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자신이 남아 어슬렁거리는 것을 새로 온 젊은 랍비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혹은 더 이상 설교대에 오를 수가 없어 자존심이 상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렙은 자신이 늘 서던 설교대에 오르는 젊은 랍비들에게 부러움이나 시기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그는 성직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존심’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은퇴 후 그는 원래 쓰던 널찍한 방을 자진해서 비우고 작은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어느 안식일 아침부턴가는 강단 옆의 상석인 커다란 의자에서 내려와 신도석 뒷줄의 아내 옆에 앉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깜짝 놀랐다. 존 애덤스가 대통령 퇴임 후 시골로 돌아갔듯이, 렙은 신도들 사이로 조용히 돌아간 것이다. -87쪽
"‘왜 내가 부럽습니까?’ ‘랍비님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 신을 욕할 수 있으니까요. 신을 향해 울부짖고, 신을 원망할 수 있으니까요. 왜 내게 이런 일을 겪게 하느냐고 소리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신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의사였어요! 그런 데도 우리 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요!’ 그는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어. ‘전 누구를 원망해야 하죠? 전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요. 그러니 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렙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슬퍼지는 듯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건 끔찍한 자기 비난이야." 그보다는 기도하고 응답받지 못하는 게 더 낫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들어 줄 존재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내 목소리를 듣고 대답해 주지 않는다고 믿는 게 훨씬 더 위안이 되지." -119쪽
1975년, 렙의 설교 중에서 한 사내가 농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농장에 찾아가 새로운 주인에게 추천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잡니다." 농장 주인은 일손 구하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사내를 그 자리에서 고용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밤, 갑자기 사나운 폭풍우가 마을에 몰아쳤다. 거센 비바람 소리에 깜짝 놀란 주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사내를 불렀지만, 사내는 깊이 잠들어 있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주인은 급히 외양간으로 달려갔다. 놀랍게도 가축들은 넉넉한 여물 옆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었다. 그는 밀밭으로 뛰어나갔다. 밀 짚단들은 단단히 묶인 채 안전하게 방추 선에 덮여 있었다. 이번에는 곡물 창고로 달려갔다. 문들에는 빗장이 걸려 있었고, 곡물들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주인은 "이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잡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132쪽
우리가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 항상 신경 쓰면서 살아가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늘 관심과 애정을 쏟고 우리의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하면, 미처 행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의 말에는 항상 진실함이 담길 것이고, 사랑하는 이를 껴안는 우리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저렇게 했어야만 했는데……."하는 탄식과 후회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안심하고 잠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온전하고 후회 없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3쪽
나도 우울증이 중요하고 실제적인 병이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반드시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울증이란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 우리가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불만’이라는 감정인 경우가 많다. 기준을 너무 높게 설정해 놓거나, 마땅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으면서 훌륭한 결과만을 얻으려고 하는 것에서 비롯된 감정 말이다. 나는 몸무게 때문에, 대머리 때문에,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설령 그들 자신은 그것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지만 말이다. 그들에게 우울함이란 신체적 질환과 같은 것이다. 약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약을 먹는다. -139쪽
그러나 약은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거울 속에 비친 외모에서 자존감을 찾으려고 하는 것, 끊임없이 일에 파묻혀 살면서도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 말이다. 나는 그것을 잘 안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잠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면서까지 일에 매달렸다. 명성과 성공을 쌓았고 부를 얻었다. 사람들로부터 박수와 칭찬도 받았다. 그런데 그런 삶이 계속되자 오히려 공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찢어진 타이어에 공기를 계속 불어넣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오랜 스승인 모리 교수님을 만나면서, 질주하던 내 삶에 ‘끼익’ 하고 제동이 걸렸다. 교수님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분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목격하면서 나는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140쪽
렙은 그 모든 치료와 약물에도 불구하고 신경 안정제, 우울증 치료제 같은 약은 한 번도 먹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웃었다. 결코 화내지도 않았다. 또한 ‘나는 왜 태어났을까?’ 라는 의문을 품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와 있는지 잘 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서,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이 세상에 감사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아침 기도는 항상 이렇게 시작했다. "주여, 오늘도 제 영혼을 다시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그날 하루는 특별한 보너스가 된다. -141쪽
그럼 이제 행복의 비결이 뭔지, 수수께끼가 풀린 건가요? "그렇다고 생각하네." 말씀해 주시겠어요? "준비됐나?" 준비됐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것." 그게 다인가요? "감사할 줄 아는 것." 그게 다인가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들에 대해서." 그게 다인가요? 렙이 내 눈을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게 전부야." (이 대화를 나누기 전 렙은 자신이 폐암에 걸렸단 사실을 알았다.) -144쪽
(렙의 설교 중에서) 여러분, 사람은 왜 죽는가, 또 어떤 이는 왜 그토록 어린 나이에 죽는가 하는 물음이 때때로 우리에게 떠오릅니다. 그럴 때 저는 성서의 지혜로운 말씀에 의지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비춰볼 때 그다지 오래 산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훈을 주었으며, 시편과 같은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우리가 장례식 때 낭독하곤 하는 시편 23장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제 딸 리나가 아예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는 리나와 4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25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