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김대중 1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얼마 뒤 이 책이 나왔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책이 나온 것이 마케팅적 차원에서 전혀 무관하진 않겠지만, 작가 백무현 씨는 이미 3년 전부터 이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니 때맞춰 나오기 위해서 급하게 준비한 작품일 거란 우려는 버려도 좋을 듯하다.  

전5권으로 구성된 책 중 1권에서는 지난 2000년, 역사적인 방북의 한 장면을 실사로 먼저 보여주고 난 뒤 아득한 과거로 돌아간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의 굴곡진 역사의 현장 말이다. 오랜 수탈과 억압과 투쟁이 서린 하의도. 마치 그분의 삶이 섬의 운명을 닮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피눈물이 서려 있었다.  

목포항에서 서남쪽으로 57km 떨어진 하의도. 뱃길로 2시간 30분이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섬이지만 어업보다 농사가 발달한 순 농촌지역. 선조가 사랑하는 딸 정명 공주에게 하삼도를 주겠다는 망언(!)에서 비롯된 섬의 수난은 인조 대에 와서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난다. (그런데 31쪽에서 정명공주가 영창대군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오류가 있다. 영창대군이 동생이다!) 20결의 결세를 조정을 대신해 정명공주가 시집간 홍씨 가문의 4대손까지 받도록 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80여 년이 지난 뒤 하의도의 수확량이 무려 160결로 늘어났을 즈음 욕심 사나운 홍씨 가문 후손이 140결에 대한 세금을 걷어간 것이다. 하의도 백성들은 조정에 내고 홍씨 가문에 내고 이중 과세를 하게 된 것. 여기에 대한 투쟁이 무려 300년에 걸쳐 진행된다. 조선 왕조를 거쳐 일제 강점기, 그리고 미군정 지배 하에서까지 내리 수탈 당하고 저항하다가 끝내 1950년에 가서야 제 권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더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은 '조선공주실록'을 추천한다.)

김대중이 1924년 생인지라, 섬의 수난의 역사에서 비켜가지 않는다. 태어났을 때의 집안은 짐작했던 것과 달리 보통 수준의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보다 6년 먼저 박정희가 태어났고, 3년 늦은 1927년에는 김영삼이 태어난다. (뒤로 가면 후배 권노갑도 나오는데 현대사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꽤 신선했다.) 아이 김대중은 똑똑했고 학구열도 높았다. 겁이 많기는 했지만 해야할 일을 피하지 않는 굳센 성정도 갖추고 있었다. 남다른 아이의 교육을 생각해서 어머니의 주장으로 목포로 나와 상급 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스무 살 나이에 마음을 사로잡은 아가씨에게 열렬히 구애해서 결혼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해방 정국에서 여운형 선생의 건.준.위에서 활동하였으나 남과 북에 미군정과 소련 군정이 들어선 복잡한 정세 속에서 장인 어른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한민당에 입당한다. 좀 뜻밖이긴 했지만, 박정희가 한때 조선공산당에 몸담았던 전적을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도 든다. 차이가 있다면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평생 빨갱이 소리를 들으셨고, 지금도 그 '수괴'로 찍혀 친북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받고 있지만... (여기서도 오타가 있다. 173쪽에 백남운이 참여한 '민족주의민주선선'이라고 적었는데 '전선'이 맞겠다. 그리고 정식명칭이 앞뒤가 바뀐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편집부에서 확인을 해줬음 좋겠다.) 

그 무렵의 청년 김대중은 사업가였다. 김사장이라 불리던 그는 전쟁 와중에도 제법 사업을 크게 확장시키는 배포도 있었고, 여러 식구들을 책임져야 할 입장에 놓여 있었다. 그런 그를 정치판으로 뛰어들도록 피를 끓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이승만이었다. 온 나라가 전쟁 와중에 신음하고 있던 와중에 집권 연장 야욕에 불타서 국회의원들을 납치 협박하여 헌법을 뜯어고친 부산정치파동. 이것이 실업가 김대중을 민주주의 투사 김대중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준다.  

여기까지가 제1권의 내용이다. 일제 때 징집을 피하기 위해 애 쓰고,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반동자본가로 붙잡혀 사형당할 위기에서 빠져나왔던 그는, 이후로도 숱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일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의 고난의 역사는 뒤로 갈수록 더 높은 강도로 그를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화해와 용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그 자취를 미리 짐작해보니, 아직 뒷권을 읽지 못했음에도 벌써부터 숙연해진다.   

만화 박정희나 만화 전두환과는 달리 이 책은 우리를 감탄시키거나 감동시킬, 혹은 측은해할 내용들이 더 많이 나올 테지만, 살아온 행적이 전혀 다르니 저자의 정치적 입장이나 시각 탓을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1권의 내용만으로는 어떤 판단도 없이 객관적인 사실들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서문에서 잠시 안타까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그 정도 감회도 없을 수야 있겠는가.

   
  '빨갱이'라는 약발이 통하지 않자, 그들은 김대중을 '대통령 병에 걸린 환자'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들은 18년이나 대통령의 권좌에 있었던 박정희와 대통령에 눈이 멀어 광주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전두환에 대해서는 그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엔 김영삼도, 노태우도, 이회창도 들어오지 않았다. 유독 김대중에게만 '대통령 병 환자'라는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타당한 논리도, 합법적인 검증도 없었다. 그저 김대중이라는 인간에 대한 무서운 저주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7쪽)  
   

아직도 그의 이름을 저주에 차서 내뱉은 사람들이 많음을 안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도, 그를 혐오하는 사람도, 모두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뜻을 더 확고히 할지, 생각의 방향을 바꿀 지는 그때 가서 정했으면 한다. 오랜 시간을 잡지 않고 쉽게 말해주는 이런 책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텍스트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 책은 그림도 있지만! 

덧글) 5권의 작업이 다 끝나면, 그 다음 인물은 누가 될까? 이 작업을 계속할 마음이 있다면 '만화 노무현'도 만나봤음 좋겠다. 아마 많이 아프고 답답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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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29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 기말시험 끝나면 구입하려고요, 물론 땡스투는 마노아님께!^^

마노아 2009-11-29 19:34   좋아요 0 | URL
헤헷, 미리미리 배꼽인사예요~(^^)
책 한 권을 사도 온 식구가 다 읽으니 정말 경제적인 순오기님 가족이에요. 완전 부럽!!

희망찬샘 2009-12-01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전두환, 박정희는 집에서 보이던데(물론 읽지는 않았지만...) 읽으시는 분께 김대중도 사라고 해야겠어요. 저도 꼭 마노아님 땡스투 할게요.

마노아 2009-12-01 09:13   좋아요 0 | URL
아하핫, 알라디너들 때문에 제 적립금이 풍성해지네요. 고맙습니다.^^
만화 박정희가 제일 재밌었어요. 샘도 읽어보셔용^^

같은하늘 2009-12-02 01:09   좋아요 0 | URL
앗!!! 이런 책도 있군요. 어떤 얘기가 쓰여 있을까?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