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한비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에, 그녀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남다른 삶을 사는 특별한 인물로 보였다. 필요에 의해서 바람의 딸 시리즈 중 몇몇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는 통 손이 가지 않던 그녀의 책들을 다시 펼치게 만든 건 '무릎팍 도사'의 힘이 컸다. 2회에 걸쳐서 나눠 방송을 했는데, 방송 보다가 울었다. 힘들었던 시기를 이야기할 때 벼랑 끝으로 온 세상이 작당을 한듯 밀어버릴 때, 끝내 그 벼랑에서 떨어져도 좋다고...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거라고 했던 그 말이 주는 위로와 감동에 전율이 일었다.  그밖에 방송을 보면 구호 팀장으로서 부딪혔던 위험천만했던 일들, 난민국 빈민국의 실태에 대해서 경악을 하게 만드는 사실들이 머리 속에 콕콕 박혀버렸더랬다. 이 책은, 방송 때처럼 효과음도 없고 자막도 없고 깔려 있는 멋진 음악도 없지만, 그것들을 뛰어넘는 더 깊은 진심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책,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 눈물 보태는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비야는 이미 노련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던가. 그건 상술이 아니라 지혜로운 거라고 생각하지만. ^^ 

처음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스스로를 날마다 더 사랑하는 이야기, 산을 좋아해서 산에 미쳐버린 이야기, 건강 검진 결과를 기다리며 중병이라도 걸렸을 것 같아 죽기 전에 해야 할 리스트를 만들었던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등등등.  

그렇게 긴장을 풀어놓고는 차근차근히 자신이 날개를 발견한 순간들을 펼쳐 놓는다. 구호팀장으로서 월드비전에서 일한 이야기, 그 속에서 맞닥뜨린 기적같은 순간들은 그녀가 가진 '신앙'의 연결 고리를 자주 드러내긴 했지만, 그것이 독자들을 불편하게 할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모슬렘 지역에서 월드비전의 로고가 십자가를 연상시킬 것 같아 과감히 치우고 일한 이야기라든가, 무슬림과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종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 등은, 우리가 개신교에 대해서 흔히들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들을 비켜가게 한다. 아울러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우리 나이로 쉰을 넘겼지만, 작가 한비야는 대놓고(은근히도 아니고!) 귀엽다. 특히나 1년에 책 백 권 읽기 프로젝트를 말할 때는 그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과 특유의 높다른 음조가 고스란히 귓가에서 울리는 착각마저 일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이따금 대한민국 전 국민이 '1년에 백 권 읽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한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역시 책을 읽고 있는 옆 사람을 보고는 "이게 몇 권 째예요?"라고 묻고, 길에서 누군가 책을 들고 가면 사람들마다 "어, 저거 작년에 내가 열두 번째로 읽은 책인데", "올해 읽으려고 한 책인데", "내년 목록에 넣어야지" 하는 말들이 터져나옹는 상상.
......
9시 뉴스에는 "올해 첫 백 권 읽기 완독자가 나왔습니다. 충청북도 음성의 한 농부였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전해 듣겠습니다." 이런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백 권을 다 읽은 사람들이 지역마다 모여 갖가지 축제를 벌이고...... 정부 차원에서는 전국의 백 권 읽기를 달성한 사람을 강변 공원에 초대하여 국빈 대접을 하며 폭죽을 터트리고 축하해주는 행사를 벌일 것이다. 3년 이상 백 권 읽기를 달성한 사람은 세금도 깎아주고 직원 채용 때 보너스 포인트를 주면 어떨까. – 164쪽

 
   


이 얼마나 발칙하고도 귀여운, 그리고 로맨틱한 발상이던가. 독서가 지상 최고의 아름다운 취미는 아닐지라도, 저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뿌듯함과 만족스런 미소가 떠오른다. 세금 감면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책 읽을 용의가 더 있는데 말이다.^^ 

'세계시민'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귀가 쫑긋해졌다. 말로만 글로벌 리더라고 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하게 돈 잘 벌 궁리만 할 게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 속의 한 인격체로서 지향해야 할 소중하고 따뜻한 가치를 제시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성숙한 시민 의식. 그녀가 많은 강연 요청을 받고, 또 닮고 싶은 사람으로 손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책을 어려서부터 접하고 자라온 아이라면, 같은 꿈을 향해 더 멋지게 날개짓을 할 것 같다는 기대감도 차오른다.   

   
  내 생각에 글로벌 리더십 과정에서 제일 먼저 고려하고 일관되게 강조해야 할 핵심은 '세계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사람이 세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 세계를 이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
세계시민이란 세계를 내 무대라고, 세상 사람들을 공동 운명체이자 친구라고 여기며 세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세계시민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 274쪽
 
   

작가 한비야, 오지 여행가 한비야, 또 구호팀장 한비야에게 쏟아지는 환호가 큰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비판의 근거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또 인정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녀가 가진 열정이 얼마나 큰지, 그 열정을 자신보다 남을 위해서 쓰고 있다는 것도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서서 싸우는 그녀에게 앉아서 구경하는 우리가 손가락질을 하는 오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  

이제 한비야는 월드비전을 그만두고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도약을 위해서 공부를 하러 보스턴으로 떠났다. 무릎팍 도사 방송 당시 출국하는 그녀를 배웅하는 카메라를 보았는데, 지금도 날밤을 새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가 그랬다. 장차 자신이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고.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고서도 더 큰 꿈을 꾸는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더 많은 일들을 궁금해하고 그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 그리하여 세상이 더 아름답고 멋지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 그리하여 정말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 근사한 삶이다. 닮고 싶은 인생이다.  

그녀가 제시한 멋지다, 대한민국! 리스트를 보면, 이 나라가 정말 자랑스러워진다. 도무지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이 나라가 챙피할 때가 많아서, 뉴스를 보는 게 몹시도 고통스러워서, 이 나라의 미래가 너무도 깜깜했는데, 조증만 반복되는 긍정 마인드의 화신 한비야의 외침을 들어보니, 이 나라가 좀 더 사랑스러워졌다.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좀 더 자랑스러워졌다. 이렇게 긍정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열정적인 그녀, 그녀의 마음 속엔 무엇이 있을까? 그건,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의 축복이다.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겠지?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 89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9-10-2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리뷰에요.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감격스럽겠지요.

마노아 2009-10-28 08:03   좋아요 0 | URL
헤헤, 감사합니다.^^
우리 같이 날개를 파닥거려용~

다락방 2009-10-28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리뷰네요, 마노아님! 전 이책에 대해서 어떤 호감도 없었는데 마노아님의 리뷰덕에 호감이 생겨요. 이거 정말 박수받을만한 리뷰에요!! >.<

마노아 2009-10-28 11:4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마워요. 부끄부끄...^^
한 제목에 할당된 내용이 좀 길어서 호흡이 길겠거니...하며 좀 미뤘는데 오히려 한 번 잡으니 순식간에 읽게 되더라구요.^^

레와 2009-10-2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서 싸우는 그녀에게 앉아서 구경하는 우리가 손가락질을 하는 오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 "

마노아님의 리뷰가 참으로 멋진데요!!

마노아 2009-10-28 11:45   좋아요 0 | URL
으하핫, 저 표현은 불의 검에서 나온 문장인데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강 저런 느낌이었어요. 레와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