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름만으로 기대를 갖게 하는 배우가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줄리엣도 울고 갈 꽃미모로 고딩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는, 이제 꽃장년이 되어서 진지한 연기로 관객을 긴장시킨다. 게다가 다크 나이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라니, 기대를 안 하는 게 더 힘들었다.  

드림머신을 통해서 남의 꿈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 그의 생각을 훔쳐오는 일이 가능해진 미래 사회. 코브(디카프리오)는 생각을 지키기도 하고 생각을 빼내오기도 하는 특수기술자로 나온다. 그러나 아내의 죽음에 연루되어 살인자의 오명을 쓴 그는 사랑하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외국을 떠돌아다니는 국제수배범. 그런 그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자 기회가 찾아온다. 남의 생각을 빼내올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어떤 생각을 상대방에게 심을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인셉션 계획. 그에게 인셉션을 요구하고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해 온 것은 일본인 사이토. 

 

제법 근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이토(와타나베 켄)를 어디서 보았나 했더니 게이샤의 추억에서 회장님 역할을 맡았던 배우였다. 이번 작품에서 제법 묵직한 분위기 가운데 가끔 유머를 날려주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물론 감독님 각본 덕이지만.^^ 

이제까지 성공해본 적이 없고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했다는 인셉션. 그러나 코브는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그의 의식과 무의식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죄책감의 근원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최강의 드림팀을 구축해서 당장 계획을 시도한다. 꿈의, 꿈의, 꿈 속으로 들어가면서... 

 

미래사회이기에, 게다가 꿈 속 세상이기에 상상하는 무엇이든 화면으로 다 연출해낼 수가 있었다. 꿈을 디자인해 낸 여학생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 그리고 현실 세계의 움직임이 꿈속으로 반영되어서 무중력 상태로 싸우게 되는 저런 장면들까지, 스펙터클은 이런 것이다!라고 선포하듯 보여지는 화면에 거침없이 끌려들어갔다. 다크 나이트 때도 람보르기니를 직접 부숴가며 촬영했던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CG 대신 직접 촬영하는 것을 선호했다고 하던데, 저런 장면들을 어찌 찍었을지 놀랍고 신기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표적의 인물이 이것이 꿈인지 알아차릴까 걱정이 되고, 무의식 속에서 발현되는 방어 때문에 공격을 당하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지 궁금하고, 코브는 과연 아내와 얽힌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정리할지 연민과 염려를 담아서 지켜보아야 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파악하게 해주었던 상징, 토템. 저 작은 추가 넘어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면 꿈 속이고, 넘어지면 현실임을 믿게 된다. 감촉과 무게로 본인만 알 수 있는 저 작은 물건이 영화의 엔딩에서 보여주었던 극도의 긴장감과 기대감은 우려를 환호로 바꿔주기에 충분했다. 감독은 영리했다. 열린 결말을 지향하되 아쉽지 않게, 안타깝지 않게, 그리고 실망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떠오르는 영화의 제목, 인셉션! 

 

매트릭스가 하나의 전설이 되었듯이, 반지의 제왕이 그랬고, 본 시리즈가 그랬듯이, 하나의 장르에서 교본이 될만한 멋진 작품이 나오게 되면, 그와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은 모두 그 밑으로 한줄 서기가 되면서 늘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처럼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꿈이 오히려 더 현실같고, 현실이 더 꿈같은 미래 사회를 보여주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좀 더 애절하게, 좀 더 절실하게, 그리고 긴박하게.  

꿈 속에서라도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기억을 담는다는 것. 아름다운 소망일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와 같이 누군가 내 꿈속에 들어와 인위적으로 어떤 생각을 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미래의 혁신 기술은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그런 기술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는 동안엔 그저 이렇게 영화로 대리체험하는 수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로도 감탄과 충격은 충분하니까.  

감독의 다음 작품은 배트맨 관련 영화인 듯한데 역시 기대하게 된다. 다크 나이트를 넘어서는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일반 상영으로 보았는데 좀 더 좋은 상영관에서 한 번쯤 더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럴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내용을 알고서 다시 보아도 만족할 것 같은 영화였다. 출연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는 뿌듯한 기록으로 남을 테고, 감독의 이름은 다시 한 번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을 듯하다. 이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식혀줄 근사한 영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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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7-2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셉션! 볼때마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개봉했군요. 아,꼭 보고 싶습니다.

마노아 2010-07-22 10:05   좋아요 0 | URL
포스터 볼 때마다 빨리 개봉하기를 바랐어요. 드디어 개봉박두예요.^^

후애(厚愛) 2010-07-2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물론 DVD 나올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요.

마노아 2010-07-22 18:26   좋아요 0 | URL
인기를 많이 끌수록 DVD가 늦게 나오더라구요. 정말 한참을 기다려야겠어요.
그렇게 후애님의 간책을 기다리는 영화들이 많지요.^^

다락방 2010-07-2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마노아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이 영화가 그렇게 땡기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어쩐지 복잡하고 어려운 영화일 것 같은거에요. 그런데 마노아님 리뷰 읽어보니 흐음,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나요? 친구가 이거 보러 가자고 했는데 저는 기다렸다가 솔트 보자고 했거든요. 이거 아무래도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제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일까요?

마노아 2010-07-22 18:28   좋아요 0 | URL
SF는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아요. 아주 수작이거나, 아주 졸작이거나. 다행히 이 작품은 수작인 듯해요. 저는 아이맥스 가서 한 번 더 볼까 해요. 좀 더 좋은 데서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싶어요.
이 작품은 굉장히 복잡한데 생각보다 안 복잡하게 끌어나갔어요.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거기서 깨어나기 위해선 '킥'이 필요하다는 것. 요 두 개만 인지하고 있음 충분히 이해할 거예요. 다락방님도 보고 오셔요.^^

순오기 2010-07-2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걸 볼까 이끼를 볼까, 저울질 중인데...결국 두 개 다 보겠지만요.ㅋㅋ

마노아 2010-07-22 21:25   좋아요 0 | URL
헤헷, 스타일이 많이 다르니까 둘 다 보세요~ 이끼는 '원작'을 더 추천하고 싶어요. 영화보다는요.^^

Kitty 2010-07-2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이거 보자고 하던데 인셉션이 뭥미? 했어요 ㅋㅋ
이런 영화군요 함 봐야겠네용~

마노아 2010-07-23 06:49   좋아요 0 | URL
키티님은 이런 외화를 보면 대사가 잘 들려서 좀 더 풍성한 감상이 가능할 거예요. 아, 부러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