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 ㅣ 문지아이들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그림,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 미스터리 그 자체인 동화랍니다. 상상력이 빼어나서 늘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게 하는 알스버그의 책이에요.
머리말에서 알스버그는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피터 웬더스라는 사람의 집에서 처음 보았는데, 30 년 전 그의 사무실에 해리스 버딕이라는 남자가 그림들을 들고 찾아왔답니다. 이야기 열네 편을 썼고, 그 이야기에 딸린 그림들을 그렸다고요. 이야기 한 편당 그림 한 점씩을 가져왔으니 책으로 만들 만한지 봐달라고 청한 거지요.
피터 웬더스는 그림에 매혹되어서 글을 보고 싶어 했는데, 화가는 다음 날 오겠다며 그림만 두고 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그리하여 완벽하게 미스터리로 남은 해리스 버딕. 게다가 그의 그림들도 미스터리 그 자체.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이에 알스버그는 그 그림들을 자신의 그림으로 다시 옮겼다는 게 이 그림책의 시작입니다. 자, 그림들을 좀 지켜볼까요?
첫번째 그림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아치 스미스, 소년의 놀라움'
아주 작은 목소리가 물었다. "얘가 그 애야?"
그리고 두번째 그림은 이렇지요.
양탄자 밑에서
두 주일이 흐른 뒤 그 일은 또 일어났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약간의 오싹함과 미스터리가 팍팍 몰려오지 않나요?
특히나 얘가 그 애냐고 묻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 아이의 평온한 얼굴과 대비되어서 더 긴장감을 일으키지요. 두번째 그림도 마찬가지에요. 양탄자 밑에서 무언가가 솟아 오르고 있고, 참다 못한 남자는 당장이라도 의자를 내리칠 기세지만, 그러고 나면 그 속의 녀석은 어디론가 도망쳤다가 다시 나타나고 말 거예요. 남자는 히스테리를 견디지 못해서 이사를 가버릴 지도 모르지요.
좀 더 그림을 지켜볼까요?
세번째 그림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7월의 신기한 날
있는 힘껏 던졌지만, 세 번째 돌멩이는 통통 튀어 다시 돌아왔다.
네번째도 들어보세요.
베니스에서 길을 잃다
엔진의 힘을 끝까지 올리면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 큰 배는 뭔가에 끌려 계속 운하 안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세 번째 그림은 일단 이뻐서 찍어 봤습니다. 어릴 때 시골 큰 댁에 가 보면 동네에 우물이 있었는데 턱이 없이 바닥 높이였어요. 거기에 막대기를 세로로 꽂으면 물이 다시 튕겨내어서 막대기가 위로 올라오곤 했지요. 어떤 과학적 원리가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저 튕겨내는 나무 막대기가 신기해서 자꾸만 우물 속에 던져보곤 했답니다.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 속에서 누군가가 다시 되던진다고 여겼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마 무서워서 다시는 나무막대기를 던져보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은 그 우물이 이미 메워지고 없을 테지요...
네번째 그림은 무척 오싹했습니다. 시커먼 운하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게다가 배 옆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휘어져 있는 것도 공포감을 느끼게 했어요.
문득, 미하엘 엔데의 단편 소설이 생각났어요. 어떤 복도 끝에서 문 밖의 사람을 보면 원근법이 반대로 작용해서 멀리 있는 사람이 오히려 크게 보여서 무서웠더라는 고백 말이지요. 꼭, 그런 느낌을 전달해 주는 그림이네요.
몇 장의 그림을 더 보지요.
제목은 이렇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잡이가 돌아가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하프
사실이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진짜 사실이야.
왼쪽의 그림은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어요. 계단을 내려오는 다리의 주인공은 거인처럼 보여요. 벽에 걸린 스케이트도 마찬가지로 크구요. 그런데 집은 아주 작아요. 천장도 낮고 벽에 나 있는 문도 작지요. 그런데 이 문은 갑자기 생긴 듯 보여요. 벽에 균열이 가 있는 것이 말이지요. 손잡이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긴장한 것은 이 거인일까요, 문 너머의 사람일까요? 거인은 문 앞에 다다르지 않았으니 놀란 건 오히려 거인일 수도 있어요. 초대받지 않은 누군가로 깜짝 놀랐다면, 이 거인은 어쩌면 몹시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문 너머의 누군가... 정말 궁금하고도 무섭네요.
하프 편에서는 개(아마도?)를 데리고 온 어떤 남자가 보이네요. 아마도 하프가 저 혼자 울리고 연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온 건 아닐까요? 수선화와 에코 전설이 떠오르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그림은 모두 열 네장입니다. 6장만 사진으로 담아봤어요. 궁금증을 남겨야 하니까요.^^
알스버그는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라고 했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알스버그의 미스테리겠지요?
피터 웬더스라는 인물은 가공의 인물이고, 알스버그가 베꼈다고 말하는 그 그림도 시작은 알스버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 그런 인물이 있었던 거라면 그야말로 미스테리 걸작이지요. 스티븐 킹이 영감을 받아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거예요. 미국에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글쓰기 교재로도 쓴다고 하는데, 아이들의 인원 이상의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등장했겠지요. 게 중에는 알스버그의 생각을 뛰어넘는 이야기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글은 별로 없지만, 게다가 흑백 그림이지만, 무수한 이야기와 상상력이 숨어 있는 이 미스터리한 책, 참 놀랍고 대견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