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시대극인데 미스테리한 사건 해결이 주된 내용이라면 흥미가 돋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주연 배우가 김명민이라면 의리로라도 봐야 한다. 그런데 원작 소설이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이란다. 어... 잠시 심호흡을 했더랬다. 한때, 김탁환 소설을 무척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마음을 아주 충족시키는 감동은 없어도 최소한의 재미를 보장해 주었고 새롭게 배워나가는 재미들이 쏠쏠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 반복되다 보니까 식상해졌다. 늘 2% 부족했다. 소재도 좋고 시작도 좋았는데 마무리가 아쉬웠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기대를 반 접고 들어갔다. 작가님 미안! 

지난 주에 개봉했는데 보고 온 사람들의 반응도 신통치 않다. 흐음... 김명민이 출연을 해도 영화가 꼭 훌륭하란 법은 없지... 그렇게 모든 기대를 접고서 본 영화, 결과는 대만족이다. 무기대의 덕분도 분명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볼거리가 훨씬 많은 영화였다. 나는 참, 좋았다. 

 

처음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탐정 이야기라고 해서 대뜸 정약용을 떠올렸다. 암행어사 시절이 있었으니 엮어 풀기 좋다고 여겼다. 김탁환 소설에서는 이명방이 나오지만 그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진 않을 것 같았다. 이명방을 쓰려면 백탑파 인물들을 다 써야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아서 말이다. 예상대로 이명방은 나오지 않았고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한 번도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거중기의 초기 모델까지 등장하니 그냥 정약용 쯤으로 생각하고 보아도 무방하다. 정약용의 실제 성격은 절대 깨방정이 아니었지만 드라마 이산 때도 그렇고 드라마나 영화로 재탄생 시키기에 그의 실제 성격은 좀 다듬어 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해도 김상궁의 은밀한 매력은... 쎄다!(내 옆 좌석에 18세 청소년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좀 신경 쓰였다.) 

탐관오리를 잡아내어 바르게 돌리는 일을 하는 탐정 나리는 의문사로 위장된 살인 사건에 공납 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때마침 죽이 척척 잘 맞는 임금님은 그가 가고자 했던 적성으로 근신 파견 명령을 내린다. 일련의 과정에서 파트너가 되어버린 개장수(?)와 함께 적성까지 가지만 도착해서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초반에 죽을 일은 없으니 걱정은 접어두자. 

 

오달수는 가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배우다. 이번에 맡은 캐릭터는 '음란서생'을 조금 연상 시켰는데, 그건 이 영화가 은근 슬쩍 요즘 쓰는 유행어들을 많이 갖다 썼기 때문이다.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완전 예쁘십니다.'를 미리 보지 않았다면 더 빵 터졌겠지만, 그것 말고도 소소한 웃음 코드가 무척 많았다. 특히 목욕탕 목소리(!) 씬에서는 내내 웃느라 좌석이 들썩일 정도였다.  

뭐랄까. 까도남 현빈이 크게 인기를 끈 것처럼 요새는 반듯하기만 한 캐릭터는 인기가 없다. 실력 있고 능력 출중한 양반 나으리가 누구보다 얍삽하게 먼저 도망치고 남의 뒤에 숨고 예쁜 여자 보고 침도 질질 흘리니 더 정이 가고 캐릭터가 맛있어진다. 선 굵은 연기를 많이 했던 김명민이 망가지니 그 효과도 더 크다. 종종 코믹 연기를 했지만 진지함과 망가짐의 경계를 잘 지켜내어 보는 관객의 마음이 편안했다. '내 사랑 내 곁에' 이후 과연 회복이 될까 걱정스러웠는데 이번에 보니 건강해진 것 같아서 역시 안심했다.  

한지민 얘기도 해보자. 이 여인네가 이렇게 아름다웠다니, 새삼 놀랐다. 

  

머리에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각시투구꽃인가 보다. 저렇게 보니 정말 투구 같아 보인다. 원산지를 생각하면 상당히 무리인 설정이지만 너무 따지진 말자. ^^

탐정이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것은 적성현의 열녀문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었다. 시집오자마자 남편을 여읜 김아영은 시댁을 일으켜 세운 뒤 벼랑 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 김아영은 노론 명문가 임판서의 조카 며느리. 탐정은 사건을 파헤쳐가면서 그 배후에 적성의 실세인 한객주가 관계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한객주는 바로 사진의 한지민. 늘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통했기 때문에 팜므파탈적 마력을 선보이며 섹시미를 내세우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가슴을 너무 강조한 옷들이어서 역시나 옆자리의 청소년이 좀 신경 쓰였지만 여자인 내가 봐도 홀리게 예뻤다. 목소리 연기는 다소 아쉬웠지만 스모키 화장의 비호를 받는 눈빛 연기는 단연코 일품! 그녀가 등장하면 옷에 사로잡히고, 주변 소품들에 또 눈길을 빼앗긴다. 멋지고 또 멋지다. 

 

영화의 2/3가 진행되고 나서 코믹 모드는 잠시 접어두고 심각한 음모 속으로 확 전환된다. 그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다소 자연스럽지 않은 아쉬움이 남지만 관객은 빠르게 몰입해간다. 누가 나쁜 놈인지, 한객주에게 뭔가 비밀이 있을 거라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거기에 정신이 팔리고 나니 감독이 제대로 숨겨둔 마지막 반전에 허를 찔린다. 맥거핀 효과라고 할까? 혹은 성동격서? 

김아영이 적성 노비들에겐 천주같은 존재였었고, 그런 그녀의 바탕에 천주학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또 시대적 배경이 정조 때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야기의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진다. 물론 사건들이 해결되어가는 과정이 좀 더 촘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구성지게 잘 맞춘 듯 보인다. 공납 비리는 얘기했지만 공납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어려움을 끼쳤는지까지는 얘기하지 못했다. 그게 핵심 얘기가 아니었으니 넘어가자. 그런데 탐정이 임오년 생이라고 한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임오년이 사도세자가 죽은 해이고, 그때에 정조가 11세였으니까 극중 탐정은 대체 몇 살이란 말인가? 1782년에 정조가 31세니까 탐정은 20세이던가, 80세가 되어야 한다. 옥의 티다. 

정조는 앞과 뒤에 짧게 나왔지만 강렬했다. 그리고 아주 빛나주었다.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무엇보다 센스 있는 임금이라니, 캬아~ 훌륭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OST도 꽤 마음에 들었다.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뭐랄까... 지켜져야 할 사람이 지켜지고 처단해야 할 사람이 처단된 것에 대한 안도와 기쁨이랄까.  

인물들의 콤비 플레이가 참 멋졌다. 하고자 한다면 2편을 만들어도 좋겠건만 그럴 예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나는 환영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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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1-3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에요~ 임오년 생이라고 나왔나요?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군...^^
탐정이 정약용이다 생각되는 요소들이 많았으니 그렇게 이해해도 될 듯해요.

마노아 2011-02-01 00:11   좋아요 0 | URL
임오년생이라고 하니까 오달수가 자기는 띠동갑이라고 하는 장면이 나왔거든요.
웃자고 넣은 건지, 정말 임오년생이라고 얘기하는 건지...^^;;

순오기 2011-02-01 01:07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임오년 생과 띠동갑~ ㅋㅋ

마노아 2011-02-01 01:30   좋아요 0 | URL
강력한 해였던 임오년, 잊을 수 없어요.^^ㅎㅎ

코코죠 2011-02-01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오늘 이거 보고 왔어요^^ 깨알같은 유치개그가 재밌었지요! 마노아님이랑 나는 같은 장면에서 웃었을 것 같아요. 일테면... 땅콩장수 변장했을 때나, 목소리 묵직한 관리 따라했을 때요. 나는 그때 빵 터졌어요 우헤헤헤! 혼자 갔는데, 혼자 깔깔거리고 막 그랬어요!

마노아 2011-02-01 01: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땅콩장수 씬이나 목수리 묵직한 관리 따라하는 거랑 너무 웃겼어요.
모처럼 저는 다른 사람과 같이 봤답니다. 그것도 18세 청소년과 함께...ㅎㅎㅎ

양철나무꾼 2011-02-01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도 이 책을 보셨군요.
그쵸, 영화가 좀 산만하긴 했지만...재미있었죠.
근데, 책이랑 연관시키게 되면 많이 아쉬워지구요~ㅠ.ㅠ

마노아 2011-02-01 02:17   좋아요 0 | URL
저는 소설보다 영화가 더 재밌었어요.^^;;;
김탁환에게 제가 많이 박한 편이죠. 냐핫..ㅎㅎ
그게 기대치인 것 같아요. 저는 김탁환이 더 잘 쓸수 있는데 욕심 부려서 용두사미가 되는 게 아닌가 매번 안타까웠거든요. 영화는 기대치를 한없이 낮추고 편하게 보았는데 무척 즐거웠어요.
그리고 이젠 소설 읽은지 오래 되어서 세부사항이 거의 기억이 안 난답니다. 마지막 반전만 생각이 나요.(>_<)

무스탕 2011-02-0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내가 직접 보는것보다 마노아님이나 순오기님이나 프레이야님이 적어준 리뷰 보는게 훨씬 더 재미있는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마노아 2011-02-01 13:18   좋아요 0 | URL
영화 보고 나서 남이 쓴 후기 보면 신나요. 이렇게 보셨구나~ 하면서요. 저도 무스탕님 리뷰 보는 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