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 After Shoc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76년 7월 28일 중국 당산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대지진.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영화로 소개되기 전까지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었다. 불과 23초(물론 영화에는 몇 분간 진행되지만) 동안의 지진 동안 무려 24만 명이 죽었다. (영화 소개 팸플릿과 홈페이지에는 모두 27만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선 '24만'으로 나온다. 기왕이면 적은 숫자의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 게 덜 아플 것 같아 24만이라고 생각하련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일곱살 쌍둥이 남매 팡떵 팡다 가족. 무더위 속에 아이들만 집에서 잠들어 있고, 엄마와 아빠는 집 밖 차 속에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났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주검으로 변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부인을 밀쳐내고 달리던 아빠가 먼저 죽었고, 엄마는 한 축대 아래에 동시에 깔려버린 남매를 살려달라고 오열을 쏟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무거운 축대 때문에 한쪽을 들어올리면 다른 한쪽 아이가 눌릴 수밖에 없는 상황. 도와주러 온 주민들은 한 아이를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이 급하고, 엄마는 눈물을 쏟으며 작은 아이를 선택한다. 동생을 살려달라는 그 목소리를, 동생도 듣고 깔려 있던 누나도 들었다. 남동생은 목숨을 건졌지만 왼쪽 팔을 잃었고, 가족의 운명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그리고, 차갑게 변해버린 아빠의 시신 옆에서 누나가 깨어난다. 구조대 손에 이끌려 양부모를 만나 성장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깊어 여전히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되어버린 누나. 그리고 남편 잃고 딸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빠진 엄마. 살아남았지만 한쪽 팔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남동생. 그날의 대참사로 집집마다 그런 사연이 넘칠 테지만, 동병상련을 앓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이들의 슬픔이 줄어들 수는 없었다.  

무너져버린 집터에는 새로이 백화점이 들어섰고, 이사한 집으로 죽은 혼이 제삿날 못 돌아올까 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긴 시간 흘러 아들이 사업에 성공하여 항주에 터를 잡고 집도 샀지만, 기어코 이사하지 않으려는 엄마. 심지어 당산에 집을 사주겠다고 해도 편한 집에서 살수 없다는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깊고 깊은 그늘에 덮여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흐느끼게 만든다. 대강의 내용을 알고서 들어선 자리였음에도 끔찍한 지진이 안타까이 생명을 앗아갈 때, 두 아이를 죽일 수 없어 한 아이를 버려야 했던 어미의 모진 결심 앞에서,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던 아이의 마음까지,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자꾸만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찍어야 했다. 다행히 덜 창피했던 것은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는 것! 

대개의 재난 영화에는 휴머니즘이, 혹은 지극한 인류애를 자랑하는 영웅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지구를 위해서 제 몸을 희생하여 인류를 구해내기도 했고, 혹은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기도 했다. 그런 영화들은 으레 웅장했고, 장엄했고, 아름다웠고, 근사했다. 때로 로맨틱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 유명한 타이타닉을 생각해보시라.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다. 시작부터 감당할 수 없는 선택의 귀로에서 던진 잔인한 질문이 마음을 온통 헤집는다. 저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지, 저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감히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살아남은 것이 축복이어야 하는데, 긴 시간 동안 고통을 이고 지고 살아온 그네들이 가엾고 절절해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며 사는 좌절같은 것이 한낱 투정으로 전락하는 순간을 맛봐야 했다.   

영화는 76년의 사고 이후 86년, 95년, 96년, 그리고 2008년으로 건너뛴다. 3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재난 앞에서 온통 난자당한 그들의 영혼은 쉬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내지 못한다. 누구라고 감히 가능할까.  

2008년, 다시 한 번 지진이 중국 땅을 강타하고, 그 현장을 화면으로 접한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사고 현장에 도착한다. 당산 대지진을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누구보다 그 끔찍함을 뼈에 새긴 그들로서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32년 전 그때의 선택이 비슷하게 재현된다. 무거운 축대 아래 딸이 깔린 것을 바라본 어느 어머니. 그 아이를 살리려던 다른 구조대원이 또 다시 돌에 깔려 실려 나가고, 어미는 모진 결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산 목숨은 살아야 하고, 남은 시간의 굴레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를 포기해서 하나를 살려야 하는 마음의 가혹함이라니...... 답이 없는 먹먹함이 오래오래 잔향으로 남았다. 

배우들이 모두 열연을 해주었다. 특히 엄마 역을 맡은 이분의 연기가 절절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세월의 흔적도 얼굴에 잘 나타났고, 무엇보다 절망을 피하지 않고 감당해내는 모습이 숙연하기까지 했다. 

 

감독은 '야연'을 연출한 사람인데 그때 받은 느낌과 분위기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작품의 감동 덕분인지는 몰라도, 오늘은 유독 중국어가 음악처럼 들렸다. 평소 조금 시끄럽다고 느끼곤 했는데 말이다.  

은혜는 갚지 못해도 원수는 꼭 갚는 고전극과는 확연히 다른 깊이와 감동을 받았다. '무간도' 이후 중국 영화로서는 최고로 좋았다. 감히 '재미'라는 단어를 쓰기는 미안한 내용이지만.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은데, 감정이 좀 힘들어지는 것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감동적인 결말도 꽤 아플 수 있다는 새로움을 알게 했으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1-07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트레일러로 몇번 봤었는데,
님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그 부분이 힘들까봐 망설이고 있었어요.

이 리뷰를 보니까 도전해 보고 싶어요,불끈~!!!

마노아 2010-11-07 09:57   좋아요 0 | URL
마지막보다 앞부분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분명 보고 나면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 거예요. 도전하셔요. 불끈!

마녀고양이 2010-11-0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국의 허접 재난 영화인갑다 하고 지나쳤는데,
아.... 이 영화 정말 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리뷰세요, 마노아님.

좋은 한주 되셔요~

마노아 2010-11-07 13:41   좋아요 0 | URL
비쥬얼적으로 압도하는 힘은 없었지만(그닥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내용이 주는 힘이 컸어요.
이런 영화는 엄마 모시고 가서 봐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마녀고양이님도 한 주 즐겁게 시작하셔용~
이번 주는 초능력자 개봉이에요. 꺄우~(>_<)

순오기 2010-11-0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을 놓고 선택해야 한다는 건 정말 잔인한 선택...
지금 우리 동네서 하고 있는데 봐야겠군요~ 울며 불며 보겠지만!

마노아 2010-11-08 22:29   좋아요 0 | URL
손수건과 휴지가 필수예요. 생각보다 관객이 적게 드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좋은 영화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