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Kitchien 1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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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를 구독할 당시 즐겨보았던 키친이다. 짧은 페이지의 컬러 만화가 앞 뒤로 구 편씩 연재가 되었는데 점차 분량도 조금씩이나마 늘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는 참 많았는데 저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질리지를 않나 보다. 이 책에서는 어떤 음식의 기원이나 역사, 만드는 방법이나 기막힌 맛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없다. 그런 컨셉도 아니거니와 그걸 설명한 지면도 부족하다. 대신 아주 짧은 에피소드 안에서 그 음식에 깃들어 있는 추억의 한 대목을 잡아낸다. 그게 내 마음에 참 좋다. 식객을 재밌게 보긴 했지만 그거 보면서 내가 그 음식 만들어 먹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음식 만드는 과정은 건너뛰면서 보는 나이니 말이다.   

작품 연재 당시 없었던 각 챕터별 미니 후기가 재밌다. 코믹 본능이 튀어나와서 본편보다 후기가 더 재밌을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그림체가 순정만화스럽지 않고 명랑만화답다 보니 코믹 캐릭터에 더 맞춤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작가 자신이 강원도 시골 출신으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해서 어려서 겪은 추억과 도시에서 마주친 향수 등을 잘 엮어낸 듯 보인다. 어떤 음식은 지역 특성을 반영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또 어떤 음식은 무척 대중적이어서 공감대를 폭넓게 끌어낸다. 엄마 목욕탕 편에서 나온 바닐라맛 우유 이야기가 대표적인 경우. 

짧은 이야기 안에서도 관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도 마음에 든다. 남녀 사이, 동창 사이, 조손 관계, 모녀사이 등등.  

 

음식 잘하는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철없는 남편은 시어머니의 음식 앞에서 노예가 되어버리고, 그걸 지켜보는 아내는 속이 타버린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새벽 장에서 구해온 꽃게를 엎어 온 집안이 난리가 나자 마마보이 남편이 갑자기 아내의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우리 자기 무서워하니 빨리 치워달라는 저 요구라니! 엄마 입장에선 아들 키워봤다 다 헛거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한데도 아가씨 입장에선 며느리 쪽에 더 공감이 가서 말이다. 저래서 부부가 투닥거리면서도 사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참 찡했던 부분은 요 에피소드! 

 

돈 떨어지고 식량도 바닥나고, 결국 남의 장례식장에서 도둑 밥한그릇 먹으려다가 들통나버린 사연. 고인과 여고 동창생이라 거짓말 했는데 아파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고인이라고 한다. 그 오빠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며 다독여주는 장면이 뭉클하고 따뜻했다. 저 육개장, 눈물과 함께 삼켰으리라.  

화려하고 대단한 음식이 나오진 않지만 평범한 음식 속에서 특별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냈다. 그 보편 속의 특별함이 매력적이었다. 윙크 연재 당시 키친을 읽고 나서 심야식당을 읽었는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쪽이 더 구미에 맞았다. 그쪽은 좀 심심...^^ 

그나저나 육아 휴직 중이셨던 현직 선생님이신데 그후 복직하셨는지도 궁금하다. 2권 읽으면 이야기가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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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01-1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 !! ^^

마노아 2011-01-10 17:42   좋아요 0 | URL
헤엣, 맛있는 보관함!(응?)

잘잘라 2011-01-13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추리 꽃 볶음 먹어봤어요.(저는 할 줄 모르구요. 옛날 분들은 그렇게 많이 먹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꽃을 먹.는.다.니.. 쫌 거시기하죠? ㅎㅎ

마노아 2011-01-13 19:40   좋아요 0 | URL
'원추리'는 별로 이름이 안 예쁜데 '꽃 볶음'은 예뻐요. 꽃을 먹는다.. 하핫, 나름 낭만적인걸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