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박현태 그림 / 글숲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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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동화속 여주인공일수록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 중 단연 최고는 백설공주였다. 도대체가 눈처럼 흰 피부에 흑단같은 머리카락에 피처럼 붉은 입술의 조화가 주는 아름다움 말고는 건질 미덕이 없어서 말이다. 나쁜 왕비의 속임수에 세 차례나 속아 넘어간다면 이 여자는 매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멍청하기까지 하다고 속 타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기존 감정이 상당히 머쓱해진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그 백설공주가 그 백설공주가 아니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간단히 말하면 잘못 번역되어 읽힌 선입견 때문이다. 일단 그녀는 '공주'라고 불리지 않았고,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동화학>이라는 두툼한 책을 지은 루돌프 가이게르. 그는 자기 책 머리말에 "메르헨, 즉 동화는 본래 어른을 위한 이야기였다. 그렇긴 하나, 동화의 위대함은 어린이에게도 그것을 들려줄 수 있다는 데에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경북대 독문과 교수인 김정철 님도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 "동화가 원래는 성인들을 위해, 성인들이 구연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쓰셨습니다. – 13쪽  

우리 말 '동화'로 옮긴 독일어 낱말은 메르헨인데, 그 낱말은 단지 '작은 이야기'라는 뜻일 뿐 거기에 '어린이'를 뜻하는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다. – 14쪽

 
   

한자로 아이 동자를 쓰기에 또 그렇게 알아온 대로 우리는 모두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기본적으로 아이들 용 책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메르헨'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몹시 충격적이다. 단지 '작은 이야기'를 우린 '아동용'으로 오래오래 판단해 오고 있었다니...... 

그림 형제가 언어학자였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그들이 고르고 골라서 썼을 독일어 원어의 의미와 그 상징의 중요성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무심히 읽어 나갔지만, 이 '새하얀 눈 아이'의 탄생과 성장과 고난과 극복의 과정은 무수한 상징과 기호로 덮여 있다. 거기에는 서양의 역사와 정체성, 독일의 정서까지 모두 담겨 있다. 

저자는 일단 '이름'부터 제대로 설명했다. 왜 '백설 공주'라고 번역하는 게 옳지 않은지, 왜 '새하얀 눈 아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는지 말이다. 또 왕비라는 칭호 대신 '여왕'이라고 쓴 이유를 설명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새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과 검은 머리카락이 아닌, '새하얗고 붉고 또 검은' 아이를 원했고, 그런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의 차이를 쉽게 대조해 주었다. 역시 무심히 지나가곤 했지만 그 간극은 꽤 컸다. 독자는 번역된 그대로 읽어나갔고, '동화'라는 선입견에 그저 익숙한 이야기 하나로만 치부했을 뿐인데,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저자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의 실마리를 푸는 순간 충격과 감동을 받고 말았다. 이건 무슨 서프라이즈인가! 

이 책의 구성은 이렇다. 맨 처음에는 한글 번역본이, 그 뒤를 이어 독일어와 영어 원문이 나란히 실려 있어서 비교할 수 있게 해주었고(그대가 읽을 수 있다면!) 이 짧고도 긴 이야기가 끝나면 친절한 해석과 해독을 풀어주었다. 그러니까 일곱 살 그 아이가 왜 일곱 개의 산을 넘어 일곱 난쟁이가 사는 오두막에 다다랐는지, 왕비가 분한 세 가지 직업군과, 세 번의 죽을 고비, 새하얀 눈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세 날짐승까지, 3이라는 숫자는 왜 그리 자주 반복되는지를 말이다.  

   
 

 세 가지가 무더기 짓는 것을 한 번 세어볼까요? 눈처럼 새하얀, 피처럼 붉은, 창틀처럼 검은;피 세 방울; 뾰족뾰족한 돌, 가시투성이, 사나운 짐승; 띠, 빗, 사과; 세 날에 걸친 난쟁이들의 울음; 올빼미, 까마귀, 작은 비둘기까지 여러 번 나오지요? – 185쪽

 
   

우리한테는 하나의 종교로서 인식되는 기독교가 서양 문명의 뿌리로 얼마만큼 녹아 있는가를,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파악하게 되어 꽤 놀라고 말았다. 그것이 곧 삶이고 역사이고 생활이라니...... 

저자는 마치 논술 수업을 해나가듯 친절하게 질문과 대답을 번갈아 해가면서 독자들을 '본디'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간다. 가끔은 그 메시지가 우리에게 울리는 현실적 경종도 함께 짚어주면서. 

책의 맨 뒤에는 진짜 독일 동화 '순금 아이'를 실으면서 여러 질문들을 던져 놓았다. 해답은 없다. 독자가 생각하고 판단하여 찾을 수밖에 없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저자의 다음 책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를 읽으면서 좀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오역되어 잘못 이해되고 있는 대표적인 동화 '신데렐라' 편이라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제목은 다소 식상하지만, 내용이 주는 만족도가 몹시 크다. 오래오래 깊은 오해를 입어온 '새하얀 눈 아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이런 행운은 좀 더 널리 나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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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25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ettt ich ein Kind so weiss wie Schnee, so rot wie Blut, und so schwarz wie das Holz and dem Rahmen.'

눈처럼 새하얗고, 피처럼 붉고, 흑단 나무처럼 검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이 대목 정말 좋았지요.

마노아 2010-02-25 10:50   좋아요 0 | URL
저렇게 표현하니까 너무 문학적으로 들리는 겁니다. 멋졌어요. 독일어는 전혀 모르지만, 그냥 저 글자들도 아름다워보여요!

카스피 2010-02-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그림 동화는 현대 아이들이 읽어야 될 그런 류의 책은 아니라고 하더군요.위에서 말한대로 메르헨은 동화가 아니 그냥 작은 이야기지요.실제 각 지역의 이야기를 채집한 그림 형제의 책은 여러가지 인간의 부덕한 내용들과 잔혹한 내용들이 다수 있읍니다.그런 내용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순화되어 가긴 했지만 책 내용의 본질은 소름끼치는 내용들이지요.
책을 읽으면 어린 아이에 대한 잔혹한 처사들이 많은데 그림 형제가 활동하단 시기에 어린이는 현재의 어린이가 아닌 근냥 작은 어른들로 취급했다고 하더군요.그래서 당시 아이들도 어른들의 부도덕한 것들을 자연스레 배웠다고 합니다.

마노아 2010-02-25 10:51   좋아요 0 | URL
그치요? 잔혹동화라고 불러도 될만큼. 지금 우리 기준으로는 이래저래 놀라워서 꺼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안에 녹아 있는 배경과 상징을 읽어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역시 제대로된 번역이 일단 중요해요. ^^

L.SHIN 2010-02-2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TV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는 사실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 원문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월트 디즈니사도 그 명작들을 '어린이 동화'로 만드는데 지대한 몫을 했다고요.(웃음)

마노아 2010-02-25 14:56   좋아요 0 | URL
월트 지드니는 어린이용을 어른과 함께로 바꾸더니, 이제는 어른용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구요.
디즈니는 양다리지만 확실히 픽사는 어른용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