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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뒷 이야기다. 보스턴으로 떠나면서 메일 수신함을 닫아버렸던 레오의 계정으로 에미가 지속적으로 메일을 보낸다. 닿지 않는 메일의 흔적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메일을 띄우던 에미, 마침내 그 메시지가 레오에게 닿았다. 보스턴에서 돌아온 것이다.
초반 이야기는 조금 지리하게 이어졌다. 여전히 되풀이 되는 말장난이 때로 귀엽기도 했지만 때로 짜증도 나고, 도대체 다음 이야기의 진전은 어찌 되는 것인지 애를 태우게 했다.
그 사이 레오에게는 새 연인이 생겼다. 그녀의 이름은 파멜라. 오, 눈치 없는 독자라도 다 알아차리겠다. 이 여자, 가엾게 사랑을 마치겠구나... 눈앞에서 만질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상대이건만, 보이지 않는 이메일 저 너머의 연인이 더 강력해질 수도 있다니...
보면은, 에미는 좀 이기적으로 보였고, 막무가내형으로도 보였지만 자신에게 솔직했다. 그에 비해서 레오는 좀 더 예의가 바르고 이성적으로 대처했지만, 지나치게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또 솔직하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게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되지 못한다는 걸, 그는 좀 더 깨져보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 그게 인생인 거지만.
온라인 상에서 알게 된, 호감을 지녔던 이와 만남을 가졌던 적이 있다. 첫번째 만남은 좋았다. 우린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대여섯 시간의 대화 속에 지루함을 몰랐다. 두번째 만남에서 나의 환상이 깨졌다. 온라인 상에서의 그 이미지로만 남겨둘 것을... 하는 뒤늦은 후회. 덕분에 그 사람을 알게 됐던 모임까지 멀어지게 되었다. 모든 건 경우에 따라 다른 것이고, 그 사람과 나와의 인연의 문제지 그게 '온라인'과 '오프라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만나서 결혼해서 예쁜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잘 살고 있는 내 친구도 있으니까.
레오와 에미의 만남이 드디어 이뤄진다. 그것도 꽤 빈번하게. 만남 자체가 이들에게 어떤 극적인 매개체가 되어주진 못했다. 만나고 나서 더 가까워졌다든가, 더 멀어졌다든가 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서로를 떠날 마음이 없었다는 걸 자꾸 확인시켜준다. 그걸 인정하는 것도 엄청 돌아돌아갔지만....
앞 이야기에서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베른하르트'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에미가 자꾸만 레오에게 당신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요구하는 게 좋았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 입장인지, 내가 뭘 원하는지 말고 당신 자신이 어떠한지에 솔직해지라는 요구 말이다. 레오가 잘 해내지는 못했지만. 에미가 훨씬 지혜로웠다. 감정적이긴 했지만 그렇기에 제일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일곱번째 파도'라는 제목의 의미도 은은하게 좋았다. 여섯 번의 파도가 지나간 뒤 계산하지도 못하고 들이닥치는 일곱 번째 파도를 맞닥드릴 때의 우리를, 나 자신을 상상해 본다.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도망가지 않을 수 있을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까?
다른 리뷰들에서는 전편보다 못했다는 반응을 접했던 것 같은데, 나로서는 이번 이야기가 더 좋았다. 절반까지는 전편이 더 좋았는데 후반부가 이 책을 더 마음에 들게 했다. 그러니까 에미, 그녀가 참 마음에 든다. 레오가 여전히 멋있기도 하지만.
신선하고, 무엇보다도 로맨틱한 소설이었다. 그게 참 마음에 든다. 제목도, 일러스트도, 심지어 역자의 이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