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의 까만색 세상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
질 티보 지음, 장 베르네슈 그림, 이정주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곱 살 마티유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다. 늘 깜깜한 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둠이 무섭지 않다고 하는 아이. 

보이지 않는 눈 대신에 서른 세 개나 되는 다른 눈이 있다고 하는 아이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손바닥 두 개, 발바닥 두 개, 귀 두 개. 콧구멍 두 개, 그리고 입에 5개. 왜 입에 5개인지 모르겠지만, 마티유는 그 모든 감각들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마티유에겐 귀로 듣는 음악도 보는 것이고, 손 끝 발 끝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이 보는 행위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냄새와 촉각을 다 받아들이는 마티유는 보는 사람 이상으로 세상을 느끼고 즐기고 있다.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양털 구름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커다란 호수도 있는 마티유의 세계. 그 속에 보스무리 빛깔과 밤비스리 빛깔을 띤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고 한다. 이 색은 마티유가 만들어낸 색이라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색이다. 번역되기 전의 원서에는 이 색깔들이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우리 말을 마티유스럽게 바꿔가는 작업이 꽤 신중하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상상되어진다.  

마티유는 밝고 긍정적인 아이다. 종이랑 물감이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 마티유. 방법은 간단하다. 커다란 해님 아래서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지우고 싶을 때는 눈만 한 번 깜박이면 된다. 그러면 깨끗하게 지워진다. 그리고 다시 신기한 색으로 아까보다 더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마티유가 그려낸 그림을 모두 펼쳐서 친구들한테 보여주려면 집의 벽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책에는 간간이 그림들이 나오는데 마티유 식 표현을 담아 모두 까맣게 칠해져 있다. 까만 크레파스로 채워진 공간을 하얀 선으로 표현을 해낸 그림. 마티유가 보고 있는 세상과 닮았지만 결코 어둡거나 칙칙하거나 암울하지 않다. 혼자서도 척척 해내고,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뭐든 적극적으로 해내는 마티유는 장애가 있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엄마와 아빠가 마티유를 위해 준비해 준 선물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는 것은 몹시 재밌는 엿보기였다. 곰돌이 인형과 얘기하면서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 마티유를 따라 독자도 그 시간을 즐거운 긴장으로 기다린다. 마침내 선물은 공개되고, 마티유가 그 선물을 손에 잡는 순간은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마티유를 지켜보던 다른 두 아이가 마티유가 앞을 못 보는 게 맞는가 의아해할 만큼 최고의 선물을 골라내니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아이가 '본다'라는 것을 어떻게 체득하고 이해하는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눈 이상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읽어내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인상적이고도 감동적이다. 아이의 이런 긍정 마인드는 부모님의 영향도 매우 클 것이고 사회 분위기도 크게 좌우할 것이다. 어린이 친구들이 이 책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들을 갖게 될지 궁금하고 또 조심스럽기도 하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은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안에 나의 조각들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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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7-3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티유의 서른 세개 눈에 하루하루가 조금더 살만함으로 느껴지길.
님 리뷰를 읽다 보니 저도 이쁜 그림동화 한권 본 느낌이 들어요.

마노아 2009-07-31 23:48   좋아요 0 | URL
배꽃님! 요새는 배꽃님 글이 많이 올라와서 기분 좋아요.^^
마티유의 세상처럼 우리의 세상도 날마다 조금씩 더 좋아지길 소망해요.^^

다락방 2009-08-0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거든요. 그 남자의 직업은 안마사였나 암튼 그랬을 거에요. 안마를 받으러 온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그 둘은 함께 살게 되면서 남자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에요. 수술을 받아서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가 수술을 받고 난 후, 모든걸 보게 된 뒤에 일어났어요. 이 사람은 빗소리도 아름답게 느끼고, 사랑하는 여자도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그 아름답다는 것이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아름다움과는 달랐던 거에요. 자신이 알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눈앞에 보여지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게 이 남자에게는 꽤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눈뜨고 보면서도 비명을 지르며 흉측하게 생각해요. 이게 뭐야, 이게 뭐야 하면서 말이죠.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이 남자는 자신이 서있는 길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고 보이지 않은 채로 지냈던 그 시간들 보다 훨씬 더 많은 혼란을 겪게 되는거죠. 아, 그렇지. 연필의 생김새를 보고 연필이라고 알지 못했던 사람에게 연필을 보여줬을 때, 자신이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을 일치시키기는 쉽지 않겠지, 막연하게 저도 생각하면서 꽤 충격적이었죠. 저 사람은 볼 수만 있게 된다면 가장 큰 소원을 이루는 걸텐데,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노아님의 리뷰를 보니 그때 그 영화가 생각나네요.영화 제목은 [사랑이 머무는 풍경]이었고, 실화를 영화화 했다고 알고있어요. 영화의 마지막에 자막이 나왔던 것 같거든요.

마노아 2009-08-01 22: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 보고서 찾아봤어요. 발 킬머가 나오는 영화가 맞지요?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니까 더 실감나요. 고등학교 때 제가 쓴 글에서 사고로 앞을 못 보는 중년 아저씨와 다리가 불편한 어린 소녀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나와요. 남자가 후에 수술을 통해서 앞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고민 끝에 거절을 해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눈을 뜨고 나서 바라볼 세상이, 사람이 자신이 느끼고 믿어온 것과 달라질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요. 아마 그렇게 글을 쓰게 된 건 눈 감고 찾아가던 길을 눈 뜨고서 못 찾고 헤맸다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서 정했던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떡해서든 보는 것이 최우선일 텐데, 글 속에서는 그렇게 써나간 것이 좀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