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방문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며칠 전 생일선물로 받은 반짝반짝 빛나는 리본 핀을 올려놓은 태연. 그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는 아빠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목청껏 소리 높여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다.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우리 아빠가 갑자기 천사처럼 착해지셔서 이렇게 예쁜 선물을 매일매일 사주도록 해주소서. 나무아미타불! 아멘~~”
“하하. 태연아, 종교를 통일해 보면 어떨까?”
“여러 신께 빌어야 더 잘 들어주실 것 같아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아빠 생각에는 프린터 기술이 빨리 발전하도록 기도드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아빠가 산타할아버지가 될 일은 절대 없으니까 말야.”
“엥? 핀하고 프린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프린터는 컴퓨터로 작성한 문서나 사진 같은 걸 종이 위에 인쇄해주는 기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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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앳홈(Fab@home)입체 프린터(Fabber)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그건 2차원 평면 프린터고, 3차원 입체프린터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단다. 평면 프린터가 잉크를 분사하는 것이라면, 3차원 프린터는 액체 플라스틱, 액체 스티로폼, 열가소성 수지, 고분자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이 분사하지. 물론 평면데이터가 아닌 3차원 입체설계도를 입력해야 되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네가 좋아하는 반짝이 핀은 물론 장난감, 핸드폰 등 뭐든 찍어낼 수가 있어. 입체프린터 기술이 더 발달하면 쇼핑몰에 가서 물건을 사는 대신, 인터넷으로 3차원 설계도를 내려받아 집에서 인쇄하는 세상이 되겠지.”
“헉, 완전 대단해!! 이 핀 빨리 인쇄해 주세요!! 많이도 안 바래요. 딱 천개 만!”
“급한 성격 하고는. 기술이 더 발달해야 한다니까. 아직까지 복잡한 제품을 인쇄하기는 힘들고 값도 상당히 비싸단다. 하지만 늦어도 10년 안에는 입체프린터가 보편화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어. 그때가 되면 인간의 장기까지 쉽게 인쇄할지도 모른단다.”
기술 발달을 더 기다려야한다는 말에 풀이 죽었던 태연. 다시 반짝 눈을 뜬다.
“예? 장기도 인쇄해요? 제 꿈이 의사잖아요, 아빠. 어떻게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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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프린터의 작동 원리 자료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에고, 삼일 만에 장래희망이 또 바뀌었다는 건 내가 미처 몰랐구나. 금방 말한 것처럼 입체프린터는 카트리지 안에 아주 다양한 물질을 넣을 수 있어. 액체 프라스틱 같은 화학물질 대신 살아있는 세포를 카트리지에 넣고 뿌리면 인체조직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벌써 피부나 뼈는 인쇄할 수 있는 수준이란다. 무독성 젤 위에 세포를 뿌리고 다시 젤을 깔고 세포를 뿌리고. 이걸 반복한 다음 한동안 그대로 두면 세포끼리 서로 결합해 피부나 뼈로 성장하는 거지. 이 기술이 보편화되면 화상을 크게 입은 환자도 허벅지나 엉덩이 피부를 떼어내 이식을 받는 대신 ‘인쇄’된 피부를 이식받을 수 있게 되겠지.”
“그럼 입체프린터 기술이 더! 더! 발달해서 폐나 심장 같은 장기까지 인쇄할 수 있게 되면, 이식할 장기가 없어서 죽는 사람은 더 이상 없겠네요?”
“뭐,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그리고 아마 그런 시대가 되면 로봇들이 스스로를 인쇄해서 무한히 숫자를 늘려가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삶 곳곳에 로봇이 보편화돼서 생활이 아주 편리해 지겠지만, 반면에 로봇이 인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거라고 예언하는 미래학자들도 있어.”
아빠의 위협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이미 태연의 머릿속은 엉뚱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일단 몽몽이를 한 300마리쯤 인쇄해서 집 안을 귀여운 몽몽이로 가득 차도록 만드는 거예요. 한 마디로 개판을 만드는 거죠! 거기다 고양이 200마리, 이구아나 100마리, 햄스터 150마리 쯤 추가하는 것도 아주 좋아요. 그리고 숙제해주는 로봇, 시험 대신 봐주는 로봇을 마구 인쇄해서 그야말로 유토피아를 만드는 거예요! 원더풀 월드!!”
“오호, 그건 힘들겠는데. 그런 유토피아가 오기 전에, 아빠가 인쇄한 태연이 혼내주는 로봇들이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으흐흐”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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