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2월
구판절판


지중해를 향해 16도 기울어진 원반형 지붕은 '거대한 해시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건물 일부가 물속에 잠기도록 하여 바다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지중해의 영원한 일출'을 상징하는 것. 피라미드와 동일 재질로 짓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아스완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쌓은 원형 성벽. 성벽을 빙 둘러 새겨진 세계 120여 종의 다양한 문자, 커다란 구에 줄이 새겨진 천체관측관. 유니크한 외관을 자랑한다.

이 책의 첫 부분을 장식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편을 읽으면서 무척 많이 웃었다. 좋은 책을 소장하기 위해서 거의 몰염치로 일관했던 그네들의 작태가 밉기보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모았던 장서들이 자주 소실된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대의 영광은 오늘날에도 저렇게 멋지게 재탄생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화강암 벽면에 새겨진 문자는 고대 상형문자에서부터 설형문자, 갑골문자, 음악 기보법, 컴퓨터와 유전자 코드, 바코드까지 모든 문자가 망라. 우리 한글 '세', '월', '강', '름', '의', '관'의 여섯 글자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월이 좀 이상하게 보인다. 이건 흡사 어린 아이에게 한자를 써보라고 하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름'은 어떤 까닭으로 저기에 새겨진 간택 글자가 되었을까? 늠름하다... 뭐 이럴 때의 '름'일런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화강암으로 만든 외벽에 세계 120여 개의 문자를 새겨놓았다. 자세히 보면, 우리 한글도 보인다. 물 속에 있는 풀은 고대 종이의 원료로 사용되었던 파피루스다. 지하 16미터, 지상37미터, 11층인 이 구조물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내부가 완전히 탁 트여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다. 소통과 조화를 상징하는 것.

내가 찍어온 고대의 신전 벽면이 떠오른다. 룩소르 마지막 날에 다녀왔던 어느 신전의 상형문자가 무척 깊게 새겨져 있어서 인상깊었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호기심을 끄는 대목이 무척 많았는데 경쟁 도서관에 질투를 느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피루스 수입을 방해해서 페르가몬 도서관이 양피지의 대량 생산화에 도리어 성공하는 대목도 그 중 하나였다. 뭐랄까.. 이건 좀 쌤통 기분...

'한번 이 도서관에 들어온 귀중서는 절대 나갈 수 없다'는 대영도서관의 의지가 엿보이는 조형물. 책에 족쇄를 채워놓았다. 상징은 훌륭하지만 행보는 괘씸하다. 그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도서가 남의 것이라 해도, 그것이 약탈의 결과라 할지라도 절대 내줄 수 없다!라는 선포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대영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외규장각 의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것 중 한 권이 영국으로 흘러들어간 것. 영국의 한 상인이 프랑스인으로부터 10파운드(약 2만 원)에 사서 기증한 것이라 한다. 매매 당시 책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흥!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를 앞서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 프랑스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하편으로, 상편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TGV고속철도 기술 도입 건으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해프닝도 소개해 주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얘기를 나눈 당사자가 당시 도서를 내줄 수 없다고 울며불며 시위를 했던 도서관 여직원이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구텐베르크 성경. 1454년에 독일 마인츠에서 인쇄된 라틴어 성경으로, 1쪽에 42행씩 인쇄하여 '42행 성경'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당시 성직자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성경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는지 여부가 세계적 도서관을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정도로 희귀한 고서적이다.

500년도 더 된 인쇄물인데, 지금 눈에도 아름다워 보인다. 그때도 성경책은 깨알같은 글씨로 눈을 피곤하게 했군...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육필 원고. 시간에 쫓겨 집필하다 보니 난삽하기 그지없다. 다빈치 보는 것 같다. ㅎㅎㅎ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교해준 부분도 좋았다. 두 사람의 행적은 무척 드라마틱했는데, 좀 더 금욕적이고 좀 더 자애로워 보였던 톨스토이 쪽이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데 러시아 국민들은 도트소예프스키를 더 인정해 주는가 보다. 전 세계적으로 그런 편일까?

세계에서 가장 높게 지어진 대학인 모스크바대학의 본관 전경. 아름다운 건축물은 흔하지만, 이토록 압도적인 건축물은 쉽게 만날 수 없다. 건물 7개가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같고 모두가 크렘린을 향하고 있다. 혹자는 "스탈린의 모든 것이 유죄라 하더라도 모스크바대 건물만은 무죄"라고 말할 정도로 인상적인 마천루. 건물 높이는 183미터. 첨탑 57미터까지 포함하면 240미터.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별의 크기는 직경이 9미터에 무게 12톤.

사진이 흔들려서 웅장한 위압감을 감소시켰다. 압도적이다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자체가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람을 위축시키니까. 그런 면에서 정조의 규장각은 참 운치 있다. 장서 규모의 차이는 물론 비교가 안 되겠지만...

전 세계에서 출판된 수많은 고르바초프 관련 출판물들. 한국어판 서적도 눈에 띈다. 그러나 러시아에 고르바초프는 없다. 저자는 열 곳의 도서관을 탐방하면서 과거 황제들과 레닌, 스탈린, 옐친, 푸틴, 메드베데프의 족적은 수없이 접했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국민과 권력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것. 오직 자신이 만든 재단 안에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고르바초프재단은 '고르바초프의 섬'이나 다름없었다. 잭 캔필드 글이었던가? 어떤 소년이 전 세계의 유명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답장(?)을 수집한 게 있는데 고르바초프의 서명을 자신에게 되팔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서방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고국에서는 외면받는 팔자라니... 이것도 참 슬픈 일이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 뉴욕공공도서관에 비치된 기부함에 달러 지폐가 가득하다. 우린 보통 동전이 가득한데...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 잡은 뉴욕공공도서관의 전경. 영화 투모로우에서 살인적 강추위가 뉴욕을 엄습할 때 시민들이 피해 들어간 곳. 그렇다면 책을 불태운 바로 그곳?? 게다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결혼식 촬영 장소. 실제로 결혼식장으로 고가에 임대되고 있다. 도서관에서의 결혼식이라니, 이렇게 낭만적일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고가 임대는 낭만과 좀 거리가 멀구나!

한국점자도서관. 밀레의 이삭 줍기를 점자화한 페이지. 손으로 읽는 그림이다. 당연히 짐작 가능한 부분인데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공간 부족도 큰 문제. 새 책을 제작하려면 기존 자료를 버려야 할 지경이란다. 점자 인쇄기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단다. 작업실과 출판사는 인근 건물에 흩어져 있는 지경. 미처 눈돌리지 못하고 신경 써보지 못한 부분들이다. 점자 책은 물론이요, 오디오 북도 더 많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 어느 님이 떠오른다.

한라도서관. 앙증맞은 어린이자료실의 원통형 신발장이 싱그럽다.
제주도의 인구 대비 도서관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밖에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무척 많았는데 모두 다 가볼 수 없는 대중들에게 눈으로나마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가볼 수 있는 수지 느티나무 도서관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수지 사는 친구가 있는데 친구 집에서 가까운지 알아봐야겠다. 그 집에 다녀올 때 함 들러보고 싶어서...

그 나라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에 가보고, 미래를 알려면 도서관을 가보라고 했던가. 각 나라의 도서관을 소개받다 보니, 그 나라의 책에 대한 가치관이 들여다 보인다. 도서관으로 인한 자부심 또한 모두가 뒤지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측도 우리나라의 다 쓰러져가는 초가에도 책만큼은 있어서 놀랐다지 않은가. 우리도 예부터 공부 욕심은 또 뒤지지 않았지...

제법 많은 나라들을 돌며 좋은 도서관을 소개해 주었다. 심지어 가깝지만 가장 멀기도 한 북한의 도서관까지. 저자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도서관장도 아니었는데 훗날 이렇게 소개할 일이 생기다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 같다. 책쟁이로 살아야 하는 운명, 저자에게 딱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도 더불어 즐거움을 얻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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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만 보고도 황홀해지는 도서관들
    from 그대가, 그대를 2014-03-23 17:49 
    도서관에 구경을 갔다. 크게 눈에 띄는 게 없어서 돌아나올 즈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 눈에서 광채가 났다. 가슴에 끌어안고 나와서 대출을 신청했더니 대출불가 도서란다. 헐... 안타까움을 남기고 돌아나오려는데 사서 선생님이 특별히 일주일 빌려주겠다고 하셨다. 대출 불가 도서라서 바코드도 안 찍고 갖고 나왔다. 음하하핫! 절대로 한동네 사는 사람이라는 특혜를 받은 게 아니다!1995년에 배스베인스는 1914년 발견된 새뮤얼 피프스의 장서
 
 
전호인 2010-10-1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네요.
입이 쩍 벌어져요. ㅋㅋ

마노아 2010-10-14 23:11   좋아요 0 | URL
대리만족이 큰 책이었어요.^^

2010-10-15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5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10-1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완전. 당장 가져야겠어요!! 사진도 넘 잘 보고 가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참 궁금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원고도 넘 신기해요. 이 책 아무리 봐도 넘 좋네요!

마노아 2010-10-16 10:02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었는데 잘 고른 것 같아요. 조금씩 읽어서 오래 걸리긴 했는데 무척 재밌었어요.^^

순오기 2010-10-1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 프랑스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든 세계에서 도적질해온 온갖 것들로 꾸며 놓고...ㅜㅜ
테제베 건은 우리 정부가 보기 좋게 당한 해프닝~

오~ 마지막 신발장 너무 귀엽네요.^^

마노아 2010-10-16 13:0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규모 면에서는 세계의 도서관에 견주기 그렇지만, 저런 아기자기한 멋도 꽤 시선을 끌었어요. 고속철도건이랑 외규장각 도서는, 어휴... 정말 어처구니 없어요.ㅜ.ㅜ

2010-10-18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0-10-16 13:56   좋아요 0 | URL
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고칠게요.^^ㅎㅎ

꿈꾸는섬 2010-10-17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진 책이네요.

마노아 2010-11-11 10:29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을 한참 뒤네아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