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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의 아내 - The Time Traveler's W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2006년도였을 것이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읽게 된 것은. 내가 먼저 찾은 보물은 아니었다. 친한 언니가 이 책을 읽고 싶어했고, 내가 먼저 사서 읽은 다음 언니를 빌려주었을 것이다. 당시 내가 썼던 리뷰의 제목은 '사랑, 그 절절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다른 홈에서 아는 동생이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말하기를 알라딘에서 누가 절절한 리뷰를 썼는데, 그 마노아가 이 마노아 맞냐는 에피소드도 있었더랬다. 하하핫. 맞다. 내겐 참 절절한 이야기로 들렸다. '상상력'에 늘 높은 점수를 주곤 하는 나는, 이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원인이 되어준 '시간 여행 유전자'가 무척 신선했고, 그로 인해 파생된 온갖 비극과, 그 바람에 더 애잔해진 사랑 얘기가 오래오래 마음을 울렸다. 그때부터였다. 가장 좋아하는 책 No. 5 안에 이 책이 언제나 들어가게 된 것은.
그리고, 이 영화를 만났다. 만들어진지 좀 된 것으로 알건만, 개봉이 자꾸 미뤄져서 초조했다.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의 반응도 좋지 않았고, 이번에도 원작을 망친 영화 하나 추가가 된 것인가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을 버리진 않았다. 좀 시원찮아도 후하게 점수를 주리~ 하는 마음으로 본 건 사실이지만, 굳이 그런 마음 먹지 않아도 영화는 충분히 좋았다. 내게는 말이다.
원치 않는 시간과 공간으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되는 시간 여행자 헨리와 그런 그를 만나 숙명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클레어가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아직 어렸던 6살이었다. 이미 미래-현실 속 헨리에게는 현재-에서는 두 사람이 부부였지만,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클레어를 만난 헨리. 헨리는 시간 여행을 통해서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미래를 미리 알게 하는 것이 현재의 시간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는 철저히 함구하는 편이다. 딱 한 번 시간 여행자로서의 장점을 제대로 써먹은 적이 있지만!(솔직히 부럽...;;;)
어린 클레어는 참 사랑스러웠다. 언제 그가 올지 모르지만, 그를 위해서 아빠 옷을 몰래 갖다 놓고 풀밭에서 소꿉 장난하는 아이. 사랑하는 아내의 어린 시절 모습을 저렇게 만난다는 건, 헨리가 감수하는 무수한 위험과 고통에 비해서는 작게 제공되지만 꽤나 소중한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미래의 헨리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에 어린 클레어가 토라질 때의 그 귀여운 모습이라니!
솔직히 말하자면 어린 클레어가 자라면 레이첼 멕아덤즈보다는 미인이 될 것 같다. ^^
책에서는 수시로 바뀌는 시간을, 그때 헨리의 나이 등을 정보로 알려주지만 영화는 그런 과정은 생략한다. 이미 내용을 알고 보는 나라서 혹시 괜찮은 건가 싶었는데, 원작을 읽지 못한 나의 동행자도 헷갈리지 않고 영화를 소화해내는 걸 보면 진행이 엉성하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그 친구의 말로는 왜 시간 여행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시작하는 것과 마지막 엔딩이 좀 뜬금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나로서는 시간 여행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가정 하나로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는 인간형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영화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는 하겠다.
영화의 장점은 2권으로 구성된 긴 원작을 2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압축을 해놓은 건데, 그 시간 동안에도 소소한 웃음과 진지한 이야기를 잘 버무려 놓았다. 오히려 이런 부분은 원작에서 다소 지루하게 진행되던 부분을 과감히 잘라낸 덕일 지도.
공식 홈에서 퍼온 이 사진에는 헨리의 백발이 섞인 머리가 눈에 띄는데 영화를 볼 때는 저 희끗희끗한 머리가 전혀 티가 나지 않고 다만 자막으로 언제부터 신랑이 백발이었냐는 말로 대신한다. 만약 디지털로 보았더라면 잘 보였을까? 아님 대한극장 스크린이 좀 후진 것???
외국 영화나 실제 외국에서 결혼한 사람들의 결혼식 장면을 보면 그 축제 같고 파티 같은 분위기가 참 부러웠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
예식을 10분 내로 끝내버리고, 사진 찍을 때 보면 하객들은 식사하느라 올라와보지도 않고 후다닥 끝나버리는 우리네 예식 문화와는 참 비교가 된다. 신랑 신부가 피곤에 찌들어 손님 접대에만 바쁠 게 아니라, 생애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한 순간을 서로의 눈 속에 담아내며 배우자의 얼굴을 바라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외국에서 결혼을....;;;;;;;
6살에 처음 만났던 헨리와 사랑에 빠지고,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헨리를 다시 만나서 20살에 결혼한 클레어. 그녀의 거의 평생을 기다려왔던 남자를 만나 사랑으로 결혼했으니 충분히 행복해야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사라지는(심지어 결혼식에서 입장을 코앞에 두고 사라져버린 남편!) 남편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또 그토록 원했던 임신을 했지만, 태아도 시간 여행을 하는 터라 자꾸(무려 5차례) 유산이 되어버리고,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순탄할 수가 없다.
그래도 결국 극복해내고 단란한 가정을 일구어낸 그들 부부.
미래의 딸과 만났을 때, 어린 시절 클레어보다 미모가 좀 떨어져서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그보다 어린 아역 배우는 참 깜찍하니 이뻤다. 저렇게 사진을 찍어놓으니 정말 가족처럼 보인다. 에릭 바나는 트로이에서도, 그리고 뮌헨에서도 그랬지만 몹시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남편 상에 잘 어울리는 듯하다. (더불어 근육도 훌륭...)
시간 여행을 하는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유전학 전문의. 그에게 자신이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원작에서 내세운 카드는 꽤 섬뜩한 충격을 주었는데,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 아마도 시간 탓이겠지? 더불어, 마지막 엔딩 씬에서 나를 가장 울렸던 원작의 결정적 명장면은 생략되었다. 그 장면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이 '시간 여행자'가 아니라 시간 여행자의 '아내'임을 무엇보다 이해했는데 상당히 아쉬운 선택이다. 그러나 영화로만 본다면 거기서 끝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아 보인다. 덕분에 헨리의 대사는 바꼈지만. 사실, 그렇긴 하다. 남은 인생이 구만 리인데 앞으로도 평생 그만을 기다리며 살기에는 젊은 클레어가 너무 가엾기는 하다. 현실적인 고민이 반영된 것일까. 그래도 그 절절함의 최고봉이 대체된 건 역시 아쉽다. 이 영화가 SF영화가 아니라 로맨스 영화로 만들어주는 것도 그 사랑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죽을 날을 알고서 산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충격일까. 알기 때문에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혹한 일이다. 어린 엘바가 어려서부터 감당한 삶의 무게도 그거였을 테니까.
원작자의 두번째 작품이 쓰여졌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번역되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언제고 번역될 거라 굳게 믿으며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살짝 눈물이 났다. 뭐랄까. 이런 가을에는 이런 사랑 얘기가 적격인 것 같고,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좀 부럽기도 하고, 살짝 신경질도 났달까. 뭐 그랬다는 이야기... 아무튼, 내게는 좋은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