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꽃들아 - 최병관 선생님이 들려주는 DMZ 이야기
최병관 글.사진 / 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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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의 한겨울 모습이다.
사진이 아니라 판화나 그림 같다.
한폭의 멋드러진 설경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스며있는 역사의 흔적은 아프기만 하다.

산등성이 따라 이어지는 남북의 철조망이다.
오른쪽 산등성이를 따라가는 철조망은 남한의 것,
왼쪽 산등성이를 따라가는 철조망은 북한의 것이다.
이 철조망이 끝도 없이 이어진 것만 같아 서글프다.

철조망 위에 피어 있는 눈꽃은 아름답기만 한데,
아름다워서 더 시린 풍경이다.
동해 바닷가에서 서쪽 임진강 어귀까지 총 249.4km.
길고도 긴 철조망이다.

철조망 왼쪽이 비무장지대다. 잔디밭처럼 바뀌어버린 풍경.
누구라도 다가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나무를 모두 없애고 말았다.
숲은 사라지고 민둥산만 남은 풍경이다.
산도 춥고 아팠을 것이다. 그후로 내내...

군사분계선 위에 세워진 판문점의 회의장.
영화 덕분에 유명해진 건물.
저 작은 건물조차도 남북으로 갈리어 있다.
그림자조차도 숨이 막힌다.

백암산에 있는 <비목>기념비.
1964년 한명희라는 청년이 이곳 군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녹슨 철모, 돌보지 않은 돌무덤, 썩어 가는 나무 묘비 등 산기슭에 널려 있는 전쟁의 아픈 흔적들을 만났다. 그리고 고향의 보고 싶은 얼굴을 두고 외로이 숨진 젊은이들의 넋을 달래려 한 편의 시를 쓴다.
우리에게 노래로 더 많이 익힌 <비목>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감시를 위해 철조망에 꽂은 돌멩이다.
물기를 머금은 것이 한 마리 물고기처럼 당장이라도 헤엄칠 듯 예쁘기만 한데, 그 안에 사려 있는 의미는 무섭기만 하다.
돌멩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누군가 철조망에 다가온다고 알아차릴 신호,
작은 숨소리, 조금의 틈새도 허락되지 않는 비무장지대였다.

철조망을 따라 켜 놓은 등불이다.
얼핏 보면 예쁘기만 한데, 지새우고 있는 것이 긴긴 밤이 아니고,
밝히고 싶고 내보이고 싶은 것이 찬란한 별이 아닌 것을...
이곳의 풍경은 아름다울수록 더 서럽기만 하다.

비무장지대 건너편에 있는 북한의 초소다.
북으로 오라는 '월북 환영' 그림이 한숨을 베어물게 한다.
월북도 아니고, 납북도 아니고, 방문도 아닌, 그저 우리 모두의 땅이 되어야 하는데...

경기도 파주의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대성동 마을이다.
군사 분계선에서 4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
북쪽 깃대 높이 160m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남쪽 깃대 높이 100m로 결코 낮지 않은 키.
내세우고 경쟁하는 못난 마음이 아프다.

지뢰밭에 피어난 코스모스.
금년 가을엔 코스모스 하나를 길에서 보지도 못하고 지나는 중인데,
뜻밖에도 책 속에서 저 청초한 모습을 만났다.
뒤에 '지뢰'라는 글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떨기 코스모스의 조화라니...
이게 우리의 모습이구나...

아랫쪽은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건만 북쪽에는 고운 단풍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전을 일군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사람은 오가지 못하는 철조망 아래에 꽃들이 예쁘게 머리를 내밀었다.
흰금강초롱꽃, 복주머니란, 투구꽃, 패랭이꽃, 산오이풀, 갯메꽃이다.

포격으로 부서진 담벼락에 어지러운 낙서들이 보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절절한 한 마디가 가슴에 맺힌다.
정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까?
우리의 소원이 맞다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미움과 불신을 모두 극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그 날이 어여 왔으면...

녹슨 철모에 피어난 들꽃이 처량맞게 예쁘다.
묵념을 해야 할 것 같다.

비무장지대 지도다.
붉은선이 북방한계선, 파랑선이 남방한계선, 그 사이 자주색이 군사 분계선이다. 저 사이 폭이 4km구나.
이런 금따위 모두 사라질 그 날이 어서 왔으면...

그때까지, 울지 마 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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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10-2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군대시절 생각이 나네요.
저는 강원도 철책선에서 복무했어요.
먼 거리에서 고배율 망원경으로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무것도 없는 철책선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지요.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곳이었는데,
실제로 철책선 안으로 들어가면 온갖 지뢰들이 깔려있기 때문에,
그 경치를 구경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지요.

마노아 2010-10-28 23:18   좋아요 0 | URL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좋건만 실제로는 위험천만 무자비한 곳이라니, 참 서럽고 아파요.
감은빛님은 닉네임만 보면 자꾸 여자일 거라고 상상되는데, 군대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히 남자 분이란 인식이 드네요.^^

같은하늘 2010-11-0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으로는 정말 멋진 곳인데,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네요.

마노아 2010-11-02 00:10   좋아요 0 | URL
이산가족상봉 끝나면서 오열하는 분들 보면, 참 힘들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