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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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김훈이지만, 그의 문장은 밀어내면서 읽어야하기 때문에 힘에 부친다. 325쪽에 달하는 소설은 아주 짧지도 않지만 너무 길지도 않은 분량인데도 읽어내면서 숨이 찼다. 숨차게 읽었는데 누군가에게 줄거리를 전달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요약하기도 쉽지 않고, 때문에 전달하기 어려운, 지독히 정리하기 어려운 독서였다.  

작품 속에서는 두 개의 지명이 중심축을 이룬다. '창야'는 학생 운동권 출신인 장철수가 자라서 운동하다가 배신자란 낙인을 안고 도망친 곳이고, 장철수의 학교 후배이며 창야에서 미술 교사를 했던 노목희의 고향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창야를 떠났다. 본의 아니었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떠난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든 또 다른 중심 지명 '해망'에서 마주친다. 아니, 두 사람이 직접 마주치진 않았지만 소설 속에선 지속적으로 충돌한다. 문정수라는 사회부 기자를 통해서. 

검색을 해보니 창야란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경남 창녕 쯤에 해당하는 지명이라는 추정은 보았다. '해망'이란 지명은 나온다. 군산쪽인데 바다를 바라보는 곳이라서 이름이 해망이란다. 소설 속 해망이 그 해망인지는 모르겠지만 서해 바다 간척지를 떠올린다면 같은 곳일 수도 있겠다. 

창야로부터 뛰쳐나간 장철수는 해망으로 흘러들었고 베트남에서 결혼 이민 온 후에와 바다 속에서 고철을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 해망에서 살던 주민들은 매립지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떠날 준비를 했다. 어업 보상은 쉬이 이뤄지지 않았고, 크게 값이 오를 거란 기대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런 와중에 농사꾼 방천석의 17세 딸 방미호가 크레인에 깔려 죽었고, 소녀의 죽음은 환경운동가들과 더 많은 보상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이용당했고, 아비는 딸의 사고 보상금 1억 2천 만원으로 깔린 빚을 갚고 해망을 떠났다. 서울에서 소방위로 근무하던 박옥출은 백화점 화재 진압 중 귀금속을 훔쳐내어 해망으로 내려갔고, 키우던 개에 물려 죽은 어린 아들의 사고 소식을 해망 식당에서 일하다가 들은 어미 오금자는 결국 해망을 떠나지 못하고 눌러 앉는다. 그리고 이 모든 소식소식들을 찾아다니며 해망에 얽매이게 된 기자 문정수.  

그 모든 사건들과 사연들을 전달하는 김훈의 목소리는 문정수를 통해서 건조하게 기술된다. 작가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성실하게 기록하지만 거기에 감정을 싣지 않는다. 그 사이사이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느끼고 공감하고 답답해 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밀어내며 읽어가는 이 책은 힘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층짜리 백화점에서 불이났는데, 처음 화재 사실을 신고한 경비원은 죽었는데, 그 죽음은 신문 하단의 단신 기사만큼도 비중을 갖지 못하고, 백화점 주인은 헐어낸 자리에 15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는 걸 허가 받으면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고, 화재 현장에서 보석을 훔쳐낸 소방수와, 그 사실을 알아차린 기자는 모두 함께 사건을 덮는다. 뿐인가. 장기밀매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도 두 사람은 같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다르다면, 잔뜩 주눅 들어 있던 전직 소방수 박옥출이 이제 문정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상' 하겠다며, 대놓고 침묵을 강요한다는 것. 

   
 

 야, 장기매매 같은 건 기사 쓰지 마. 내가 다 갚을게. 넌 쓴 기사보다 안 쓴 기사가 더 좋다. 그게 더 진실돼. 안 그래?    (314쪽)

 
   

쓰지 않은 기사가 더 좋고, 더 진실되다는 단언 앞에 문정수는 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 어쩌면 그 자신도 그렇게 동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여러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면서 온 몸으로 부대끼며 기사를 써내지만, 점점 더 스스로 무력해져 갔고, 그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마치 백수광부가 물에 휩쓸려 사라져 가듯이. 

작가는 연재를 시작하며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이다.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라 밝혔었다. 씁쓸하고 공허하고 외롭고, 무엇보다 슬프기까지 한 여옥의 노래는, 작품 속에서 명멸하는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허허로운 노래 끝에서 무슨 희망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다시는 오지 마. 여기는 올 데가 아냐. 여긴 다들 떠나는 데라구. (248쪽)

 
   

병어잡이 어선에 잘못 걸린 바다 사자를 다시 바다로 보내주면서 번영회장이 내뱉은 말이다. 그의 말은 바다 사자가 아닌 그곳 해망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전하는 경고처럼 들린다. 머물 곳이 못 되는, 있을 곳이 못 되는, 사람 살 곳이 아닌 이곳, 이곳들...  

작품 속에서 까메오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진 타이웨이 교수. 그는 대륙을 지나치며 역사와 문명, 시간과 공간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시간 너머로'라는 책을 썼다.  시간 너머로... 아득하고 추상적으로 울리는 제목이다. 강 건너도 보이지 않는데 시간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자니 역시나 숨이 차다.

김훈의 소설 속에서는 초인적이고 영웅적이고 장인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해 왔었다. 평범한 소시민을 그려낼 때도, 그 사유 속의 인간은 뭔가 우리와는 달라 보이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독히 우리와 똑닮은 사람들만 복사판으로 등장을 해버리니, 기운이 빠진다.  현실의 삶도 버거운데 소설 속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의 노래를 내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내가 더 여물어질 때를 기다리기보다, 그가 좀 더 쉬운 노래, 좀 더 밝은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애끓는 노래가 아닌 절로 어깨춤이 나올 수 있는 장단도, 한 번 쯤은 기대해 봄직 하지 않은가.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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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11-1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인본을 노리고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어요.ㅜㅜ
이 책 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래도 읽고 싶어요~ ^^

마노아 2009-11-19 09:57   좋아요 0 | URL
제 책도 사인본이 아니네요.^^
김훈 작가의 책을 거의 읽었는데 두번째로 힘들었어요. 이제 좀 거리를 두었다가 읽어야 애정이 살아날 것 같아요.^^

메르헨 2009-11-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어내며 읽는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렇죠...좀 힘들여 봐얗는 글이죠.
딱히...읽다보면 어려운건 아닌데 말이에요.

마노아 2009-11-19 15:24   좋아요 0 | URL
평소 다른 글보다 과하게 무거운 게 아닌데도 읽어내는데 무척 힘들었어요. 다리가 축축 처지더라구요...

순오기 2009-11-19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은 책 리뷰를 못 쓰고 있어서 줄줄이 밀렸어요.
남한산성을 하도 힘들게 읽어서 이 책은 별로 힘들진 않았어요.^^

마노아 2009-11-19 23:1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남한산성을 힘들게 읽으셨군요.
전 이거 읽고서 북한산 등반한 기분이었어요...;;;;

하늘바람 2009-11-20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다른 사이트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공개되었잖아요? 그땐 못보고 지금도 못보고~

마노아 2009-11-20 11:21   좋아요 0 | URL
김훈 작가의 스타일과 호흡을 생각했을 때 온라인 연재는 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데, 그럼에도 인기 폭발이었죠. 다들 어떻게 읽었을지 신기해요.^^;;;

꿈꾸는섬 2009-11-2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도 들을만 하지 않나요?

마노아 2009-11-21 07:01   좋아요 0 | URL
아, 그 노래는 정말 격하게 아름답죠. 이상은 넘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