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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20 - 국민주 탄생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평점 :
식객 20권에서 연재 100회를 돌파했다. 지금이야 그 후로도 권수가 더 쌓였지만 이때만 해도 화실 분위기가 거의 축제 느낌이지 않았을까. 고되었지만 보람된 시간으로 말이다.
1회부터 100회까지의 에피소드들 중에서 작가가 유독 애정을 쏟은, 인상 깊은 일화들을 직접 가려냈다. 사진은 59화 '연어' 편인데, 댐 앞에서의 뻥튀기 장면이 '웰컴 투 동막골'의 표절이라는 설왕설래가 있었다 한다. 하지만 예전부터 구상한 장면이어서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고 밝힌다. 당당함에서 나온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저 에피소드는 크게 재밌지 않았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큰 의미였을 것이다.^^
앞서서 술 빚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번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어머니의 유산인 동동주, 동창들에게 성찬이 직접 빚어서 먹인 설락주, 소주의 눈물, 국민주, 할아버지의 금고...까지인데 모두 '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설락주'는 혀가 즐거운 술이라는 의미로 작가가 직접 작명했다고 한다.
사진은 고교 때 내내 성찬을 못살게 굴었던 못되먹은 녀석이 초대하지도 않은 자리에 나와서 다시금 성찬을 괴롭히자 열에 받친 성찬이 병을 휘두르려고 하는 모습이다. 뭐, 진짜로 내리치진 않는다. 저 녀석 표정 좀 봐라. 살인나게 생겼다..ㅜ.ㅜ
하지만, 성찬의 마음 속에 쌓인 분노는 잘 표현된 듯하다.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고 오래 묵어 오히려 더 독해진 앙금의 깊이가 이해되었다. 나도 저렇게 술병은 아니지만 프라이팬을 휘둘러서 내리치고 싶었던 상대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욕망을 느낀다.)
'소주의 눈물' 편은 꼭 귀신 들린 것 같은 소주고리가 등장하는데 음산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면서도 좀 오싹하지 않았을까.
'국민주' 편에서는 일본의 유명 작가가 한국의 술을 취재하기 위해서 온다는 설정이었는데, 실제로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허영만 작가와는 친분이 있는 사이. 두 사진을 비교해 보니 확실히 닮았다. 실물 쪽이 좀 더 여유롭게 느껴지지만.(동시에 더 기름져 보이기도 하지만...)
이국의 작가가 낯선 땅에서 우리의 국민주를 이해하고 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잘 표현했다. 역시 베테랑~!
마지막 '할아버지의 금고'는 무척 감동 깊게 진행됐다. 전통을 잇고 가업을 계승하려고 해도 무서운 자본의 폭력이 그 마음을 지켜주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걸 단합된 힘으로 지켜내고 막아냈다는 것이 부쩍 힘을 내게 한다. 실제 모델이 된 공장은 1929년에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지어졌다고 한다. 우리 술 공장의 산 증인이랄까. 이렇게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소개가 되는 것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싶다.
작가는 이전 에피소드에서 할아버지들이 단합해서 마누라 몰래 캐나다로 한달간 여행간 이야기를 꾸렸었다. 연재가 끝나면 본인도 그렇게 여행가고 싶다고 한다. 식객의 갈 길은 아직도 먼 것 같지만, 그럴 수록 기다림이 깊어져 작가의 로망도 더 커질 것이다. 그 전에 독자들에게도 맛 기행, 맛 잔치를 더 베풀어주었으면 한다. 지금도 충분히 고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