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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대한 관심은 급작스럽게 생겼다. 노벨상을 받던 그 날, 누군가의 글을 보았는데 격정적인 남미 문학이라는 소개에 관심이 불붙었다. 그 글은 노벨상 수상이 결정되기 훨씬 이전에 쓰여졌으니 더 신뢰가 가기도 했다. 그 밤에 지역 도서관에 책을 신청했고, '노벨 문학상'이란 프리미엄이 붙은 이 책이 탈락될 리 없이 내 손에 일착으로 들어왔다. 책은 금방 읽히고 (게다가 두껍지도 않고) 재밌었다. 마지막 한 챕터만 남긴 채 반납기일이 돌아왔다. 어쩐지 외출하고 싶지 않은 토요일인지라 반납 연기를 누르려고 했지만 이미 예약 인원이 두명이다. 흠, 역시 유명하군!
제목부터 신선했다. '엄마 찬양'도 아닌 '새엄마 찬양'이라니. 그렇다면 이 책은 의붓 아들의 시선에서 나온 이야기일까? 뭐, 일부만 맞다.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페루의 부르주아 가정의 새장가 든 아버지 리고베르토, 마흔이지만 절대로 마흔으로 보이지 않는 젊은 새부인 루크레시아, 그리고 리고베르토와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폰치토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알폰소, 그리고 하녀 후스티니아나가 중심 인물이다.
14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짧은 이야기들은 독립적으로도 읽히지만 긴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성애에 대한 묘사들. 과거 11분을 읽을 때처럼 얼굴이 달아오르고 호흡이 가빠지는 충격은 없었다. 노골적이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렇지만 요일마다 몸의 각 분위를 정성을 들여 세정해 내는 리고베르토 씨의 의식들은 충분히 관능적으로 묘사된다. 꼭 '성'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충분히 에로틱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순수함으로 무장한 천사같은 소년 알폰소가 새 엄마를 찬양하고, 새엄마를 격렬히 사랑하고, 그리하여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그걸 알아차린 새엄마가 자신을 멀리하자 죽어버리겠다고 소동을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들은 독자로 하여금 '훔쳐보는' 재미를 공유하게 했다. 또 리고베르토 씨와 루크레시아의 매일 밤의 정사,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 이야기에 빗대어 자신의 아내의 '궁둥이'가 최고라고 자랑하는 리보레르토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저절로 관음증이 고개를 든다.
의붓아들과 새엄마가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이야기라면 영화로 치면 19금 딱지가 붙을 법도 하건만, 신기하게도 선정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걸 묘하게 비켜가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 그걸 우리 말로 잘 살려낸 번역도 훌륭할 것이다. 마지막의 반전은 다소 의외였다. 반전의 내용이 없이도 작품은 재밌었다. 반전도 나쁘진 않았지만 내심 기대했던 '파격미'를 비켜간 것 같은 아쉬움은 남는다.
작품 리스트를 보니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1977)가 보인다. 이 책의 리고베르토 씨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단순히 흔한 이름의 하나일까?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같은 인물 맞다. 거기에도 루크레시아와 알폰소가 나온다. 새엄마 찬양이 88년 작품인데 오히려 프리퀼의 느낌으로 쓴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도 여러 그림이 작품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는데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에선 에곤 실레의 그림이 중요한 역할을 하나 보다. 역시 또 고개를 드는 이 호기심! 게다가 반갑게도 정가제 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