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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언 이야기 -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한 시간 ㅣ 높새바람 10
리언 월터 틸리지.수전 엘 로스 지음, 배경내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한 시간'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시간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자유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에서조차도.
1936년생인 리언 월터 틸리지. 그는 9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큰 도시 롤리, 그곳 교외의 '껌둥이 촌'이라 불리던 작은 마을이 그의 고향이다. 이제 그가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시간의 단서를 잡았는가? 그렇다. 그는 껌둥이라고 불리던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엄청난 땅을 소유하고 있는 농장 주인 존슨 씨네 집에서 소작을 부치고 있던 리언네 가족. 늘 열심히 일하지만 소작료로 수확량의 절반을 내고 나면 남은 것으로는 빚잔치의 해갈도 모잘라 다시 빚을 지며 살아야 했던 리언의 아버지. 그렇게 가난은 되물림되고 반복되고 있었다.
아버지뿐 아니라 가족들 모두 부수적으로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어린이는 마냥 뛰어놀며 행복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는 '백인' 가정에서나 가능했다.
그들의 일상 생활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온갖 차별들은 정도가 심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백인 아이들은 스쿨 버스를 타고 가다가 걸어가고 있는 흑인 아이들을 발견하면 차에서 내려 돌을 던졌다. 그러면 흑인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빌었고, 평소에는 차가 나타날까 봐 자꾸 뒤돌아 보며 길을 걸어야 했다. 간혹 이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들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들을 감싸주는 백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아주 드문 경우였고, 이들은 물건을 사러 상점에 들어가도 나중에 들어온 백인 손님이 기분 나쁘다고 하면 나가서 기다려야 하는 존재였다. 정문으로 입장할 수 없었고, 물을 먹어도 '유색인종' 용 수도를 이용해야 했던 그들. 앞문으로 승차해서 버스비를 내고는 다시 뒷문으로 올라타서 뒤쪽 좌석에 앉아야 했던 그들. 그들은 백인용 좌석에 앉을 수 없지만, 백인들은 그들의 자리에 앉을 수 있고, 승객이 많으면 버스비를 내고도 버스에서 내려야 했으며 지각할까 봐 뛰어서 직장까지 달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극우 백인 우월주의 비밀 단체인 KKK단을 피해 도망다니는 일도 일상다반사였다. 자신을 고용한 술취한 오너가 풀어버린 개에 물려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도망치던 순간이 있었고, 백인 아이가 장난 삼아 몬 차에 아버지는 뼈가 가루가 되어 돌아오셔야 했다. 리언의 생일날 말이다. 그리고도 사고 당사자 아이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그 아비는 어쩌겠나?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백 달러를 내민다. 그 정도면 큰 비용이라고.
그랬다. 그렇게 억울하게 당해도 이들의 편을 들어줄 보안관이 없고 경찰이 없었다.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었다. 리언의 부모님이 그토록 신실한 신앙심을 가졌던 것은 어디에도 의존할 수 없는 가혹한 현실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한 번은 리언이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어린 소년이 지나가다가 복도에서 그의 다리를 살짝 건드렸다. 아이는 "실례합니다. 좀 지나가려고 하는데요?"라고 말했고, 그 말 때문에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아버지는 다시는 껌둥이에게 실례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고, 지금 당장 리언을 발로 차라고 시켰다.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길질을 해야 했던 소년은 미안한 눈빛으로 자리를 떴다.
가끔 그렇게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몇몇 사람의 온정과 온유함에 기대어 이 부당한 현실을 보아 넘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축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들에게서 찾아야 했다.
그때는 50년대였고,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로자 파크스 사건이 일어났던 즈음이었을 것이다. 리언이 사는 곳에도 킹 목사가 다녀갔다. 학생들에게 행진의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서.
같은 흑인들 사이에서도 그 행진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만큼의 안전조차도 위협하는 행위라고. 오히려 뭉쳐야 할 아군이 더 적군이 되어버리는 가슴 아픈 순간들이 재현되는 것이다.
어쩌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리언을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권을 되찾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 '시혜'의 성격으로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 삼아 무임승차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힘으로, 의지로 쟁취할 것을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움직였다. 그리고 그 행보는 세상을 바꾸었다.
여전히 KKK같은 국우 단체들은 활동을 하지만, 이제 적어도 리언이 어린 시절 겪었던 내용의 차별과 탄압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런 억압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무척이나 막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도 '민주주의'는 당연히 우리 것이고 뿌리 내렸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그림을 그린 수잔 엘 로스는 리언을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녹취했고 책으로 만들어냈다. 수잔이 가장 놀랐던 것은 그런 일을 겪어냈음에도 리언은 구김살 없이 너무 밝았다는 것이다. 리언은 대답한다. 고달픈 시절이 있었지만 즐거움도 있었다고. 그에게 긍정 마인드가 없었다면 자신의 삶을, 그들의 삶을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저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희망.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오히려 희망을 찾아낸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흑백 차별과 인권을 다루기 있기 때문에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 소화할 수 있을 듯하다. 가끔 조숙한 친구들은 제외하고...^^
다시, 부제로 돌아가 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한 시간'. 그 시간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 지구 어디든, 우리 살고 있는 이곳에도. 인류의 역사가 그래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존속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전과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군가가 그토록 갈망했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더 떠오르는 순간이다.
너의 피부색이 어떠하든지, 너의 국적이 어떠하든지, 네가 건강하든 안 하든, 혹은 성별에 관계 없이, 또 재산의 유무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또한 차별하지 않을 의무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고로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납득시키고 합리화하고 있는 지도 돌아볼 일이다.
길지 않은 책이지만 묵직한 울림이 있다. 좋은 책이다.