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제 1133 호/2010-06-28]




태연, 밖에서 들어오자마자 남산만한 배를 끌어안고 헥헥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널브러진다.

“아니, 태연아. 아프리카 난민도 아니고 배가 대체 왜 그런 거냐?”

“헥헥, 아빠의 딸이 우리 반 빵 먹기 대회에서 10분에 크림빵 42개를 먹어치워서 ‘식신대왕’ 자리에 등극했어요. 정말 자랑스러우시죠? 헥헥”

“허걱, 세상 모든 대회 중에 가장 미련하다는 바로 그 먹기 대회를 한 게냐? 그것도 우승을? 그렇게 채소, 과일은 입에도 안대고 탄수화물만 먹어대면 당뇨에, 비만에, 탄수화물 중독까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나 있니?”

“아빠는 귀엽고 깜찍한 딸에게 어쩜 그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세요.”

“농담이 아냐. 탄수화물 특히 설탕이나 흰 밀가루처럼 당분만 남기고 다른 영양소들은 쏙 벗겨낸 ‘정제탄수화물’로 만든 음식은 혈당을 빠르게 올려 당뇨병이나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단다. 또 이렇게 급격히 오른 혈당은 동시에 매우 빨리 떨어지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을 분비하지. 코티솔 때문에 스트레스가 커지면 인체는 혈당을 다시 올리기 위해 더 많은 탄수화물을 찾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탄수화물 중독’이라고 부른단다.

“어머, 그럼 제가 배가 고프면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난폭해지며 미친 듯이 빵이나 사탕을 찾는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군요! 그럼 이제 전 어떡해요? 제가 부드럽고 훌륭한 저의 인격을 유지하려면 탄수화물을 계속 먹어서 코티솔 분비를 막아야한단 말이잖아요.”

“글쎄, 방법이 있긴 하지. 그것도 밥을 먹어서 해결하는 방법.”

태연, 남산만한 배를 부여안고 아빠에게 바짝 다가간다. 눈에는 환희의 빛이 가득하다.

“오, 플리즈. 그 환상적인 방법을 빨리 알려주세요.”

“밥이라고 하면 흔히 쌀밥만 생각하잖니. 그런데 최근 쌀에 섞어먹는 잡곡이 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아주 탁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단다. 수수와 기장은 혈당상승을 유발하는 α-아밀라아제와 α-글루코시다제의 활성을 50% 이상 억제하기 때문에 당뇨치료에도 좋고, 급격하게 혈당이 오르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 비만도 예방할 수 있는데다, 앞서 말한 탄수화물 중독도 없앨 수 있단다.

“와우, 대단해요! 못생긴 곡식알갱이들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단 말이에요? 저 오늘부터 수수하고 기장밥만 먹을래요!”

“뿐만 아니야. 수수와 기장은 암세포 사멸율도 각각 77.7%, 64.1%에 달할 정도로 항암 효과가 뛰어난데다, 세균성 염증 유발물질인 지질다당류(LPS)에 의한 염증 효과 실험에서도 수수 88.5%, 기장 97.3%의 대단히 높은 염증 억제율을 보였단다. 또 수수와 식용피는 대표적인 황산화제로 알려진 ‘토코페롤’ 보다 황산화 효과가 1.6배 이상 높아서 피부미용, 노화방지, 질병예방 등에도 탁월한 효과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지.

“와우, 대단해요. 밥만 잘 선택해 먹어도 효과 좋다는 약을 매번 복용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난 질병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더구나 요즘엔 농업과 생명기술(BT),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등의 첨단기술이 결합한 기능성쌀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라이신이 많이 함유된 일명 키 크는 쌀인 ‘영안벼’, 아기 이유식용 고영양 쌀 ‘하이아미’, 다이어트쌀 ‘고아미 2호’, 노화억제쌀 ‘흑설’, 혈압조절용 발아현미쌀 ‘큰 눈’, 베타카로틴이 대거 함유된 ‘황금쌀’, 혈압강하 효과가 있는 붉은곰팡이로 만든 ‘홍버섯쌀’ 등 종류도 매우 많단다.

“아유, 종류가 많다고 걱정하실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다 먹으면 되잖아요. 온갖 종류의 기능성 쌀에다가 수수, 기장 같은 잡곡까지 몽땅 섞어서 한 끼에 다섯 그릇씩 먹어치우면 건강해서 좋고, 국가 경제에 도움 돼서 좋고, 더 이상 뭘 바랄게 있겠어요!!”

아빠, 얼굴이 확 살아난다. 태연의 말에 절대 동감한다는 표정이다.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고민할 게 뭐 있어. 싹 다 먹으면 되는걸. 고기반찬까지 있으면 더 좋구. 엄마한테도 그렇게 설명하면 통할거야. 그치?”

태연과 아빠, 둘이 손뼉을 치며 좋아서 난리다.

“엄마! 오늘부터 아빠랑 나랑은 한 끼에 다섯 그릇씩 먹을 거여요. 그렇게 준비해주세요!”

그때 도끼눈을 하고 등장한 엄마, 부엌문 앞에 ‘식신 출입금지. 위반시 열 끼 굶김’이라고 쓴 큼지막한 표지판을 붙인다.

“오마나... 엄마 눈 보셨어요? 소름이 쫙 끼쳐요. 아빠는 어쩌다가 저렇게 무서운 여자랑 결혼을 한 거죠?”

“그... 글쎄 말이다....”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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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6-2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탄수화물 중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지내는 수가 많기 때문에 더 주의해햐 할 것 같아요. 설명이 아주 잘 되어있네요.
기능성 쌀 중 일부는 유전자조작에 의한 산물이라는 것만 덧붙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위의 '황금쌀' 같은 것은 미국의 유명한 GMO회사 몬산토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요.

마노아 2010-06-29 08:04   좋아요 0 | URL
밥 먹고 나서 단 게 막 땡기면 탄수화물 중독인가 싶어 막 걱정이 되곤 해요.
중요한 지적 해주셨어요. 유전자조작이라니, 무서워요.. 주의주의!!

2010-06-29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9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30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30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Journey 2010-07-01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수화물중독.... 혹시 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어요. --;;;

마노아 2010-07-02 06:27   좋아요 0 | URL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아야 살이 빠진다는 얘기를 듣고 좌절했어요.
어흑, 밥심은 어쩌나요.(>_<)

세실 2010-07-0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수수와 기장을 꼭 섞어서 밥을 해야 겠어요.

마노아 2010-07-02 06:27   좋아요 0 | URL
수수와 기장을 많이많이 사랑하기로 했어요.^^ㅎㅎ

같은하늘 2010-07-0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 항상 온갖 잡곡을 섞는 사람인지라~~
수수와 기장은 좀 비싸서 많이 못 넣었는데 앞으로는 듬뿍~~ㅎㅎ

마노아 2010-07-02 21:46   좋아요 0 | URL
잡곡에 익숙해지니까 흰 밥은 너무 심심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