한다.
언급된 책 중에서 좋았던 부분이 참 많았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읽으며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정도의 상상력과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읽고 싶은 책으로 급부상했다. 잠깐 소개된 내용으로도 제목의 역설적 분위기가 충분히 그려졌던 것이다. 김애란의 '성탄특선'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가 번뜩이는 도시의 성탄절에서 가난한 연인이 맞이한 그날의 특별하고도 불편했던 기억들에 연민을 느꼈다. 내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은희경의 소설이 많이 언급되었다. 막연히 내가 느끼던 분위기와 달라서 자못 놀랐고, 그래서 더 다가가보고 싶은 궁금증을 느꼈다. 신경숙을 상상했는데 정이현에 더 가까운 느낌? 읽어봐야 확실히 알 것 같다.
노희경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몹시 재밌게 보았다. 대사가 가슴을 콕콕 찌르곤 했는데 이 책에서 언급된 것을 보고 나니 드라마 대본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충동도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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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느냐고…….’가 아니라, “희망을 믿느냐고…….”이다. 희망은 ‘존재와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불신’의 문제일 것이다. 희망을 조심스럽게 믿는 사랑과, 희망을 불신하는 위악적인 사랑, 그것의 차이는 얼마나 깊은가.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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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존재와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불신의 문제라는 지적에 공감했다. 희망을 믿지 않는 자에게 희망이 있냐고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희망의 종류가 무수하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김형경의 '외출'도 특히 좋았더랬다. 영화 외출을 보았는데 당시 음향 사고가 있어서 대사가 잘 안 들렸다. 그것도 커졌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했는데 아무도 와서 조치해주지도 않고, 끝났을 때 사과도 없고, 당연히 환불도 안 된... 그런 열받는 기억만 남아서 그 영화의 엔딩이 이런 분위기였다는 것을 전혀 짐작도 못했다. 글자로 다시 확인해 보는 외출의 마무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괴로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던 영화의 잔재를 재포장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웠다.
책은 제목처럼 끊임없이 '이별'을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닿아야 할 종착역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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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실패를 완성해야 한다. 이별은 분명 관계의 실패이다. 이별이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고, 이별했지만, 실패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별을 완성할 수가 없다. 이별은 도피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완성해야 하는 중립적인 것이다. 누구나 이별할 수 있고, 누구나 이별 때문에 아프다. 그 실패의 아픔은 반드시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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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책은 이별한 당신을 위해서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고, 사랑하고 있는 당신과, 사랑하고 싶은 당신 모두에게, 그리고 이별이 당연히 두려운 모든 사람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객관식 시험의 정답이 아니니 일괄적용시키는 무식한 방법은 쓰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별리뷰를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당신만의 이별 리뷰가, 당신의 이별지침서가, 사랑 안내서가 완성되었으면 한다.
덧글) 약간의 오타가 눈에 띈다.
66쪽 아이들 그룹→아이돌 그룹
91쪽 삶을 마무리했는지 사이기 하나 단번에 알게 된다.→사이기?
220쪽 사랑의 시작은 끝이 있지만, 사랑의 시작할 수 있다는 긍정의 시작은→ 문장 어색. 사랑을...이 아닐지...
231쪽 “난 꽉 찼는데, 청 비어서 허허로운 것도 같았어.”→텅 비어서
260쪽 완서 씨는 만득 씨과 곱단 씨→만득 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